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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계 영역에 있던 스트레스 정보가 편도체라는 정보처리 장치를 지나 대뇌 피질로 보내지고, 그 곳에서 벌계 정보의 네트워크가 완성되면 대뇌 속에 그 벌계의 자극이 기억된다. 대뇌가 그 중핵이며 감각과 감정의 수용 기관인 벌계 영역과 보수계 영역에는 대뇌와 같은 사고력과 분석력은 없다. 즉 이것은 벌계 영역과 보수계 영역 자체에는 벌계를 보수계로 전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력이 있는 것은 대뇌뿐이다. 대뇌에 의하여 벌계의 기억이 보수계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많은 것을 시사한다. 뇌의 상태가 좋을 때란 보수계 자극에 대해서 보수감각이 정확히 반응하는 상태이며, 이런 뇌의 상태일 때 자기 치유력이 활성화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사고와 학습을 통하여 변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도시를 연결하는 철도 혹은 도로는 왕래하는 사람의 수나 열차의 주행량에 비례하여 점차 발전하게 될 것이며 왕래하는 사람의 수나 주행하는 열차의 수가 줄어들면 그 도로는 차츰 쓰이지 않게 될 것이고, 철도 또한 폐선될 것이다. 보수계의 길이나 벌계의 길도 이와 비슷하다. 벌계의 길을 사용하지 않는, 예를 들면 대뇌에 입력된 별계 기억을 거의 재생시키지 않으면 드디어 이 길은 통행금지가 되고, 네트워크가 차단되어 재생되지 않게 된다. 중요한 점은 벌계 네트워크든 보수계 네트워크든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확대되며, 반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을수록 감소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하얀 쌀밥에 쇠고기 국", 또는 아이들이 즐겨 먹고 있는 '치킨과 햄버거'는 현재는 확고한 보수계의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식품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원흉임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순간 그것들은 벌계의 기억 속으로 편입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학습에 의하여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잡곡밥과 푸성귀만으로도 얼마든지 만족한 식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 신경 면역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치유력은 자기 자신의 비뚤어진 의식과 심리, 사회적인 과도한 짐(스트레스) 때문에 혹은 부적절한 라이프 스타일을 취함으로써 거의 무력하게 생각될 정도로 그 힘이 억제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능력으로 본래 작동해야 할 치유력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져 온 의식할 수 있는 범위의 자신에 의해서 억제되어 균형을 깨뜨리고 있는 모습, 아파하는 모습이 우리의 삶, 즉 석가모니가 탄식한 '고통으로 가득찬 바다'이다. 이렇게 억제되어 있는 자기 복구능력을 끌어내기 위한 열쇠가 되는 사고방식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진실된 신뢰감을 회복하는데 있다. 본연의 자기와 지식으로 포장되어 있는 자기, 학습과 경험으로 규정되고 만들어진 자기의 편협함과 왜소함을 확고하게 이해하는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무한으로 확대된다. 본래의 자신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해하고, 그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관습으로 포장된 가짜 자신이 자연의 일부인 진정한 자기의 힘을 억제하는 것은 팔꿈치를 반대로 구부려서 팔을 부러뜨리는 것과 같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오만한 자신의 틀 속에 틀어박혀 있으면 사물에 대한 시각이 좁아지게 되어 솔직한 감정을 지니기 힘들어진다. 다시 말하면 '자신은 강하다'라고 인식하면 '**일 리 없다. **을 해야만 한다. **가 가능하다'와 같은 무의식의 속박에 규정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나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도움을 청해야 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며, 쓸데없는 기대에 부응하려하지 않게 되고, 위협이 아닌 것은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으며,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조금 힘을 빼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에 여유와 탄력을 부여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은 고독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므로 그 연관 속에서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고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무자각의 선택을 넘어 신념의 의식화로.... ◈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 당신이 만일 어떤 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하자. 