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1:24-34,
안식일 교회에서는 주일을 지키면 짐승의 표를 받는다고 정죄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안식후 첫날에 모이면, 행20:7절,에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하고 성찬이 예배에 중심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만찬은 현재 우리의 성찬식과 달리 식사를 겸한 성찬이었는데 행2:46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성찬식보다 먹고 마시는 데에 치중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라고 20-2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고 나누는 의식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24-25절을 보면 주님께서 잡하시기 전날에 제자들과 모여서 마지막 성찬을 나누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아멘,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언약의식을 거행하셨습니다. 무교병을 들고 축사하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라고, 잔을 따라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시는 내 피,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성찬은 언약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식을 하실때는 피가 있었습니다. 언약의 원어는 '베리트'인데 '바라'에서 왔고 의미는 ‘자르다, 끊다, 새기다’입니다. 언약식을할때는 누군가 죽었습니다. 사람이 죽을 수 없어 짐승으로 대체가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언약식에는 피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곧 생명이 요구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구약에서 여러 곳에 그림자로 보여 주셨고 신약에서는 그 실체인 예수님이 오셔서 이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언약의식을 체결하셨습니다.
구약의 베리트는 신약에서 '디아데케'(diatheke)로 번역었는데 신약시대에는 '의지, 뜻, 서약, 유언'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 언약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께서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고 하셨습니다. 새 언약은 예수를 통해 새롭게 시작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이제 새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을 받고(행 10:43, 롬 11:27) 죄악이 기억되지 않고 구원을 받으며(사 43:25, 요 5:24, 요일 1:9). 이것은 주님의 유언이고, 의지시며 서약이셨습니다.
성찬에 임하는 자세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그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영(靈)으로 임재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고 그 떡과 잔을 받는 자에게 그것이 영의 양식이 되어 영혼을 소생시키며 심령을 강하게 함을 믿는 것입니다(영적임재설, 기념설). 아울러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그리스도와의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짐을 믿는 것입니다.(고전10:16-17,21).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생각지 않고 그냥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자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을 범하는 죄를 짓는 것이라 했습니다.(고전11:26-29).
성찬에 참예할 때마다 기억해야 할 성구가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아멘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의 도(道)임을 믿고 세례를 받은 자라면 주께서 오실 때까지(우리의 생명 다할 때까지) 기쁨으로 성찬에 참예할때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또한 전해야 합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 선행되어야 할 자세
1)28절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즉 자시 신앙상태를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그리고 습관적으로 우리의 성찬은 거룩한 의식이 아니라 죄를 짓고 먹고 마시는 의식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고전5:7-8절에 주께서 피 흘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며 더 이상 죄 가운데서 살지 말라 명하십니다. 그렇기에 그 은총에 참여하기 전에 자신의 허물을 살피며 자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구별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도들은 정결례로 손을 씻었습니다.
마26:28절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아멘. 이것이 바로 성찬의 의미이며 우리에게 죄 사함을 얻게하는 새 언약의 증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우리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이 잔은 이 성찬을 통해 믿음으로 포도즙을 마실 때 먹는 것입니다.
2)29절 성도는 주의 몸을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생각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에만 마음을 두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죄요(22),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인 것입니다(27).
30-32절“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이것은 성찬식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심으로 질병과 죽음으로 심한 고통가운데 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사실들을 성도들에게 확인시켜서 성찬에 대한 참된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판단이고 주의 징계입니다. 히12:5-8절에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찬을 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살펴서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서로 살피지 않으면 주께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들도 있는데, 우리가 서로 살폈더라면, 징계받지 않았을 것을 말씀합니다. 엄밀히 성찬은 벌을 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재확인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않은 자는 결국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13:5절에도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또 딛1:16절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하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복음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 그 말씀을 암송하며 무엇이든지 내 맘대로 할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안에서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샘리처드교수는 강의를 공개해서 유트브에도 올라와 가끔 보는데 이런 강의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아내와 함께 한국엘 갔는데, 길 거리에 신호등이 있고, 차도 안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초록등이 들어 올때까지 멍하니 기다리고 있더라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와 아내 뿐이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한국에서 정해 놓은 규칙이기 때문에 나의 개인적인 자유를 침범당해도 그것이 더 질서 있고 서로가 안전하기 때문이다. 라고 학생들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말을 들은 학생들은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왜 내 자유를 침범당해 하고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당연한 일인데 그들은 무단 행단하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자유, 바로 진리가 자유케한다는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 아래에서 우리는 그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 법이 바로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7장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신 것입니다.
11: 33-34절『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바울은 성찬을 통해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하듯이, 애찬을 통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는 나를 물속에 장사 지내고 그 물에서 올라 올 때 부활을 의미하고 그리고 우리의 주소가 하늘나라로 이전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엡2:5,6,19“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셨습니다. 하늘나라 시민은 하늘의 것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입니다. 말씀하시길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다.”골3:1-3절에서 전하시고 있습니다.
마치겠습니다.
성도는 현재의 자리에서 겸손히 회개하며 주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는 것이 인생의 참 지혜요 능력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으로 살지 않고, 주의 때를 바라보며 인내와 겸손으로 주의 말씀 앞에서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하늘등대지기 하늘산소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