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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곰절 스크랩 월간 곰절 뒷표지 불상 설명
교남 추천 0 조회 90 09.04.27 09: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쪽쪽문화재]가난한 농부가 발견한 국보 119호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2009년 04월 10일 (금) 김상철 학예사 babo@idomin.com
   
 

1963년 7월 16일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5남매를 거느린 가난한 촌부 강갑순(당시 41세)씨가 큰아들 전병철(당시 18세)과 함께 마을 앞 도로 공사장에 나가 돌을 나르던 일을 하던 중 곡괭이에 널찍한 잡석 하나가 덜컥 걸렸다.

무심히 밑으로 시선을 보내던 모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금빛 찬란한 작은 부처가 반듯이 누워 있었던 것이다. 모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조용히 품에 품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 깊숙한 곳에 숨겼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소문이 나기 시작해 마지 못해 대의면 지서에 불상을 신고하게 된다. 불상은 곧 경남도로 보내진 후 즉각 문교부에 보고되고 수차에 걸친 전문가들의 현지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에서 불상 광배(光背) 뒷면에 '연가 7년'으로 시작되는 4행 47자의 명문이 새겨진 국보급 문화재로 해방 후 땅 속에서 발견된 불상으로서는 가장 큰 것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이듬해 1964년 3월 30일에는 국보 제119호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발견으로 강 여인은 문교부장관이 주는 보상금 2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불상이 출토된 땅 주인도 20만 원을 보상 받았다. 당시 매장문화재 국가 귀속과 함께 정부가 책정한 40만 원을 법에 따라 반씩 나눈 금액이다. 당시로선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공포된 후 최대 액수였다.

의문스러운 점은 고구려 불상이 고구려와는 무관한 남쪽 의령에서 출토된 점과 불상의 출토지가 절터도 아니며, 불교 유적지도 아닌 일반 야산의 비탈진 곳에 급하게 돌로 만든 작은 공간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전란 등 위급 상황에서 피란민이 급하게 묻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이렇게 강 여인에 의해 빛을 보게 된 불상이 우리 가까이에서 찬란한 불교문화의 진수를 전하고 있다. 아쉽게도 박물관에 전시된 불상은 복제품이다. 진품은 중앙박물관에 있다.

/김상철(의령 박물관 학예사)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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