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예탁
-전영관
선악의 심판이 휩쓸고 간 언덕
산림 전문가일 테지만
그의 선악은 생사를 가르는 것
간벌할 예정이란 낙인으로
소나무들이 허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있다
가족의 상사(喪事)를 듣고
경황없어 띠 먼저 두른 여인처럼
소나무가 울음을 참는지 퍼렇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문 걷는 오솔길이라서
트럼펫같이 명랑한 원추리 씨를 뿌렸다
혼자 누리겠다고 남몰래 했다
밀어줄 능력도 없이 자식들 번성만 바라는 아비처럼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봄을 꿈꿨다
쉽게 자리 잡으라고
흙이 무른 자리를 골랐지만 그늘이 두껍다
정리해고를 겪은 후라서
소나무가 베어지면 햇살 들 일이
뻔하게 보여서 서늘해진다
원추리들이 명복을 빌며 갸웃거릴 것이다
당하는 자에게 심판은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소나무가 잘린 덕분에 싹을 틔웠다고
어느 아비가 난감한 자리에 씨 뿌려놔서 내가 대신 사과한다고
원추리가 숲에 소문내면 어쩌나
마주치면 어떻게 인사를 나눠야 할지
어제 일을 오늘 주춤거렸다
-시집 『미소에서 꽃까지 』 중에서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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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예탁 / 전영관
김옥전
추천 0
조회 112
24.01.03 12:4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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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자추천 => 무량, 치명, 구례사성암, 무적, 환생들
어디 하나 버릴 게 있을까요. 모두가 주옥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