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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일기
○ 일 시 : 98. 5. 30(토) - 6. 2(화) 【1박 2일】
○ 대 상 : 지리산(1,915m)
○ 코 스 :
(5.30. 23:44분 발 진주행 무궁화호 열차) 영등포역 → 구례구역
(5.31. 05:20) → 성삼재(05:50) → 노고단(07:00) → 반야봉 → 뱀사골 산장(11:00) → 연하천 산장(14:00) → 벽소령 산장(16:00) → 세석 산장(20:00 1박)
(6.1. 08:00) → 장터목 산장(10:00) → 천왕봉(11:30) → 칠선계곡 → 추성동(18:30) → 남원(20:00 1박-송영준 家)
○ 누구와 : 집사람
○ 어느 때 : 춘계 휴가(경찰청 경호계장 근무할 때 첫 춘계 휴가)
○ 1998. 5. 30일(토요일) 맑음
직장의 重要 行事가 무사히 끝났다. 과장님과 전화통화 후 사무실을 나왔다. 이제부터 휴가다.
서둘러 집으로 오니 가족들은 성당에 가고 아무도 없다. 차분히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아내가 내가 메모한 산행 계획서를 참고로 이미 간식과 찌개 거리, 김, 라면 등 부식을 사다 놓았다.
성당에 갔던 가족들이 집에 오면서부터 짐을 꾸리는 데 조금 혼란스러워진다. 아내와 의견 충돌 때문이다.
아내는 간식과 주식을 되도록 많이 갖고 가야 한다며 참치통조림, 쌀, 김, 찌개 거리, 라면 등을 넘칠듯하게 배낭에 넣는 것이 아닌가! 또한, 산에서 쓸 샴푸, 수건, 비누, 빗, 화장품까지 모두 꾸린다. 아~ 이것은 溫泉 旅行이지 山行이 아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등산 경험이 없는 아내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색깔이 같은 남방을 두 개 내놓지 않는가!
“여보 우리 산에 갈 때 이것 함께 입고 가요.” 하는 것이다.
아니 등산도 아니고, 온천 여행도 아니고 이제는 신혼여행이라니!! 하도 어이가 없다.
지금처럼 어려운 IMF 시절에 등산하는 데 새 남방을 사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막무가내다.
다른 것은 내 생각을 따를 테니 남방만큼은 꼭 입고 가자고 조르기 시작한다.
거기에 妻弟까지 가세하여 이미 산 것이니 입고 가라고 통사정을 하지 않는가.
하는 수 없이 아내 뜻대로 남방을 입고 가기로 한다. 그리고는 등산에 필요한 최소의 것만 준비하여 배낭을 꾸렸다.
아들을(초등학교 2학년, 7살) 처가댁에 맞기면서 장인 장모님의 양해를 구하였다.
“시집보낸 내 딸 고생시키더니 이제는 휴가 때라고 장모까지 고생시키느냐~”고 장모님께서 뼈있는 농담을 하신다.
두 아들은 돌아올 때 꼭 선물을 사주는 조건을 제시하고 설득하였다. 차마 두 놈을 떼놓고 나서기가 어려워 천 원씩 돈을 주면서 위로를 하였더니 작은 녀석이 천원을 도로 주면서 “엄마 차비에 보태세요.” 하지 않는가! 아내가 너무나 衝擊(?)을 받은 모양이다. 주는 돈을 지갑에 넣고 기쁜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영등포에서 23:44분에 출발하는 진주행 무궁화호 열차였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았고 간혹 등산복 차림의 손님도 눈에 띄었다.
○ 1998. 5. 31일(일요일) 맑음
조는 듯 자는듯하며 구례구역에 05:20에 도착하였다.
‘성삼재’ 가는 일행이 있으면 택시 합승을 할까 하고 주위를 살폈으나 등산복 차림의 사람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우리 부부만 택시를 타고 2만5천 원을 냈다.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앞 기차는 등산객이 많아 합승이 수월하였다고 한다. (영등포에서 23:40분 출발 열차로 우리가 탄 열차보다 4분 먼저 출발했던 여수행 열차)
성삼재에 도착하니 05:50, 이미 날은 훤하게 밝았다.