왜 자신은 고민해야 하고, 괴로워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납득할 만한 답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여야 한다. 즉 '자신에게 그 과제를 부여할 만큼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발상을 하는 것이 좋다. 더욱이 자기가 놓여진 입장, 상황, 환경을 정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좀더 해방감이 생기게 된다. 자기가 놓여져 있는 상황은 자기가 생각하였던 것만큼 나쁘지 않을 때가 많다. 또한 행복과 기쁨은 추구해서 얻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도 있다. 즉 자기는 지금 불행하고 자기는 지금 기쁘지 않으므로 따라서 추구해 간다고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자기 주변의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을 안다는 것은 현실 검토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즉 기쁨이란 본래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능력을 다르게 말하면 어떤 문제에 대하여 폭넓은 검토와 객관화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가 된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도 넓어지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손수건이 없어져서 '어딘가에 있겠지'라며 찾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자기의 주머니에 있었는데... 이런 감각으로 기쁨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이것이 서서히 느껴지는, 어깨의 힘을 빼는 듯한 감각일 때 해방감이 있고, 인생은 풍요로워지고 몸은 활기차게 변화되어 갈 것이다. ◈ 휴식과 기분전환의 효용
인간의 지식은 고통의 근원이다. 한번 아름다움을 알게 된 인간은 추한 것을 혐오하게 되어, 원하는 아름다움은 점점 더 희귀해지고 혐오하는 추한 것은 점점 더 늘어난다. 선을 추구하면 할수록 선은 점점 위축되어 가고 원치 않는 악은 자꾸 늘어 간다. 그것이 모든 불행의 화근이다. 맛을 알기 때문에 맛이 없는 것을 괴로워한다. 사실 맛이 없는 것이 진정한 맛이다. 공기에 맛이 있는가? 물에 무슨 맛이 있다면 어쩌겠는가? 이제 문명의 중독자가 된 인간은 조금의 더위도 추위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약체가 되었다. 어린아기들은 맛을 구별하지 않고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 분별심으로 사물을 구별하지 않고 아무 것이나 신기해하고 친근감을 가지고 만지려 한다. 그러나 자라면서 어른들이 그들을 문명화시킴으로써 그들 안에 있는 순수하고도 위대한 삶의 능력을 시들게 만들어 간다. 노자는 지식의 사용처는 진리(도, 생명, 신)를 행하는 데 있고, 비진리(이기심, 소유, 욕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음을 타이르고 있다. ◈ 환상을 벗어 던지고 자유의 나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소용이 닿지 않는 것이 없건만, 인간만이 자신의 지식에 의해 좋고 나쁨을 분별하고는, 수만 가지 중의 불과 몇 가지만을 좋다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가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산다. 이러한 독선이 편견을 낳고 투쟁과 대립을 불러오는 시원이 되며, 결국은 자신과 우리 모두를 황폐화 시켜나가는 독소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또 얼마나 빈곤하고 가련한 삶인가? ◈ 마음의 최고 미덕은 겸손과 감사 그래서 원인이 없는 질병은 없다. 중풍, 당뇨, 암, 류머티스 등의 병마도 그 원인을 찾아보면 마음에 있다. 중풍에 걸리기 쉬운 타입의 사람은 자기를 늘 우위에 놓는 특권의식이 강하다. 이 특권의식이 통하지 않을 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다. 즉 화를 낸다. 그 화는 밖으로 표출될 때도 있고 마음속에 머물러 그대로 입력될 경우도 많은데, 이는 둘 다 독이 된다. 자식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하지만, 부모가 그것을 강요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것이 마음의 본질이요, 마음은 어디까지나 자유며, 그 누구의 간섭도 허락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자율에 맡겨진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부모에게 순종하고 안 하고는 어디까지나 그 자식이 선택할 자율적 자유의 문제다. 부모로서는 자식을 보호, 선도하는 좋은 이해자가 되어야 하는 도리가 있다. 부모가 자식의 불효를 상대로 버럭 화를 내고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자식의 불효를 꾸짖어 깨우치게 하고, 효도로 인도하려는 사랑의 말과 행동과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를 내는 것은 이기적인 자기 중심의 감정이요, 꾸짖는 것은 이타적인 사랑의 행동이다. 이렇듯 마음은 그 주인이 핸들을 꺾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인간은 원래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자연환경, 가정, 대인관계, 교통, 통신, 상호 의존과 조화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명이 가능하다. 