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규선 원장님께서 5월 춤과 사람들 잡지 무용가 탐구편에
대사와 노내는 내 춤의 소통 창구 황규선 으로 잡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4월15일 단국대학교 무용학과 한국무용 박사들의 " 박사창작춤발표회" 가 개최되었다.
단국대에서는 창작춤과 전통춤을 매학기 발표를 해야지만 졸업시키는 제도를 채택해 졸업생들이 이론과 실기를 겸비 할 수 있도록 하고있다. 이번 발표회 참가 6인중 주제를 가장 함축적으로 작 풀어내었다고 평가되는 황규선씨를 탐구 인물로 정했다.
글- 이수연
단국대 박사창작품 발표회에서 선보인 창작 소품는 <새야새야 파랑새야>는 '무용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 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는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것이었어요.
양반 관리들의 횡포와 착취에 죽어가는 민중들, 거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모던하게 풀어 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는 아이들과 그 현장을 목격하고 살아남아 그때 그 현장을 증언해주었던 역할의 출연자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였어요. 출연 무용수들이 작품의 해석능력을 키우도록 하기위해 영화 <귀향> 을 관람케 했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했어요.
서울예술단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작품이 가무국 형태식이더군요.
- 서울예술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저는 춤 공연에 있어 관객과 소통이 먼저였고,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졌습니다.
그래서 무대에서 대사나 노래는 자연스럽게 넣었구요.
첫 안무작부터 관객과 소통을 염두해 두고 안무를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요. 언제 처음 안무를 했나요?
- 2004년 서울프린지페스티발에 출품한 <표리부동> 이 첫 안무작이였어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가수 이상은의 " 새" 를 직접 부르며 사람들이 이 땅에 내려오기를 두려워함을
표현했습니다. 전 처녀작부터 지금까지 항상 빠지지 않는 저만이 모티베이션은 "새" 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표리부동> 외에 <혼자 노는 괭이 갈매기>. <검은 눈물>, <창 넘어 외치다>, < 나와 너 그리고.. >,
<새야새야 파랑새야> 입니다.
서울 예술단, 부리푸리무용단, 백남 무용단에서 활동을 하셨군요.
- 네, 서울 예술단에서 2000년- 2006년 기간에 중 단원으로 활동했고, 윤혜정의 부리푸리 무용단에서 지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한양대학교 재학중에는 백남 무용단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2006년 제가 폐결핵과 자궁암 진단을 받고 서울예술단을 퇴사
10년만에 단국대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이론뿐만 아니라 창작까지 재도전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합니다.
박사과정중 공연을 많이 하시나보죠?
- 매 학기마다 전통작품 공연을 해야 합니다.
또 박사과정 중 공간창조는 박사 졸업과제 중 하나이기에 꼭 거쳐야 하는 거죠
4회라는 전통공연과 창작공연을 통해 나중에 개인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게 돼요.
특히 이렇게 4번의 전통공연을 통해 저처럼 무용을 잠시 중단했던 사람들에게는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는 거죠.
단국대 박사출신 무용가들이 많죠?
- 네 단국대학교 김선정 교수를 비롯하여 서울예술단 선배인 남수정 교수, 부리푸리무용단의 대표인 윤혜정 강원도립 안무가,
창작 작품 안무자를 거론할 떄 항상 1순위인 김충한 선생, 전통춤의 대가인 서진주 선생 등 김현숙 교수의 지도를 받았어요.
춤에 대해서는 무한의 열정과 관심과 기대를 교수님부터 가지고 계시고, 저처럼 외부에서 온 학생들까지도 가족처럼 반겨주고,
춤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을 해주세요.
무용을 언제부터 시작을 하셨나요?
-9세때 교회에서 무용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선과악>이라는 작품에 무용수 오디션에 참가를 하면서 무용을 취미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국립무용단의 <무천의 아침> 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홍진의 선생에게서 춤을 배워서 한양대학교에 진학을 했어요.
대학교 1학년 떄 김정학 선생의 <승무>를 보고 그분에게 춤을 배우게 위해 간 곳이 조흥동 선생의 연습실이였습니다.
제가 처음 조흥동 선생의 작품을 보고 무용을 업으로 삼게 되었고 또 그의 제자인 김정학 선생의 춤을 보고 전통춤에 입문하게 된
겁니다. 또 이렇게 조흥동 선생의 문하생이 된지도 20여년이 흘렀고 지금은 월륜춤 보전회에서 총무 겸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착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 제가 좀 단순합니다. 한번 시작하면 한 우물만 파는 성격이라 춤 빼고는 다른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요.
춤은 저의 삶이고 친구이고, 춤을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춤꿈으로서 제 사진을 볼때 사실 체젹이나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춤에 대한 진실성은 분명 있습니다.
춤을 추면서 슬럼프도 분명 있었겠지요, 많이 아프셨을떄가 혹 그 시기인가요?
-최고의 후원자인 아버지가 제가 대학4학년때 쓰러지시고, 1년간은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고, 도망치고 싶었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학교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가기가 힘들었어요.
