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 기타치는 보육원 원장
베트남 빈증성의 ‘윈 테이 빈’
9살 때 오른팔 잃어 왼손만 가지고 연주
한글날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 손으로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무대에 선다.
기타리스트의 이름은 윈 테이 빈(Nguyen The Vinh)이다
베트남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는 '윈 테이 빈'은 우리나라 가요와 베트남 유명 작곡가의 노래 등을 연주한다.
테이 빈은 오른팔이 어깨죽지 바로 아랫부분부터 없기 때문에 왼손만 가지고 기타를 친다. 테이 빈은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세계를 돌면서 공연한 수익금을 모아 초·중·고·대학생을 가르치는 '해바라기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15세부터 기타를 연주했으니 벌써 경력이 30년이나 된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한 손 만 가지고 어떻게 기타를 치는 것일까?
아버지는 그가 4살 때 전쟁 중에 사망했다. 엄마 역시 7살 때 사망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 어린 시절 다른 사람의 소를 키워주고 돈을 받아 살았다.
그러다가 9살 때 소 등에서 떨어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병원에도 가지 않고 대충 치료하고 넘겼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면서 결국 그는 오른팔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호치면 경제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을 때 오른 팔이 없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기에 의수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어느 날 12살 때 같이 살던 삼촌이 기타를 가지고 왔다. 집 앞 정원에서 기타치는 삼촌 모습을 보고 너무 하고 싶었다. 조금 남은 오른팔에 나무를 덧대어 쳐보기도 했다. 기타 칠 때 쓰는 작은 삼각형 플라스틱 조각인 피크(Pick)를 발가락에 끼워 쳐보기도 했다. 3년을 이렇게 가진 노력을 해보았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너무 슬펐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손으로 치는 것이 안될까?’
테이 빈은 오른팔이 없기 때문에 왼팔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왼손으로 기타의 줄을 잡으면서, 기타 줄도 튕기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5개의 왼손가락 중에서 일부는 줄을 튕기고, 일부는 줄을 눌러 음정을 잡아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처럼 왼손을 기타 밑으로 넣고 위로 향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새끼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는 자세가 나온다. 그러나 새끼손가락은 너무 힘이 약해서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게다가 손목을 너무 많이 꺾어야 하기 때문에 움직임도 불편했다.
테이 빈은 한 번 더 변화를 줬다. 왼손을 위에서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세를 잡으면, 엄지와 검지로 기타 줄을 강하고 유연성있게 튕길 수 있다. 중지 · 약지 · 새끼 손가락은 자연히 줄을 눌러주는 임무를 맡는다.
여러 사람 앞에서 공연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이다. 호치민 다방에 무대를 만들고 공연을 시작했다. 한 손으로 기타 치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테이 빈은 매년 일본, 미국, 유럽 등을 방문해서 공연을 갖는다. 한국은 2008년에 한 번 방문한 데 이어, 올해 두번째로 왔다.
그가 2010년 호치민 인근 빈증성에 설립한 보육원은 교사와 직원 7명이 관리한다. 자신이 고아로 자라면서 장애인 시설에서 학교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처럼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학생들을 돕는 것이 보육원의 설립목적이다. 고아원 이름은 해바라기(선플라워 · sun flower)라는 뜻의 ‘흐엉즈엉’으로 지었다.
공연단에는 테이 빈은 물론이고,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인 푹(Phuc)과 베트남 다문화가정도 동참할 것이다.
지금 해바라기 보육원에는 장애인 9명을 포함해서 가정생활이 어려워 학교교육을 받기 힘든 학생, 고아 등 45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초등학생 6명, 중학생 20명, 고등학생 18명이다.
테이 빈은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숙식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교육하는 일이다. 바른 자세를 갖고 좋은 습관을 갖도록 교육한다.”고 말했다.
해바라기 보육원을 나온 대학졸업생들은 미국 1명, 호주 1명 등으로 갔다. 일본으로 간 36명의 졸업생들은 아사히 신문을 배달하면서 숙식비를 직접 벌며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