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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화(聖化)와 상급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 단계로 되어 있다. 구원의 과거적 단계는 중생과 칭의(稱義)이며 그것은 예수 믿는 자들에게 이미 이루어졌다. 구원의 현재적 단계는 성화(聖化)이며 그것은 예수 믿는 자들 속에서 지금 진행 중이다. 구원의 미래적 단계, 곧 구원의 완성은 영화(榮化)이다.
성화의 본질
성화(聖化, 거룩하여짐; sanctification)가 무엇인가?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重生) 의롭다 하심을 받은(稱義) 자들이 그 인격과 삶에 있어서 실제로 거룩해지는 과정을 가리킨다. 소요리문답 제35문답, “성화란 하나님의 값없으신 은혜의 일인데, 그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전인(全人)이 새로워지고, 죄에 대해 점점 더 죽고 의에 대해 살 수 있게 됩니다.”
전인(全人)의 실제적 변화
성화는 전인(全人)이 새로워지는 것, 즉 영육 전체, 지정의(知情意)의 전 인격, 전 생활이 죄에 대해 점점 더 죽고 의에 대해 사는 것이다. 죄는 죄책과 부패성으로 구성된다. 칭의는 우리의 죄책이 법적으로 제거되는 것이지만, 성화는 칭의에 근거하여 우리의 부패성이 실제로 극복되는 과정이다. 또 칭의는 객관적인 사건이지만, 성화는 내면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인격과 삶의 변화의 문제이다. 성화는 사람의 인격과 삶의 실제적 변화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이루시고 성령께서 적용하신 법적 의(義)를 성도들이 인격과 삶에서 실제로 나타내는 것이다. 성도들은 법적으로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거룩해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제로도 의롭고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성화는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주요 내용은 지식과 도덕성이다. 사람은 범죄함으로 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었다. 그러나 그는 구원을 통해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평생의 성화의 정도는 별로 크지 않은 듯하지만, 지식과 깨달음의 차원에서 그것은 상당히 진전된다. 성도들은 일생의 성화 과정을 통해 무엇보다 자신의 죄악성과 무능함,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을 깨닫는다. 물론 그는 그것과 함께 거룩함과 의로움, 선함과 사랑과 진실함 등의 도덕성에 있어서도 상당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레위기 11: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9:2 등). 에베소서 1: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 .”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에베소서 4:22-24, “(받았으니) 곧 옛 생활방식에 관하여 너희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와 거룩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라”(원문 직역).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베드로전서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성화는 성경에서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라고 표현된다. 에베소서 4:13, 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예물과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셨음같이 너희도 사랑으로 행하라”(원문 직역). 골로새서 3:13, “피차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베드로전서 2:21,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점진적이며 불완전함
성화는 점진적이다. 중생은 영적 출생이며 성화는 영적 성장이다. 사람이 출생한 후 자라듯이, 성도는 영적으로 중생한 후에 점점 성화된다. 중생(重生)과 회개와 칭의는 단회적(單回的)이며 즉각적이지만, 성화는 중생에서 시작되어 일평생 동안 계속되는 점진적 과정이다. 야곱의 생애를 흔히 성화에 비교하듯이, 성도의 일생은 성화의 훈련 과정이다. 채소가 자라려면 단지 수개월이 필요하나 참나무는 백 년이 필요하듯이, 성도들의 성화는 오랜 기간과 많은 훈련들이 필요하다. 구원받은 성도가 점점 더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지만, 성화는 매우 더디어 보인다.
또한 성화는 지상에서 불완전하다. 육신의 죄악성은 죽을 때까지 완전히 극복되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며 경험이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도의 구원은 이런 불완전한 성화에 의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단번 속죄의 의(義)에 의존한다. 성도의 성화가 아무리 높은 단계에 도달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이루어주신 의(義)에 미치지 못한다. 성도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의 때문에 완전하며 성도는 최종적 영화의 단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성도는 죽을 때 그 영혼이 거룩함에 있어서 완전케 되어 즉시 영광의 천국에 들어간다. 그것은 성도가 죽을 때 그 영이 즉시 천국에 들어갈 것을 가르친 성경의 여러 구절들(눅 23:43; 고후 5:8; 빌 1:23 등)에 당연히 내포된 진리이다. 거룩한 영이 아니고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23은 천국에 올라간 영들을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이라고 불렀다. 소요리문답 [제37문] 신자들은 죽을 때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습니까? [답] 신자들은 죽을 때 그 영혼들이 거룩함에 있어서 완전케 되어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 그 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므로 부활 때까지 그 무덤들에서 안식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이 성도가 지상에서 완전 성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과 경험에 배치된다. 마태복음 6:12, 13,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로마서 7:7-26,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 . .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갈라디아서 5:17,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스려 욕심을 내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리며,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함이니라”(원문 직역).
알미니우스파는 의식적 죄만 죄로 간주한다. 그들은 마치 10m 사다리를 놓고 그 꼭대기에 올라가 ‘나는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덕적 표준은 우리가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디 엘 무디는 “사람들은 무죄(無罪)에 더 가까와질수록 그것에 대해 더욱 적게 말한다”고 말했다.
다음 성경구절들은 잘 해석해야 한다.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바를 보일 뿐이다. 야고보서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135)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여기의 온전함은 완전 무죄가 아니고, 영적 성숙함을 의미한다. 노아나 욥 등도 완전 무죄한 자들이 아니었다.
요한일서 3:6, 8,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범죄치 아니하나니’136)라는 말은 중생한 성도가 계속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중생한 성도가 계속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까닭은 하나님의 씨 곧 새 생명의 원리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요일 3:9).
