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평전 또한, 암시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는 현대 문학의 문제아로도 알려져 있다. 평전은 그의 가계도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가계도 또한, 그려볼 수 있었다.
친가와 외가 모두 역사가 빈약하다. 친가는 할머니가 여러 번 재혼하는 바람에 나의 마지막 할아버지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매우 부지런한 농부였다. 하지만 너무 바른 효자여서 할머니를 고생시킨다.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매우 상처받은 여자였던 것 같다.
외가 또한, 상처가 많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외할머니의 인생 또한, 상처 많은 여인의 삶이었다. 그 밑에서 어머니는 자랐는데, 엄마의 사랑을 잘 받지 못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10대 시절부터 주눅 들고,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반면, 아버지는 남자여서 그런지 남모르게 강인하게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아야 했다. 할머니의 재혼으로 새 아버지 집에서 한동안 지내게 되었다. 그 시절 농사를 짓는 새 아버지를 도와 힘겹게 일을 도왔다. 그리고 어머니를 만나 결혼한 후 역시 닥치는 대로 일하며 가정을 꾸렸다.
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보다 젊을 때인 마흔 초반에 광산에서 일하다가 다친다. 그 후 한 해에 6개월을 정신병동에서 지내게 된다. 어렸을 적에도 힘든 삶이었는데, 다치기까지 해서 더욱 힘겨운 인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 어머니는 우리 3남매를 정신없이 길렀다.
다 자라고 보니 나 또한, 대학생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기는 깜깜하게 흘렀다. 그 세월이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방치 속에서 지내온 것이다. 난 이 사실을 서른 후반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 나를 괴롭힌 것은 2가지였다. 하나는 법학 자격증 공부에 빨리 합격해야 한다는 사실이었고, 다른 것은 동기였던 친구로 인한 괴로움이었다. 고시 공부에 빨리 합격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압박할수록 그 친구에게서 괴로움을 많이 느꼈다. 이때부터 나의 마음 안에 질투와 시기 그리고 신경증이 심함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이것은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중학교 때는 뭐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와 다투고 절교한 사건이 있었다. 나 자신에게는 당시 엄청난 충격이었을 텐데, 모르고 그냥 잊으며 지냈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 친구에 대한 엄청난 시기심에 불타올랐다. 그래서 수능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세월만 보낸 시간이 있었다.
그래, 신경증이다. 이것은 중학교 시절 나의 몸이 반응했다. 몸에 알레르기와 피부병이 나타났다. 이것은 내 신경이 편안해지면서 나아졌다. 그 시간이 무려 20년이었다. 이것은 나의 심리적 건강 상태를 반영한다. 친구가 거의 없지만, 사람들로부터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면서 나의 정신은 그나마 건강해졌다.
나의 가계도를 보면 왜 나의 정신이 건강할 수 없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를 읽다가 나의 인생 초반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책도 청년기 초기까지 읽었다. 그러면서 나의 조부와 부모님의 삶을 헤아려 볼 기회를 얻었다. 이것은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삶이 그 시절은 많은 역사적 상처와 질곡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내가 사람의 심리와 정신 건강에 관해 깊은 관심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인생 초반부터 청년기까지 주된 정서는 심리적 괴로움이었고, 신경증으로 인한 고통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왜 독서를 하되 평론을 하지 않고, 경영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난 내 마음을 관리하길 원한다. 즉 인생 자체를 경영하기를 바란다. 이것을 난 독서 하며 내가 깨닫게 되는 내용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것이다.
조이스 평전을 읽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이것이 내가 하는 작업의 본질이다. 난 책을 지식을 쌓거나 지혜를 높이려고 읽지 않는다. 나의 괴로움과 고통을 완화하고 이해하려는 방식으로 읽는다. 이것이 나의 독서법이다.
김신웅 독서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