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에서 국회와 정부는 모두 국민의 직접적인 선택에 의하여 국정을 분담하기에 양 기관의 의견차이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 두고
있다.
거부권제도, 법률안 재의요구제도는 그 중 하나이다.
거부권은 국회가 의결한 법안이나 예산안 등에 대하여 집행을 담당하는 정부가 그 수용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산안의 경우는 우리 지방자치법에 규정이 있고 헌법에서는 채택하지 않았는데 실제 집행을 보면 예산안을 거부한 경우 준예산으로
이어지지만 정예산에 비하여 턱도 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예산안의 거부권 행사는 실익이 적고 매우 고도의 정치적 해결책을 요구한다.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한 미국에서 예산안을 거부한 경우 연방기관들이 폐쇄되는 등 난리가 난 것을 상기하면 된다.
언뜻 보면 국회가 국가의사결정기관이고 정부는 집행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엄격한 역할분담을 해 놓은 것 같지만, 의사결정은 첫 단추를
끼우는 중요사항이므로 국회와 정부가 협의하여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최근 협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점에서 일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함에 있어 헌법에 위반한 경우에만 행사가 가능한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이 승만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거부권은 처음에는 미국처럼 국회의 견해와 정부의 견해가 다르면 행사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언제부터인지
법안의 내용에 위헌적 요소가 없으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굳어져 왔다.
지난번 국회법 파동에서도 법제처가 제시한 4가지의 거부사유 중 2가지는 국회법이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거부권은 대통령제에서 국회와 정부의 이견을 조정하는 수단이므로 위헌인 경우에만 행사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여파로 국민들이 행정부의 대국회 견제작용 모두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따라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하여 심한
거부감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은 국회가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발목만 잡는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많고 국회에 대하여 국민들이 존경심을 갖기는 커녕 국회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 자체가 크게 저하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권만은 위헌을 이유로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상임위에서도 청문회를 상시적으로 개최할 수 있게 하려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논의에서도 정부는 위헌성을 찾아내느라 고심하는
모양이다.
위헌성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우리 헌법은 권력분립을 채택하고 있다.
제66조제4항에서는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라고 하였고, 제40조에서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101조제1항에서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라고 하였다.
대통령제에서의 권력분립이란 입법 행정 사법이 각각 독립된 지위에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여 어느 한 권력이 다른 권력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둔다. 국회와 정부가 이른바 공화관계에 놓인 내각제와 다른 점이다.
한편 오늘날 국회는 입법기관으로서의 위상보다는 행정부 통제기관으로서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입법은 입법수요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정부가 주도권을 가질 수 밖에 없지만, 방대한 조직과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 행정부의 독주를 막고
권력분립의 이상을 지켜 나가려면 국회는 행정부의 집행상황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보다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필자의 개인의견이 아니고 1970년대 대학시절 헌법 교과서에도 쓰여져 있던 사항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은 올바르게 헌법에 규정되어야 한다.
대통령제 헌법에서는 각각의 헌법기관들에게 고유권한을 배정하되 이들 다른 헌법기관에 대하여 견제 등 관여를 하는 것도 헌법에 규정하게 된다.
국회와 정부와의 관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헌법조문들이 대표적이다.
제61조 ①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②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62조 ①국무총리·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은 국회나 그 위원회에 출석하여 국정처리상황을 보고하거나 의견을 진술하고 질문에 응답할 수 있다.
②국회나 그 위원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무총리·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은 출석·답변하여야 하며,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이 출석요구를 받은 때에는 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으로 하여금 출석·답변하게 할 수 있다.
제63조 ①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②제1항의 해임건의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에 의하여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은 헌법에 규정이 없는 사항이라도 실제 운영으로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은 200여년 전에 마련된 헌법을 가지고 있기에 엄격한 의미에서의 성문헌법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기본권은 물론 권력분립에 관하여서도 헌법에서 상세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에 없는 사항을 정하는데는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특히 헌법이 규정한 권력분립의 기본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법률로 정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있다.
헌법 제61조에서는 국회의 대정부 감시 견제권한의 대표적인 유형으로서 국회에 국정감사권과 국정조사권을 부여 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 내용을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
한편 국회법 위원회(소위원회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는 중요한 안건의 심사와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 증인·감정인·참고인으로부터 증언·진술의 청취와 증거의 채택을 위하여
그 의결로 청문회를 열 수 있다. "라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의 청문은 국회 본연의 기능인 법률안 등의 심사와 헌법에 의하여 국회에 부여된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사항에 국한시켜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서 청문이란 증인 등으로부터 증언 및 진술을 청취하고 증거를 채택하는 것인데, 이러한 청문은 사법부의 사법작용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국회가 국회법에 의하여 실시하는 청문이란 헌법에서 국회에 명백히 부여한 권한행사를 보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에서 "소관 현안의 조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청문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헌법이 예상하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 정부의 업무에 대하여 과도하게 관여하는 것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영역인 증거채택 등 재판작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서 헌법에서 인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 국회에 이러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특히 "소관 현안"이란 그 범위가 매우 추상적이어서 헌법기관간의 견제 균형을 의미하는 제도에서 사용하기에 매우 부적절한 개념요소하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현행헌법 개정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3공화국 헌법에서 국정감사를 도입했는데 사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였다.