성화해야 할 이유
성도는 왜 성화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성화되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성화가 구원의 당연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갓난아기가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정상적인 일이다. 기형아가 아니라면, 아기는 자라게 마련이다. 영적으로도 똑같다. 성화는 반드시 중생, 회개, 칭의를 따른다. 각 사람의 성화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성화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실패치 않는 구원이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이기는 자’라는 말은 성도들 가운데 이기는 자가 있고 지는 자가 있음을 의미하는가? 중생하고 칭의함을 받은 자들 가운데 성화에 실패하는 자가 있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참으로 중생한 자, 참으로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세상을 이길 것이다.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로마서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
성도가 성화되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너무 큰 은혜, 즉 너무 귀하고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의 목표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죄 짓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고 그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만 행하는 것이다.
로마서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로마서 12:1, 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린도전서 6:19, 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후서 5:14, 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성화는 필수적 과정이므로 성도는 자신의 성화를 위해 분발해야 한다.
성화의 방법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됨
성화는 하나님의 전적인, 값없으신 은혜요 그의 하나님의 초자연적 활동이다.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빌립보서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24,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 . . .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히브리서 13:20, 21, “영원한 언약의 피로 말미암은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특히, 성령께서는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이제 중생시킨 성도들 속에 거하신다. 에스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성령께서는 성도들 속에 계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믿고 행하게 도우신다. 요한복음 14:16, 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παράκλητος 파라클레토스; 위로자, 권면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 성령은 또한 그들을 도우신다. 성도들은 계속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로마서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13, 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갈라디아서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22, 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친절]와 양선[선함]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사람편에서의 성실한 노력이 필요함
성화는 사람의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의 선행의 능력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인격적 존재로 취급하신다. 사람은 중생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며 소극적이었지만, 성화에서는 능동적, 자발적, 협력적이어야 한다. 성화에서 인간의 성실한 노력은 성도의 당연한 의무와 책임이다.
빌립보서 2:12-13,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매튜 풀(Matthew Poole)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했다: ‘우리는 구원의 일에 있어서 게으르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일함으로써 그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은 구원의 공로나 값이 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주께서 풍성하게 완성하신 것을 적용하는 것이며, 구원의 원인이나 근거가 아니고 단지 우리가 구원에 참여하는 과정과 수단일 뿐이다’(Com- mentary on the Holy Bible, III, 691).
로마서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 . .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고린도후서 7:1,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데살로니가전서 4:1-3,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더욱 많이 힘쓰라. . . .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베드로후서 1:5-10,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 . .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성화의 수단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화를 위해 몇 가지 수단들을 주셨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기도, 및 하나님의 섭리적 지도 등이다.
첫째로, 성화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이다. 골로새서 1:28-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여기에 있다. 디모데후서 3:15-17,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유익한 책이다.
둘째로, 성화의 또 하나의 수단은 성례이다. 바르게 집행된 성례는 말씀 속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증거하고 기억케 하기 때문에, 그것은 그 의식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큰 은혜와 유익을 준다.
셋째로, 성화의 또 하나의 수단은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영적 도움과 능력을 받을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다.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성도의 기도 제목들 가운데 영적 성장, 곧 성화는 매우 중요한, 기본적 제목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넷째로, 그 외에도 하나님의 여러 가지 섭리적 훈련과 지도는 성도의 성화를 위한 수단들이다. 예를 들어, 직업 현장에서의 훈련, 시험과 유혹, 고난 등이 그러하다. 그것들은 다 성도를 겸손케 하고 성결케 하는 수단들이다. 베드로전서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성도는 이러한 수단들을 성실히 사용함으로 영적으로 점점 더 자라며 거룩해져야 한다.
성화와 상(賞)
선행은 구원의 목표인 동시에 성화의 당연한 열매이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에베소서 5:9, “빛의 열매[성령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성경은 선행에 대한 상(미스도스)에 관해 많이 말씀한다. 예수께서는 상에 대해 많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10:41-42,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상(賞)은 각각 다를 것
상(賞)은 선행과 봉사의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를 것이다. 다니엘 12: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마태복음 5:11 -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9:16-17,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25:19-21,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특히,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들에게 각각 수고하고 충성한 만큼의 상이 약속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3:8, 14,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고린도전서 3:12-15의 말씀은 종종 오해된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 말씀은 일반 성도의 성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목사의 사역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금과 은과 보석은 바른 성경적 교훈을 말하고, 나무나 풀이나 짚은 그릇된 인간적 교훈을 말한다. 이 말씀의 요지는, 목사가 바른 교훈으로 사역하면 마지막 날 상을 받을 것이지만, 목사가 바른 교훈으로 사역하지 않으면 자신은 구원 받을지 모르나 자기의 교훈을 받던 자들의 멸망으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는 것이다.
상(賞)은 하나님의 은혜임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선행이 하나님께 상을 받을 만한 공로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의 선행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고 오직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포도나무 비유에서, 주께서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5). 또 사도 바울은 주를 위해 많은 고난을 받았고 역사상 아마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종이었지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했다(고전 15:10). 또 사도 요한이 본 천국의 환상 중에 24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영원하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계 4:10-11).
더욱이, 우리의 선행이 하나님께 상을 받을 만한 공로가 되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볼 때 여전히 부족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는 여전히 예수님의 보혈 공로밖에 없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는 진술하기를, “그들의 순종에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능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라도 공로를 쌓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이상을 할 수 있기는커녕, 그들이 의무상 해야 할 만큼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께 상을 받을 만한 공로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실 상도 그의 은혜이다. 주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해야 마땅한 자들이다(눅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