#단편소설
산새 되어 날아간 청학스님 2편 / 단편소설. 김시화
"스님. 글쓰기의 방법이나 기술 같은 것은 어찌해야 익힐 수 있겠는지요?"
"일단은 무조건 써 봐야 한다 아임니꺼. 그리고 마 책을 억수로 읽어야 하지예. 쉬운게 아임니더. 하루아침에 되는 기도 아이구요. 긴 세월 수행하듯이 써보이소. 그러다보면 마 뭔가가 와 닿으실 껍니더."
"그 뭔가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마 불교적으로 이바구 할땐 해탈 같은 기지요. 스님들이 긴세월 공부하고 참선하듯이 마 그런 노력으로 하면 뭐가 되도 되지 않겠습니꺼. 물론 문학은 예술분야라 타고난 재능이란 것도 마 무시는 못합니더. 타고난 재능이 아예 없어 뿌리면 억수로 노력해도 안된다 아임니꺼."
"스님. 저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저를 보실때는 어떠한지요?
"그게 마 겉모습만 봐서는 알수가 없구 글을 봐야 알 수가 있다 아임니까. 얼굴에 나 시 잘쓴다란 표시가 나는 것도 아이구요. 한번 글을 써갖고 소승이 있는 동강 청학사를 방문하이소. 내 우리 팬션 사장님, 동생분의 글이라면 두눈을 부릅뜨고 아주 자세하게 살펴볼라 합니더."
"글을 써 본적이 없어서.. 하지만 못쓰는 글이라도 써서 스님의 지도를 받아보겠습니다."
"그랍시다."
나는 청학스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스님이 대단한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시조시인이었지만 나는 그때만 하더라도 시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은 강렬했다. 하지만 내가 시를 쓴 것은 청학스님을 만난지 한참 후의 일이고 그것도 청학스님과는 전혀 관련없이 또 누구와도 전혀 관련없이 우연한 상황에 내 스스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날 청학스님은 밤늦께까지 우리와 술을 마시고 팬션에서 잠을 자고 아침까지 같이 먹고나서 다시 산을 타고 영월 동강의 청학사로 향했다.
몇년이 흘러갔다. 나는 동강의 청학사로 스님을 찾아가지 않았다. 시를 써보려 했으나 시는 전혀 쓰여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청학스님은 잊혀져 갔다. 나는 그 몇년동안 공무원이 되었고 또 시인이 되었다. 시인이 된 것은 우연한 것이기도 하면서 필연적이기도 했다. 시의 신이 어느날 날 불렀던 것이다.
2009년의 1월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직장에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지독한 허무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정취가 너무나 삭막하고 황량함을 불러 일으켜서 당장이라도 술을 한 잔 마시고 싶어졌다. 그러나 근무시간이라 술을 마실수는 없었고 목이 타는 듯한 답답함을 억지로 견디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마음을 시로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시를 써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가 잘 써졌다. 다 쓰고나서 읽어보니 예상외로 괜찮은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하니 다들 좋다고 하였다. 이에 나는 용기를 얻어 '시를 써보자'라는 결심을 하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 사실상 내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의 제목은 '허무'였다
내가 청학스님을 다시 만난 것은 시로 등단을 하고 처음 가입한 어떤 문학회였다. 군지역을 대표하는 그 문학회 모임에 무작정 찾아가서 가입신청을 하고 회원들과 저녁식사를 같이할 때였다. 그때까지 난 청학스님이 그 문학회의 회원인줄을 몰랐다. 그때 어떤 여자회원이 반색을 하며 '청학스님 오셨네요' 라고 말을 했고 그 말에 난 뒤를 돌아봤다. 몇년전 팬션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였다. 나는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오늘 처음 왔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청학스님은 날 알아보지 못했을 뿐더러 시큰둥하게 건성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그걸 내색하지 않고 그냥 처음 보는 것처럼 스님을 대했다.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팬션 이야기를 해볼 생각을 하면서 딱딱한 분위기의 문학회 모임에서 굳이 그걸 얘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청학스님은 문학회 내에서 글에 대해서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초보 시인으로서 문학회 내의 다른 시인들의 시나 시조를 많이 배우고 공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1년에 한번 내는 문집만 가지고는 성이 안찼다. 인터넷 '다음'에 까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입을 했는데 그곳에는 제법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 글들 중에서도 청학스님의 시조가 많이 돋보였기에 나는 기회가 되면 스님에게 시조를 청해 배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청학스님과 내가 친해진 계기는 2009년 김삿갓 문화축제여 서였다. 내가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회에 가입한지 10개월 정도 시간이 흘러서 같이 마시던 술이 계기가 되어서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난 김삿갓 문학축제에 처음 참가해서 낮부터 마신 술로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마침 청학스님을 포함하여 몇명의 다른 문인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되어서 그들과 저녁에도 술을 계속 마셨는데 그러던 어느순간에 방에는 나와 청학스님만 남게 되었다. 다른 문인들은 청령포 근처에 있는 숙소주변의 수려한 밤풍경을 보러 나가서 우연히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나와 청학스님은 워낙 많이 취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밤풍경을 보러 산책나갈 생각도 안하고 술만 계속 마셔대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퍤션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그 얘기를 했고 청학스님은 날 잠시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는듯 하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좋아하셨다.