새벽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노고단’까지 호젓한 산행을 시작하였다. 노고단까지는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잘 정리가 되어 있었고 길옆 숲 속에는 각종 나무에 설명표지가 붙어 있어 나무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노고단에 도착하니 06:40,
옛날의 노고단이 아니었다. 산장이 멋들어지게 지어져 있고, 넓은 야영장이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지리산 쉼터는 야영장을 모두 없애고 산장에서만 숙박할 수 있게 하였단다. 노고단에는 아직 야영장이 있었고 별도의 공동 취사장까지 있었다. 공동 취사장에서 참치 김치찌개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코펠이 이가 맞지 않아 밥이 설었다. 그래도 아내와 첫 산행, 첫 식사라서인지 입맛이 좋다. 산에서 모든 취사는 내가 할 테니 해주는 밥 드시고 산행에 지장 없도록 하라고 아내의 사기를 북돋웠다.
잠시 산행 계획을 확인한다.
여기 오기 전에는 대학생 때의 산행 경험에 비추어 하루 산행 거리를 짧게 하고자 생각하였으나 막상 아침을 먹고 나니 욕심이 생긴다. 첫날 연하천 산장까지만 가려 했으나 벽소령 산장까지 거리를 늘렸다. 아내에게 다소 무리가 될 수 있었지만 짐을 최대한 가볍게 하면 될 것 같았고, 아내 또한 학창 시절에 지리산을 종주한 경험이 있다고 하여 그리 어려움이 없을 거로 생각하였다.
지리산은 내 산행 역사에 매우 의미 있는 산이다.
최초의 지리산 산행은 1982년 대학 2학년 사월 초파일 연휴 때다.
뜻 맞는 동기 3명과 함께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구례에 도착하여 화엄사 뒤 계곡과 능선을 따라 노고단에 오른 것이 첫 산행이었다. 1박을 한 후 뱀사골 계곡으로 하산하여 남원에서 춘향제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것을 시작으로 3학년 때는 산악부를 만들고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모두 지리산 산행을 했다. 특히 두 차례의 산행에도 불구하고 때를 맞추지 못했던 세석평전 철쭉을 보기 위해서 무박 산행까지 하면서 세석 철쭉을 보았던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아내에게 지리산 굽이굽이 얽힌 이러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산행을 하니 더욱 기분좋다.
이번 산행을 무사히 마치면 다음 휴가 때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다니도록 해야겠다.
아내가 피곤해했으나 그런대로 잘 간다.
어느덧 지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반야봉’ 입구에 다다른다. 몇 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반야봉을 올라갔다가 가라고 조언하였지만 갈 길이 멀어서 바로 직행하였다. 그러고 보니 여태 반야봉을 제대로 올라간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갈 길이 멀어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지도상으로 ‘총각’ 샘이 가까워졌으나 샘은 보이지 않고 시간은 정오를 넘어가고 있다.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반대편에서 오는 분에게 총각 샘을 물으니 ‘연하천’ 산장을 지나서 한참 가야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아내 얼굴에 실망의 빛이 한순간 도는 것이 아닌가. 분명 내 기억으로는 연하천 못미처 총각 샘이 있었고, 그곳에서 식사 한 일이 있는데, 샘이 말라서 없어졌단 말인가? 나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일단은 수통에 물이 적으니까 연하천까지 가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걸었다. 그러나 약 20분 정도 걸으니까 눈에 익은 모습이 나오지 않는가! 그러면 그렇지. 총각 샘은 지리산이 없어지지 않는 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내도 그 순간 남편에 대한 믿음이 다시 돌아오는 듯 보인다.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커피 한잔을 진하게 마시며 13:30까지 여유를 즐겼다.
열심히 걸어 14:00경 연하천 산장에 도착한다. 생각보다 일찍 왔다. 집사람 걷는 것이 마치 등산화를 다리에 걸고 무거워서 어기적거리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잘 걷고 잘 따라와 주었다. 기특하게 생각이 들어 벽소령에 도착하면 무엇이든지 사주겠다고 하니까 시원한 콜라를 사달라 한다.