남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고 미련한 존재라는 것으로, 늘 신세지고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겸손과 감사의 의식구조로의 전환이 자신을 더욱 크고 넉넉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자양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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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계 영역에 있던 스트레스 정보가 편도체라는 정보처리 장치를 지나 대뇌 피질로 보내지고, 그 곳에서 벌계 정보의 네트워크가 완성되면 대뇌 속에 그 벌계의 자극이 기억된다. 대뇌가 그 중핵이며 감각과 감정의 수용 기관인 벌계 영역과 보수계 영역에는 대뇌와 같은 사고력과 분석력은 없다. 즉 이것은 벌계 영역과 보수계 영역 자체에는 벌계를 보수계로 전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력이 있는 것은 대뇌뿐이다. 대뇌에 의하여 벌계의 기억이 보수계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많은 것을 시사한다. 뇌의 상태가 좋을 때란 보수계 자극에 대해서 보수감각이 정확히 반응하는 상태이며, 이런 뇌의 상태일 때 자기 치유력이 활성화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사고와 학습을 통하여 변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도시를 연결하는 철도 혹은 도로는 왕래하는 사람의 수나 열차의 주행량에 비례하여 점차 발전하게 될 것이며 왕래하는 사람의 수나 주행하는 열차의 수가 줄어들면 그 도로는 차츰 쓰이지 않게 될 것이고, 철도 또한 폐선될 것이다. 보수계의 길이나 벌계의 길도 이와 비슷하다. 벌계의 길을 사용하지 않는, 예를 들면 대뇌에 입력된 별계 기억을 거의 재생시키지 않으면 드디어 이 길은 통행금지가 되고, 네트워크가 차단되어 재생되지 않게 된다. 중요한 점은 벌계 네트워크든 보수계 네트워크든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확대되며, 반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을수록 감소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하얀 쌀밥에 쇠고기 국", 또는 아이들이 즐겨 먹고 있는 '치킨과 햄버거'는 현재는 확고한 보수계의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식품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원흉임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순간 그것들은 벌계의 기억 속으로 편입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학습에 의하여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잡곡밥과 푸성귀만으로도 얼마든지 만족한 식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 신경 면역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치유력은 자기 자신의 비뚤어진 의식과 심리, 사회적인 과도한 짐(스트레스) 때문에 혹은 부적절한 라이프 스타일을 취함으로써 거의 무력하게 생각될 정도로 그 힘이 억제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능력으로 본래 작동해야 할 치유력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져 온 의식할 수 있는 범위의 자신에 의해서 억제되어 균형을 깨뜨리고 있는 모습, 아파하는 모습이 우리의 삶, 즉 석가모니가 탄식한 '고통으로 가득찬 바다'이다. 이렇게 억제되어 있는 자기 복구능력을 끌어내기 위한 열쇠가 되는 사고방식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진실된 신뢰감을 회복하는데 있다. 본연의 자기와 지식으로 포장되어 있는 자기, 학습과 경험으로 규정되고 만들어진 자기의 편협함과 왜소함을 확고하게 이해하는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무한으로 확대된다. 본래의 자신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해하고, 그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관습으로 포장된 가짜 자신이 자연의 일부인 진정한 자기의 힘을 억제하는 것은 팔꿈치를 반대로 구부려서 팔을 부러뜨리는 것과 같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오만한 자신의 틀 속에 틀어박혀 있으면 사물에 대한 시각이 좁아지게 되어 솔직한 감정을 지니기 힘들어진다. 다시 말하면 '자신은 강하다'라고 인식하면 '**일 리 없다. **을 해야만 한다. **가 가능하다'와 같은 무의식의 속박에 규정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나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도움을 청해야 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며, 쓸데없는 기대에 부응하려하지 않게 되고, 위협이 아닌 것은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으며,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조금 힘을 빼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에 여유와 탄력을 부여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은 고독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므로 그 연관 속에서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고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무자각의 선택을 넘어 신념의 의식화로.... ◈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 당신이 만일 어떤 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하자. 