''킴스캐빈 이라꼬? 아! 이제 기억난데이. 진작에 말하지 그랬나. 반갑데이. 내 그때 시주를 잘받아 억수로 좋았다 아이가.''
''저도 기회되면 얘기 하려고 했었는데 그럴 기회도 별로 없었고 그러다가 저도 퍤션에서의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스님과 이렇게 술을 마시다보니 그 일이 떠올라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학을 좋아한다 카더만 이러쿠로 시인이 되었구마. 잘됐다. 정말 잘됐다 아이가. 참 행님은 잘있나? 팬션도 계속하구 있나?''
''형님은 잘 있습니다. 팬션도 계속 운영하고 있구요. 참 얼마전에는 저희 팬션에서 드라마도 촬영했습니다. 퍤션 옆에 세트장을 지어놓고 촬영하면서 스텝들과 배우들이 저희 팬션에서 숙박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어머니하고 이모는 '만원의 행복' 이란 프로그램에도 나왔습니다. 그 드라마 주연배우중 한명이 마침 그때 '만원의 행복을 촬영하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드라마 촬영은 끝났지만 세트장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랬구마. 마침 잘됐데이. 니 나랑 지금 청학사로 가자. 귀한 손님이 오면 같이 마실라꼬 내 좋은 양주 한 병 숨겨 났데이."
"하지만 지금 스님도 그렇고 저도 술에 많이 취해 있어서 운전을 할 수 없잖습니까?"
"대리운전 부르면 된다 아이가. 가마이 있어봐라. 내 전화 한데이."
청학스님은 자신의 핸드폰에서 무엇인가 찾더니 곧 전화를 걸었다. 대리운전 사무실 번호였다. 그리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대리운전 차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청학스님에게 왔고 우리는 밖으로 나가 청학스님의 차에 대리운전기사와 함께 탔다. 나는 취기가 잔뜩오른 가운데에서도 청학스님의 양주에 구미가 당겼고 그것 때문에 차에서도 입맛을 다셨다.
마침내 청학사에 도착하였다. 대리운전비를 내가 지불하려 하니까 내 손을 붙잡고 청학스님이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직접 지불하였다. 거의 11시가 다되어가는 청학사의 절건물은 가로등 같은 불빛이 전혀 없어 어둡고 스산하였다. 근처의 동강에서 물이 흘러가는 소리만 들렸다. 우리는 청학스님이 주무시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보일러도 되고 장작을 때면서 난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청령포의 숙소에서 잘 예정이기 때문에 장작은 때지 않아서 스님은 취한 가운데에서도 보일러를 틀었다. 그리고 방과 연결되어 있는 다락을 열더니 거기서 양주 한 병을 꺼내왔다. 그 술은 발렌타인 30년 이었다. 시가로 거의 50만원 정도 되는 술이었다. 나는 발렌타인이란 양주를 마셔 본적은 있지만 30년 산은 처음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