벽소령 산장에 도착하니 16:00경이다.
원래 계획한 일정보다 2시간이나 일찍 왔다. 일단 아내에게 콜라를 사주었다. 가격은 2,000원이나 백 개라도 사주고 싶었다.
첫날 산행에 너무나 잘 따라와 주었고, 생각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였으니 나로서는 매우 고마울 뿐이다.
조금 떨어진 샘까지 한참 걸어 내려가 수통에 물을 채웠다.
산장 앞 의자에 앉아 쉬고 있으니 노고단에서 보았던 아가씨 두 분이 매우 힘든 표정으로 벽소령에 도착한다. “아침에 옆에서 식사하면서 녹차 끓였던 아가씨들이 아니냐?”며 말을 붙였다. 그들도 매우 반가워한다. 그러면서 두 분이 신혼부부 아니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한순간 당황하였지만 이내 즐겁고 기쁜 마음이 차올랐다. 신혼여행인데 결혼 8년 만에 산에서 처음 하는 山 신혼여행이라고 이야기하였더니 이번에는 아가씨들이 너무나 황당한 모습을 보인다. 아가씨들은 우리 부부의 복장을 보고 산으로 신혼여행 온 젊은 부부로 봐 주었던 것이다.
산행 출발 전에 내게 받았던 질책,
이번 산행을 위하여 커플 남방을 산 것을 가지고 왜 쓸데없는 돈을 썼느냐? 우리가 무슨 신혼여행을 가느냐? 등등의 갖은 구박을 받았던 아내의 서러움이 “신혼부부”라는 말 때문에 한순간에 해소하는 것이 아닌가!!
한바탕 웃음을 토해내고 세석산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일박을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아가씨들은 해외원정을 준비하던 산 꾼들로 경험이 많은 분들이다. 세석평전까지는 10KM이지만 험한 길이 많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조언한다. 매점 총각은 약 3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하니 빠르면 저녁 8시, 늦으면 9시에는 도착할 것 같다. 아내 의견을 물으니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왜 멈추느냐고 무작정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의 체력이 미심쩍었지만, 벽소령에서 대낮부터 술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세석까지 가기로 마음을 굳히니 마음이 편하다. 아내도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벽소령 작전도로 끝 지점쯤에서 아내는 어깨가 아프다고 하소연한다. 잠시 멈추어서 아픈 어깨의 원인을(?) 찾아본다. 다행스럽게도 한결 낫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학생 때나 총각 때나 남자끼리만 산을 다녔으니 여자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라.
선비 샘에 도착했다. 국립공원관리 방침으로 선비 샘 야영장도 폐쇄했다.
그러나 선비 샘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세석에 가까이 갈수록 산길은 더욱 험해진다. 철 사다리도 자주 등장하곤 하였다. 학생 때 겨울산행에서 세석산장까지 가는데 랜턴을 켜고 야간산행을 하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는 무릎과 발이 몹시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나도 무리한 산행에 따른 무릎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내가 잘 참고 잘 따라 준다. 어느덧 지리산의 해가 숨기 전, 저녁 7시 40분경에 세석산장에 도착하였다. 꼭 3시간 30분이 걸렸다.
세석은 언론을 통해 안 것처럼 야영을 금지한다. 대피소에서 숙영해야 하고 공동 취사장을 준비해 두었다.
일단은 저녁 식사 하는 것이 급선무다. 산장 사용 규칙이 있는 것 같아 아내에게 가서 알아보라 했더니 산장 관리인이 집사람에게 핀잔을 주더란다. 집사람 하는 말 “조금 있다가 애 아빠랑 와서 이야기하겠다.”고 남편을 강조하여 말했다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공동 취사장에서 참치 찌개를 끊이고 소주를 한잔하면서 아내를 달랬다. 옆에 혼자 온 총각에게도 한 잔 주고, 집사람과 소주 팩을 3개나 마셨다. 저녁 먹고 양치질하고 나니 대충 9시가 넘은 것 같다.