행정부가 어떤 잘못을 하거나 의혹을 불러일으킨 경우에는 당연히 국정조사가 발동되어야 하지만, 해마다 일정시기가 되면 국회가 행정부를 덮쳐
모든 일을 까발리겠다는 의욕을 제도화한 국정감사는 어떻게 보면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 것이고 어떻게 보면 헌법이 추구하는 권력분립의 이념에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3공화국 시절 국정감사가 얼마나 많은 적폐를 안고 있었는지는 고참 공무원들의 회고담에서 잘 느낄 수 있었다.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강력한 국정감사권이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청탁과 압력행사의 기반을 조성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일부 국회의원들의
치부수단으로까지 전락한 사례들이 많았다.
유신헌법에서 이를 폐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 후 이른바 5공화국 헌법에서는 "국회는 특정한 국정사안에 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그에 직접 관련된 서류의 제출,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재판과 진행중인 범죄수사·소추에 간섭할 수 없다." 라고 하여 국정감사권 대신 국정조사권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국정조사권은 국정감사권에 비하여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국정조사권 등 행정부 통제권한은 소수파의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여소야대라는 이례적 상황이라면 몰라도 여당이 먼저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정해진 때에 무조건 실시하는 국정감사권이 필요한 것처럼 인식될 소지도 있었고 실제 전 두환 정권 당시 국정조사권이 제대로
발동된 적이 없었다.
현행헌법 개정 당시 야당의 국정감사권 부활 주장에 대하여 여당은 국정조사권을 유지하되 발동요건을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까지로 완하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랬더니 행정부의 일부 부처가 차라리 국정감사권을 받아 주고 발동요건이 완화된 조사권은 폐기하자고 나섰다.
이른바 잘 나가는 부처들인데 자신들만 뻔질나게 국정조사를 받느니 차라리 모든 부처가 동시에 매를 맞는 국정감사가 좋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데 국회의원들의 생각은 또 달랐다.
여당까지도 일부 부처의 주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국정감사를 부활시키고 아울러 국정조사권도 유지시키는데 발동요건 완화는 슬그머니
없어졌다.
현대행정의 과제인 행정부의 독단을 견제한다는 목적의 제도들이 실제 어떻게 도입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 개최 문제는 이러한 과거 경험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청문회나 국정조사 내지 국정감사는 모두 행정부 견제 내지 통제수단이다.
이것이 강화된다고 하여 그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상임위의 청문회 개최가 헌법의 명문에 저촉되는 부분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고 오늘날 권력분립의 이념을 제대로 구현하는데는 오히려 그런 제도의
강화가 정답이라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된 정부측의 불만, 즉 청문회 개최대상이 국정현안 등 너무 추상적이라는 주장 또는 잦은 청문회로 국정이 마비된다는 주장도 헌법의 문리해석으로는
위헌문제와 결부시키는데 궁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위헌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정부측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고 거부권을 행사할만한 사항이다.
현재 해마다 이루어지는 국정감사는 적어도 3공화국 시대만큼 적나라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재벌총수의 국회 출석여부를 놓고 흥정을 벌이는 작태가 있지만 일반적인 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금 국민들 눈높이에서 본다면 국정감사자료요구로 국회의사당 뒷켠에 화물차가 몇대씩 들어서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헌정운영과 관련된 제도를 논의할 때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상임위의 청문회가 확대도입되더라도 잘 운영될 수는 있다.
그러나 만일 행정부나 재계의 우려대로 국회가 국정을 농단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 가서 제도를 폐지하자고 해도 국회가 응할 것인가?
이 제도의 도입을 놓고 행정부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
헌법재판소에 가져가려고 해도 위헌성이 있어야만 위헌결정을 받아낼 수 있을 뿐이고 운영이 엉망이라는 이유로 그 제도의 효력상실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행정부의 입장에서 결론은 거부권의 행사를 통해 도입 자체를 막는 길 뿐이다.
행정부의 대응은 문리적 해석에 따른 위헌여부가 아니라 그 제도가 과연 헌법이 구상한 권력분립의 원칙에 부합되는지, 그리고 그 제도가 과연 제대로 운영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하는데 불행히도 우리 국민들에게 그런 정도의 안목을
요구하는 것은 아직은 어렵다.
위헌을 이유로 내세우건 행정부의 불편과 불합리를 내세우건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에 여야가 똘똘 뭉쳐 거부권압도를 보여줄 최악의 가능성도
있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주세법은 위헌임이 확실한데도(나중에 위헌결정을 받았으니까) 지방소주 보호에 목을 맨 지방출신 국회의원들이 여야
불문하고 반발할까, 그 결과 레임덕이 조기에 가시화될까 두려워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지방의회에서는 단체장의 거부권행사에 여야의 색깔이 덜 분명해서인지 거부권 압도가 자주 벌어진다.
국회의원들은 여야 막론하고 자신들의 권한이 커지기를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의 선택은 난감할 수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거부권 압도를 당하더라도 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치적 파동을 겪으면서 어렵게 도입된 제도는 운영에서도 조금은 자제를 보여줄테니까.
끝으로 한 마디.
헌법학자들은 이번 사태에도 침묵한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면서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개진하려 들지 않는다.
국회법 파동 당시 학회 세미나 주제로는 등장하던데 말도 안되는 주장들이 난무했다.
현안이 된 중요 정치적 쟁점에 대하여 헌법학자들은 왜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도 꺼내기를 주저하는가?
나중에 헌법재판소에 가서는 서로 한 마디 하려고 경쟁을 벌리면서.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올바르게 해 주는 실력과 소신을 갖춘 헌법학자들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