그렇게 다니던 대학원 그만두고 무용단에 입단을 했습니다.
다행히 오디션을 통과하였기에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의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죠,
젊은 나이에 악성 병 진단을 받고 많이 힘들었지요? 극복한 것도 표본적이겠어요.
- 제가 2006년 7우얼에 폐결핵과 자궁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결핵이 있어서 바로 수술하지 못하고 결핵을 잡고 10월에 수술을 했는데
워낙 젊은 나이였기에 암의 전위도 빨랐습니다. 무용단을 나와 쉬려고 했지만 마음 한켠에 지금 쉬면 영원히 쉬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용학원을 개원했습니다. 무용실이 있다면 제가 추고 싶은 춤을 계속 출 수 있는 연습실이
생기니까요 그떄는 살고 싶어서 춤을 출 곳이 필요했던 거예요. 병마와 싸울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2006년 10월 저하고 같이
수술실에서 같은 병으로 수술했던 언니를 알게 되었는데 2007년 4월에 하늘나라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였어요.
나도 곧 죽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때 더욱 열심히 춤을 추었어요. 신기하겓 춤출 때 만큼음 숨쉬기도 편하고 행복했어요.
춤과 선생님의 삶이 불가분하군요
- 네 춤으 그냥 저의 삶이예요. 행복이고, 사랑이고, 나의 일부입니다.
처음에는 신랑이 많이 질투했었는데, 지금은 춤이 없었으면 제가 죽었을 거라며 이제는 춤추는 저를 물신양면 도와줍니다.
무용수 혹은 안무가로서의 활동에 도움이 된 서울 예술단에서의 작품을 꼽는다면?
-무용단에서는 <환생>, <바람의 나라>, <고려의 아침>, <태풍>, <해오화>, <홍랑>, <시집가는날>,<소용돌이>,
<고대의항가- 무천 신화가> 등에 출연을 하면서 여러 안무가님들을 뵈었지만 가장 영향을 많이 받게 된 작품은 <바리> 를 안무한
린시우웨이였습니다. 대만출신인 그의 작품스타일과 극에대한 몰입도가 굉장이 좋아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구요.
또 작품 <소용돌이>를 안무한 서한우 감동님의 영향을 받아 우리전통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습니다.
서한우감동님과 대만의 린시우웨이 안무가님이 저의 전통과 창작활동에 많은 영향을 주신분들이죠
예술단시절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진학은 전통에대한 관심 때문이였나요?
- 솔직히 여러가지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무용단에 입단하면 일반대학원에 다니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금전적인 문제가 저에겐 현실적으로 다가왔구요
당시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은 무용단다니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시스템과 장학금 제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정재만 교수님은 춤추는 학생들을 많이 응원해 주었기에 무용단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는 전통을 많이 배울 수 잇었구요, 그때 <살풀이춤>,<승무>,<태평무>,<산조> 를 중점적으로 배웠습니다.
예술단 입단 전후 작품의 변화는요?
- 예술단 입단 전에는 동작만 열심히 짜서 추는 춤 테크닉 위주의 작품을 만들었다면, 예술단 입단 후에는 동작보다는 작품의 주제를
관객에게 어떻게 잘 전달 할 수 있을까? 에 초첨을 맞췄으며, 악가무란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입단 후 제 작품의 변화라면
항상 노래를 직접 부르거나 대사를 치거나 악기와 함께 연기가 들어갑니다. 처음2003년도에는 사람들이 춤에 왜? 대사가 들어가나?
노래가 들어가나? 등 말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이런 식의 작품들이 많더라구요
안무자로서의 작품의 소재를 어디에서 많이 찾나요?
- 저의 작품에는 우리의 역사를 가지고 일반관객들과 소통을 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그리고 공연전에는 혼자 리서치를 철저하게 하고 음악과 전체적인 구성, 작품의 줄거리 등을 잡는 다음 무용수들을 만나 동작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무용수들과 많은 대화를 하죠, 제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작품의 의도를 알아야하니까요.
역사적인 소.재 외에 또 관심있는 춤의 주재들은요?
- 과거의 사건들 예를 들어 동학농민운동에 관학 작품 그리고 유관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 창 넘어 외치다>
장애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자연환경 파괴 등... 관객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줄 수 있 는 것들을 주제로 삼는 것 같아요.
많은 작품들을 안무하시면서 다 소중하시겠지만 그중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 2006년 발표한 < 나와 너> 입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모의 이야기입니다. 모는 아이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풍선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를 잡아둡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는 풍선을 터뜨리고 세상에 나가는 내용을 담았는데요.
이때 1급 지체장애인 김성국과 제가 듀엣으로 선보였습니다.
왜 이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
- 사실 저의 오빠가 지체장애인입니다.
부모님께서 어렸을때 부터 오빠가 너무나도 부끄러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어렸을 때 부터 오빠의 보호자였던 저는 너무나도 오빠가 밖으로 세상과 손을 잡았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기 떄문인지 애정이 많이 갑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만들고 싶은신가요?
- 앞으로도 우리 역사와 내용을 악기무를 통해 무용극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