산장 숙박비용은 1인당 5,000원씩이다. 만 원을 주고 침상 통로를 사이에 두고 침낭을 폈다. (침구류 제공은 별도 5,000원 추가)
아내에게는 후배에게 빌려온 겨울용 침낭을 주고 나는 여름용 침낭을 폈으나 바닥이 마루라 몹시 추웠다. 매트리스가 하나밖에 없어 집사람을 줄까 망설이다가 내가 사용하기로 했다. 덕분에 쉽게 잠이 들 수 있었다.
○ 1998. 6. 1일(월요일) 맑았다가 비
시간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일찍부터 사람들이 일어나서 부산을 떨기 시작한다. 그 바람에 잠이 깨어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5시 30분, 아내는 아직도 한밤중이다. 너무 안쓰러워서 깨우지 않고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온몸은 쑤시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특히 무릎 관절이 너무 아프다. 맨손 체조를 하며 온몸을 서서히 풀기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이니 조금은 괜찮은 것 같다. 하늘을 보고 날씨를 살폈다. 엷은 구름이 덮였지만, 걱정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어제 일기예보도 오늘 오후 늦게 남부지방부터 비가 올 것이라 했다.
공동 취사장에 가서 어제 남겨 놓았던 그릇을 확인한다. 다행히도 아무 이상이 없다.
어젯밤 꿈에 취사장에 두었던 음식 그릇을 쥐들이 넘나드는 꿈을 꾸었던지, 아니면 아침에 눈을 뜨고 누워 있으면서 그렇게 될 가능성에 대하여 상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은근히 걱정하였었다. 아침 식사로 미역국과 북엇국을 준비하였다. 점심 식단으로 짜장밥을 준비하려고 밥을 좀 더 하였다. 어느 정도 식사 준비가 끝날 때쯤 집사람이 깬다. 세수하고 와서 하는 말이 머리를 감고 싶었는데 물이 너무나 차가워서 못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없다. 아니 이처럼 높은 산에 와서 샴푸로 머리 감으려고 하다니… 여자의 미(美)에 대한 욕심이 이렇게도 끝이 없단 말인가? 아내에게 산에서는 꼭 필요한 세수만 하여도 아름답다고 훈수해 주었다.
식사하고 나니 8시다. 지도를 보면서 오늘 산행계획을 그려본다.
오늘 중으로 남원에 도착하여 영준이네 집에서 잠을 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려면 천왕봉에 올라서 ‘야호!’를 외친 후 지리산에서 가장 험로인 칠선계곡으로 갈 수밖에 없다. 아내에게 ‘칠선계곡은 한 번 산행한 경험이 있으니 그대로 하자고…’ 하고 출발을 하였다. 만약 이렇게 산행을 하게 되면 2일간 산행으로 지리산 종주, 57KM의 장거리 산행 등 매우 대단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집사람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열심히 걸어 10시에 장터목까지 왔다.
천왕봉에 올라가기 전에 ‘통천문’을 지나게 되는데 아내는 하늘을 보고 누워서 올라갔던 적이 있다며 옛날 기억을 되살린다. 그런데 ‘통천문’에 도착하니 누워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한바탕 웃으면서 천왕봉에 올랐다. 우리 말고는 한 팀만 있었다. 천왕봉에 올라 이렇게 사람이 적고 또한 바람이 없는 날씨는 처음이었다. 조금 있으니 몇 사람이 더 올라와 기념사진을 부탁했다. 벽소령에서 겪었던 신혼부부 에피소드를 생각하면서 ‘신혼여행을 온 부부인데 예쁘게 찍어주세요~’ 하고 얘기한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매우 대견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졸지에 신혼여행 기념사진을 자랑스럽게 찍었다. 칠선계곡으로 내려간다고 하니까 마침 스님 한 분이 그쪽으로 가신다고 하였다. 11시 45분, 우리가 먼저 칠선계곡으로 출발하였다.
일단은 첫 물줄기를 만날 때 점심을 먹기로 하고 열심히 내려갔다.
천왕봉 바로 밑은 너무나 가팔라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조금 내려가니 스님이 바로 뒤따라 붙였고 우리를 앞서 먼저 내려갔다. 전날의 무리한 산행이 온몸을 아프게 하였고, 특히 무릎관절은 집사람이나 나나 무척 심하게 쑤셨다.
