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의 우리말화
최근에 유행하는 신조어 준말에 대한 원고청탁을 받고 자료를 조사하다가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3.1만세운동 전후 시대에도 몇 가지 준말 신조어가 유행했다는 얘기다.
당시 유행된 새말로 모뽀, 모걸이란 게 있었다 한다. 모던 뽀이, 모던 걸을 일컫는 말이다. 신시대 유행을 따른 양복, 양장 옷차림으로 다방이나 카페, 영화관을 들락거리는 멋쟁이 신식 젊은이들을 말한 것이다. 그밖에 샐러리맨(월급쟁이), 핸드빽. 다혈질 따위가 신조어로 유행했다고 한다. 모뽀, 모걸은 사라졌지만, 샐러리맨, 핸드백, 다혈질, 하이힐은 우리말로 정착되었다.
한때 신조어였다가 지금은 보통말로 정착되어 널리 쓰이는 말로는 갓길, 꽃샘추위, 에울길, 거리두기, 시나브로, 그녀, 둔치, 도시락 등이 있다. 영어의 3인칭 대명사 she를 두고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까 하는 문제로 문단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라는 3인칭 단수 남성 대명사는 존재했다. 그 복수 대명사 '그들'은 소설가 김동인이 장편 <젊은 그들>에서 처음 만들어 썼다고 한다. 멋진 조어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말로는 3인칭 단수 여성 대명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 시인 박영준은 ‘그네’가 좋겠다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의 은사로 영문학자이자 국문 고시가의 권위자이셨던 무애(無涯) 양주동 박사는 ‘그미’가 좋다고 주장하셨다. 그러다가 많은 문인들이 ‘그녀’를 자주 쓰게되어 ‘그녀’는 이제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일제시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그녀’를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며 탐탁하게 보지 않은 이들이 더러 있다. 필자의 언론계 선배로 지금은 작고하신 김만기 씨가 그런 이들 가운데 한 분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중앙고를 나와 해방 직후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하여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통역관으로 복무한 분이셨다. 종군하며 익힌 영어 실력이 뛰어나 우리말을 영어로 옮기는 데 탁월하셨다. 국내 굴지의 합동통신사 외신부(지금은 국제부)에 근무하면서 독일의 DPA통신 한국 stringer(비정규 통신원)를 겸직했는데 그의 영문기사는 정말 정평 받을 만하게 뛰어났다. 나는 남북의 첫 이산가족 교환 방문이 열리던 날 그가 쓴 영문기사를 보고 탄복했다, 너무나 유려한 일품 영어 문장이었다. 그날 같은 사건을 두고 쓴 영미(英美) 특파원들의 기사를 모두 찾아 비교해 보아도 가장 멋진 명문 기사였다. 그는 잠시 하버드대 연수를 하면서도 멋진 영문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나는 그분을 주간으로 모시고 한글판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창간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이 ‘그녀’라는 대명사를 아주 못 마땅하게 여긴 것이었다. “그녀가 뭐야, 자꾸 ‘그년’이 연상되잖아.”하며 ‘그녀’를 못 쓰게 했다. 그래서 번역자들이 ‘그녀’로 써 보낸 원고를 모두 ‘그 여자,’ ‘그 여인,’ ‘여사’ ‘ 그 아주머니,’ ‘그 여배우,’ ‘그 여류 화가’ 등으로 고쳐 쓰게 했다. 나는 ‘그녀’가 이미 새말로 정착되어 모든 문필가들이 쓰고 있고 젊은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데, 그런 추세를 무시하는 게 옳지 않다고 지적하며 반박했다. 편집실의 후배들도 모두 내 의견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의 주장을 10년 넘게 밀고 나갔다. 언론계에서 편집 최고 책임자의 권위는 그렇게 힘이 세다. 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본사 연수 때도 그곳 편집국장이 주재하는 6, 7명의 최고위급 편집회의에도 visiting editor(본사 방문 편집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참석자는 각자에게 제공되는 원고 사본에 메모나 의견을 적어내는 일이 있는데 원고 사본에 빨간색 잉크로 글을 쓸 수 있는 건 오로지 편집국장뿐이었다. 편집국에서의 국장의 권위는 바로 왕의 권위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다. 이제 국립한국어연구원에서 새로 들어온 외래어에 대체하여 만든 우리말 신조어를 소개하겠다.
* zero corona : 고강도 방역
* safety call : 작업금치 요청 (근로자 보호를 위한 비상 요청)
* RPA : robotical process automation : 업무처리자동화
* flying mobility : 근거리 비행수단 (에어버스, 드론텍시, 개인용 비행도구)
* meconomy : 자기중심 소비(me + economy)
<컴퓨터 용어>
* net : 망/ * 네티즌 : 누리꾼 (인터넷 사용자)/ * 스팸메일 : 쓰레기편지/
* 리플 : 댓글/ * 콘텐츠 : 꾸밈정보 /* 이모티콘 : 그림말 /* 파이팅 : 아자/
* 스크린도어 : 안전문/ * 웰빙 : 참살이 / * 무빙워크 : 자동길
첫댓글 외래어에 대체하여 만든 우리말 신조어들이 멋집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기억했다 저도 활용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