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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같이 연구실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큰 아이가 영국으로, 작은 아이가 며칠간의 달콤한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는 날... 그들이 자는 시간에 슬그머니 늘 그랬듯 집을 나왔습니다.
녀석들이 오늘 모두 떠나네.... 왠지 보고싶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평소처럼 표현할 줄 모르는 게으른 아비.. 미안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통화하고... 11시쯤, 수염을 깎고 허스름한 차림으로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모두가 초록색.. 곳곳에 보라색, 흰색, 분홍색, 빨간색... 형형색색의 꽃들이 인사하고 있군요. 벚꽃잎들은 어떤 녀석은 달려 있고, 작은 바람에도 계속 떨어지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한 겨울 추위 속에서 저 꽃잎을 피우려 견딘 세월인데.. 어느 놈은 달려 있고 어느 놈은 먼저 떨어지네요.. 그렇다고 떨어진 꽃잎이 왜 나먼저 떨어뜨리냐고 분노하고 있지도 않군요. 그저 그런게 삶이라고 초연히 받아들이는 겸허함들... 아.. 또 배웠습니다.
한 바퀴 돌면서 어느 꽃은 발걸음이 놓이는 위험한 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고, 어느 꽃은 안전한 곳에서 해맑게 웃습니다. 저들 역시 그저 그렇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만남과 이별... 만남은 반드시 이별을 숨기고 있고, 어느 때엔 반드시 헤어져야겠지요. 아내와 저도.. 벚꽃처럼 피고 지는 그 '사이'가 짧으냐 기냐의 차이이지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것.. 바로 삶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 '사이'인 과정..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사이'인 과정에서 '어떻게 사느냐'만 가질 수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어차피 언젠간 이별해야 한다면, 삶이란 그 과정에서 그저 '아끼고 사랑'하면 될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제 이별하냐는 것은 내 뜻과는 무관하게 올테니까요... 그저 지금인 이 '사이'에서 사랑하면 될 텐데...
순간 많은 추억들이 스칩니다. 그때 그렇게 오만하게 굴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그때 그렇게 교만에 빠져 까불어대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분홍색 꽃 속에서 제 아내를 보았습니다. 흩날리는 꽃잎들 속에서 아들 훈이와 민이가 보였습니다. 문득 아비인 저보다도 엄마인 그녀가 어쩌면 두 아들 녀석들의 오늘 떠남을 보고 무척 외로움을 느끼겠다 싶었습니다. 열달.. 뱃속에서.. 이후 껴안고 살았던 유아시절들.. 제가 한 일은 별것 없어도 그녀가 한 일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났습니다. 아.. 그녀가 외로운 날이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해준 꽃들이 고마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가 참 고마웠습니다. 힘들지만 그렇게 올곧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고마웠습니다. 제 자리에 늘 자리하는 아내가 참 고마웠습니다. 함께 만나 언젠간 헤어져야 할 많은 벗들이 고마웠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학교 제자들의 모습.. 아.. 그들이 고마웠습니다..
아.. 이렇게 자식들이 잠시 떠나는 오늘... 저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들을 만날 수 있어 참 좋은 날입니다... 꽃, 바람, 봄, 추억들.. 만남들..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지를 또 발견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만남과 이별... 탄생과 죽음..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동안에 만나는 수많은 인연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인연들과 한없이 사랑을 주고받으면 된다는 이 단순한 발견이 오늘 저를 더더욱 기쁘게 합니다..
소중한 존재들.. 참 좋은 존재들.. 운동 삼아 제 옆을 지나는 어느 노인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여느 여인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이곳저곳에서 봄나물 캐는 할머니 몇이 눈에 듭니다. 조용히 묵상했습니다. '그들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들 모두 고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 오늘은 제게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최원영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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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들과의 헤어짐으로 찹찹했던 교수님 !
공원 "let it be"분위기에 흠벅 젖어 정선생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마음 좋아 보여요.
예쁜 글 쓰시는 교수님 부러워요.저도 덩달아 행복합니다.
글을 이제야 봤네요.
글을 읽다보니 제가 큰딸을 처음 떠나 보냈을 때가 생각납니다. 고생하러 가는것도 아니고 자신의 뜻을 펼치려 공부하러가건만 왜 그리 맘이 아프던지요..공항에서 들여보내고 화장실가서 엉엉 울었던..ㅠ 사모님께서 많이 힘드셨을것 같네요.
그 와중에도 모든것을 사랑으로 승화하시는 샘은 이시대에 진정한 천사이십니다.^^ 정말 존경합니다.
잠시 들렀는데 가슴 찡~~하게 울고 갑니다. 존경하는 선생님과 오라버님,,,그리고 호시 언니 영,사 모두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