첫 번째 물줄기가 왜 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가 마치 시원한 폭포 소리로 착각이 들곤 하였다. 어느덧 진짜 물소리가 가깝게 들리더니 텐트가 하나 있고 계곡을 건너는 물이 있었다. 매우 반갑다. 그런데 그 텐트에 웬 건장한 30대 후반의 남자가 하나 있는 것이 아닌가? 텐트며 복장이 전문 산 꾼처럼 보인다. 우리가 식사하는 자리에 와서는 입산한 지 4일째고 이곳 칠선계곡에서 이틀째라고 얘기하면서 남는 식량이 있으면 달라고 한다. 라면, 쌀, 김치 등 남은 식량을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 한 채 2시경 다시 출발하였다.
길은 정말로 험하고 가끔 끊기고, 계곡을 건너고 낭떠러지를 위태위태하게 건너기도 하였다.
그런데 계곡을 한 삼십 분가량 내려오니까 회색빛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빨리 하산을 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하산길이고 이제 남은 계곡 길이가 약 10KM 정도가 남았으니 설마하니 이런 봄에 집중폭우가 내리겠느냐 하며 마음 한구석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에게 좋은 날씨를 허용하지 않았다.
폭포가 많은 지점, 즉 천왕봉으로부터 약 5KM 가량 내려오니 빗방울이 가랑비에서 굵은 빗방울로 바뀌는 것이었다. 숲 속 길은 어두컴컴하였고, 낭떠러지 바윗길은 비에 젖어 미끄럽기 한이 없다. 안경은 빗방울과 입김으로 뿌옇게 되어 시야를 가린다. 가끔 길 표시 리번을 시야에서 놓쳐 길을 잃기도 하면 심리적으로 순간 당황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힘겹게 뒤따라오는 아내에게 너무 큰 짐이 될 것 같아 속으로만 애를 태우면서 계속 내려왔다. 아내에게 빨리 걸을 것을 권유하면서도 절대로 넘어져서 다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래도 집사람의 걸음걸이는 늦었고 비는 계속 줄기차게 내렸다.
이런 속도로 하산하면 잘못 계곡에서 불상사가 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아내 배낭의 짐을 대부분 내 배낭에 옮기고 하산 속도를 높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뒤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순간 ‘사고다!’ 하면서 뒤로 돌아보니 집사람이 넘어져서 얼굴이 땅에 처박혀 있고 다리는 바위 사이에 꼬여 있다. 재빨리 다리를 들어주니 다리를 들지 말고 상체를 들라고 소리친다. 상체를 들어 일으켜 세우니 얼굴에 흙이 잔뜩 묻어있다. 아내는 거꾸로 쳐박혀 넘어진 사람의 상체를 들지 않고 왜 다리를 먼저 드느냐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넘어져도 다리를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고, 집사람은 얼굴을 다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행히도 어느 한 곳 다친 데가 없었다. 아내의 화난 모습에 얼굴을 다치더라도 살아서 무사히 하산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느냐고 설득을 하였다.
만약 우리 둘 중에 누구든지 걷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최악의 상황이다.
실제로 비는 계속해서 내리지, 앞으로 남아 있는 계곡은 약 8KM 가량 남았지, 또한 칠선계곡을 내려오는 팀이 우리 말고는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상황에서 누구든지 다치면 꼼짝 못 하고 칠선계곡 귀신이 될 수 있었다.
천왕봉에서 만났던 산 친구들이 아마 칠선계곡에 내려가면 저녁이 될 것이라고 한 말과 후배 문영이가 칠선계곡은 지리산에서 제일 긴 계곡이라 생각보다 힘들 것이라고 했던 말들이 귓전에 계속 맴돌았다. 옛날 기억을 더듬으면서 조심조심 꾸준히 내려갔다. 다행스럽게도 집사람은 기대 이상으로 잘 가주었고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 배낭은 비에 젖어 무겁고, 무릎 관절은 통증이 심하고 정말로 최악이었다.
뿐만 아니라 첫물에서 만난 사람에게 모든 식량을 주었고, 남아 있는 간식도 연 양갱 2개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탕 서너 알. 쉬면서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간식을 먹여 칼로리를 보충시켰다.
