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사는 길
- 환경동우회의 오늘 -
땅에서 제일 큰 동물은 코끼리이다. 이들은 성숙한 암컷을 중심으로 여러 가족 단위가 결합해 집단으로 살아간다.
여타 동물들이 늙으면 조용히 무리를 떠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코끼리는 늙은 코끼리가 무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무리들이 가뭄으로 갈증과 배고픔에 시달릴 때 젊은 코끼리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40여 년 전 찾았던 수원지로 무리를 이끌고 가서 모래를 파 물을 찾아 주는 역할을 한다,
어려움에 처한 젊은 코끼리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어린 코끼리에게 교육을 시켜준다.
임신시기인 열 살 무렵에 펼쳐지는 발정광포시기 마구잡이로 동료들을 공격하는 수컷에게는 힘겨루기를 하면서 사태를 진정시키는 행위를 하는 코끼리도 늙은 코끼리이다.
집단의 평화를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환경청으로 시작된 환경부가 40여년의 역사를 지니면서 공직을 마감한 환경부 출신 동우인이 벌써 1천2백여 명을 넘기고 있다.
환경동우회란 간판을 걸었지만 사글세방도 구하지 못해 남의 집을 전전하며 수 세월을 이겨나더니 조만간 방 한 칸 신혼 방처럼 꾸밀 예정이란다.
그나마 참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날로 다각적으로, 시급하게 닥쳐오는 환경문제에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현명하게 해쳐가야 할 환경부가 독감이라도 걸렸는지 좀체 움직이질 않는다는 것이 작금의 환경부 내부통신이다.
협상과 협치, 타협과 조정, 융합과 협력관계로 관련부처나 지자체를 비롯하여 기업과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이뤄져야 할 환경부가 어눌하게 침묵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굳이 외면하거나 마지못해 시킨 일만 하는듯한 인상을 지울 길 없다는 갈 바람소리도 들려온다.
장·차관 모두 NGO출신이더니 평행선만 긋다가 흑산공항문제가 불거지면서 차관이 먼저 떠나버렸다. 산하기관장이나 주요임원들도 환경부출신은 근접조차 하지 못하고 외지인으로 차곡차곡 퍼즐을 맞추고 있다.
환경은 적과도 동침해야 하는 순환구조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부처를 포함하여 정치, 국민 모두와 친밀해져야 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상·하수도를 포함한 일체의 지원 사업은 포기하고 미국처럼 환경청으로 독립하여 모든 부처의 환경검찰로 재무장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저런 환경부의 속앓이에 환경동우회 임원진들이 모여 장관과의 대화를 통해 꼬인 실타래를 풀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한 원로의 ‘그나마 환경동우회조직마저 붕괴 된다’는 염려 섞인 말에 그 안건은 쏙 들어갔다.
얼마 전 서울시장이 부시장을 NGO출신으로 교체하려하자 원로고위직 출신과 노조에서 적극 만류하여 부시장이 제자리를 찾은 사례가 있는데 말이다.
인재등용에 있어서 차별문제가 심각하던 조선후기 조정의 사태에 대해 정감록에서는 ‘이상향의 조건에 부합되는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노력하여 살기 좋은 곳, 살고 싶은 곳으로 가꾸어 가면 될 일이다.’라고 꼬집고 있다.
늙은 코끼리가 대접을 받고 젊은 집단들에게 배척당하지 않는 이유도 위기에 처할 때 하찮게 생각되었던 늙은 코끼리이지만 제몫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염려해서 미래의 꿈을 더 밝게 칠하기 위해, 온전하게 이 땅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부서이다.
환경부 출신들의 천성은 남에게 간섭하기를 극히 꺼려하는 병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마저 든다.
한국이 낳은 소설가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남긴 유고시집중 ‘천성’이란 시의 첫 문장을 옮겨본다.
남이 싫어하는 것을 나는 안했다
결벽증,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내가 싫은 일도 나는 하지 않았다
못된 오만과 이기심이었을 것이다
(중략. 시‘천성’중에서)
그리고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에서 한 구절 훔쳐와 옮겨본다.
설사 나를 해롭게 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와 나는 그만큼의 인연이 있어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나와 마주친 것일까. 불교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시절 인연이 다가선 것이다.
(무소유의 ‘탁상시계 이야기’ 중에서)
사람 하나하나의 인연이 소중함을 잃어버렸던 나 자신이 돌연 부끄러워지는 9월의 밤이다.
(길샘 김동환/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