아주 힘들게 힘들게 내려오다 보니 갑자기 계곡에서 산 능선 쪽으로 등산로가 붙었다.
잠시 쉬어 지도를 보며 위치를 파악하니 ‘추성리’가 바로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안심되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옛날 화전민 거주했던 흔적이 나온다. 감나무, 호도나무가 보이며 무사히 내려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벌써 6시가 가까웠다.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오다 보니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집사람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환호한다. 그런데 두 번째 울음소리를 듣고 보니 아이 울음 소리가 아니고 염소 울음소리다. 염소 울음소리라고 바로 잡아주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염소 소리를 들으며 조금 내려오니 산길 옆으로 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나타난다.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집사람에게 간식을 먹자고 제의를 하였다. 순간 아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연 양갱도 다 먹고 사탕도 다 먹어서 배낭에는 어떤 간식도 없는데 무얼 먹자고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를 하느냐고 하였다. 가까이 있는 뽕나무 밑으로 가서 오돌개(표준말 : 오디)를 한 움큼 따서 먹으라고 주었다. 집사람은 처음 먹는 것이다. 하지만 입에 넣고 우물거리더니 이내 탄성을 지른다. 순간 둘은 어린애처럼 뽕나무에 매달려 오돌개를 열심히 따먹었다. 다 먹고 서로를 쳐다보니 하얀 이가 드라큘라 치아처럼 불그레 죽죽 하지 않는가.
조금 더 내려가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 다리가 나타나고 멀리 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억이 조금 나는 대나무밭이 나오고 마침내 인가에 도착하였다. 옛날 초가집을 개조한 허름한 초막에 개량 한복을 입고 수염이 긴 모습의 남자가 가스 불에 무엇인가를 끊이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배낭을 풀고 쉬었다. 그 남자에게 막걸리가 있느냐고 물으니 막걸리는 없단다. 다른 먹을거리를 파느냐고 물으니까 “대추정”이라는 발효된 차를 판다고 한다. 두 잔을 청하여 마셨다. 한잔에 3,000원인 차는 독특한 맛으로 갈증과 피로를 풀어주는 듯하였다. 주인 남자는 우리 부부 인상이 매우 좋다고 인연이 닿는 차(茶)를 한 잔 주겠다며 다기에 차를 따라 준다. 항암효과가 탁월한 상황버섯 차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 말로만 듣던 것이라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힘든 고생 끝에 이렇게 귀한 차를 먹어볼 수 있다니 집사람도 매우 즐거워하였다.
도사같은 사람의 친절을 뒤로하고 두지동을 떠나 버스를 탈 수 있는 추성동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하였다.
추성동에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마침 들어오는 택시가 있어 바로 인월까지 타고 나갔다.
1박 2일간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참으로 힘들고 즐겁고 많은 경험을 한 매우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
첫째로는 결혼 후 집사람과 처음 함께한 산행이었으며, 또한 집사람이 기대 이상으로 산행을 잘해주었던 점이다. 그래서 다음 장기 산행에는 애들도 함께하기로 하며 다음 산행은 설악산을 가자고 약속하였다. 둘째로는 1박 2일의 짧은 산행에 57KM나 되는 지리산 종주 코스, 특히 칠선계곡으로 하는 종주 코스를 무사히 마친 대기록을 세웠다는 점이다. 하산하니까 집사람이 농담으로 히말라야 등반 준비했던 벽소령에서 만났던 아가씨들보다 더 잘 걸었으니 다음에는 히말라야도 갈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셋째는 폭우가 내리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지리산에서 제일 길고 험하며 인적이 적게 다니는 칠선계곡을 집사람과 함께 무사히 내려왔다는 점이다. 정말로 무사히 내려온 후 하느님께 성호를 그으며 감사를 드렸다.
지리산을 뒤로하면서 설악산의 산행계획을 구상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다.
‘다음 신혼여행은 설악산이야.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설악산으로 결혼 8년 만의 즐거운 신혼여행을 가는 거야!’ 하면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1998. 6. 12(금) 김대중 대통령 방미 기간에 사무실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