왜 자신은 고민해야 하고, 괴로워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납득할 만한 답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여야 한다. 즉 '자신에게 그 과제를 부여할 만큼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발상을 하는 것이 좋다. 더욱이 자기가 놓여진 입장, 상황, 환경을 정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좀더 해방감이 생기게 된다. 자기가 놓여져 있는 상황은 자기가 생각하였던 것만큼 나쁘지 않을 때가 많다. 또한 행복과 기쁨은 추구해서 얻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도 있다. 즉 자기는 지금 불행하고 자기는 지금 기쁘지 않으므로 따라서 추구해 간다고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자기 주변의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을 안다는 것은 현실 검토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즉 기쁨이란 본래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능력을 다르게 말하면 어떤 문제에 대하여 폭넓은 검토와 객관화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가 된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도 넓어지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손수건이 없어져서 '어딘가에 있겠지'라며 찾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자기의 주머니에 있었는데... 이런 감각으로 기쁨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이것이 서서히 느껴지는, 어깨의 힘을 빼는 듯한 감각일 때 해방감이 있고, 인생은 풍요로워지고 몸은 활기차게 변화되어 갈 것이다. ◈ 휴식과 기분전환의 효용
인간의 지식은 고통의 근원이다. 한번 아름다움을 알게 된 인간은 추한 것을 혐오하게 되어, 원하는 아름다움은 점점 더 희귀해지고 혐오하는 추한 것은 점점 더 늘어난다. 선을 추구하면 할수록 선은 점점 위축되어 가고 원치 않는 악은 자꾸 늘어 간다. 그것이 모든 불행의 화근이다. 맛을 알기 때문에 맛이 없는 것을 괴로워한다. 사실 맛이 없는 것이 진정한 맛이다. 공기에 맛이 있는가? 물에 무슨 맛이 있다면 어쩌겠는가? 이제 문명의 중독자가 된 인간은 조금의 더위도 추위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약체가 되었다. 어린아기들은 맛을 구별하지 않고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 분별심으로 사물을 구별하지 않고 아무 것이나 신기해하고 친근감을 가지고 만지려 한다. 그러나 자라면서 어른들이 그들을 문명화시킴으로써 그들 안에 있는 순수하고도 위대한 삶의 능력을 시들게 만들어 간다. 노자는 지식의 사용처는 진리(도, 생명, 신)를 행하는 데 있고, 비진리(이기심, 소유, 욕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음을 타이르고 있다. ◈ 환상을 벗어 던지고 자유의 나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소용이 닿지 않는 것이 없건만, 인간만이 자신의 지식에 의해 좋고 나쁨을 분별하고는, 수만 가지 중의 불과 몇 가지만을 좋다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가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산다. 이러한 독선이 편견을 낳고 투쟁과 대립을 불러오는 시원이 되며, 결국은 자신과 우리 모두를 황폐화 시켜나가는 독소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또 얼마나 빈곤하고 가련한 삶인가? ◈ 마음의 최고 미덕은 겸손과 감사 그래서 원인이 없는 질병은 없다. 중풍, 당뇨, 암, 류머티스 등의 병마도 그 원인을 찾아보면 마음에 있다. 중풍에 걸리기 쉬운 타입의 사람은 자기를 늘 우위에 놓는 특권의식이 강하다. 이 특권의식이 통하지 않을 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다. 즉 화를 낸다. 그 화는 밖으로 표출될 때도 있고 마음속에 머물러 그대로 입력될 경우도 많은데, 이는 둘 다 독이 된다. 자식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하지만, 부모가 그것을 강요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것이 마음의 본질이요, 마음은 어디까지나 자유며, 그 누구의 간섭도 허락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자율에 맡겨진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부모에게 순종하고 안 하고는 어디까지나 그 자식이 선택할 자율적 자유의 문제다. 부모로서는 자식을 보호, 선도하는 좋은 이해자가 되어야 하는 도리가 있다. 부모가 자식의 불효를 상대로 버럭 화를 내고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자식의 불효를 꾸짖어 깨우치게 하고, 효도로 인도하려는 사랑의 말과 행동과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를 내는 것은 이기적인 자기 중심의 감정이요, 꾸짖는 것은 이타적인 사랑의 행동이다. 이렇듯 마음은 그 주인이 핸들을 꺾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인간은 원래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자연환경, 가정, 대인관계, 교통, 통신, 상호 의존과 조화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명이 가능하다. 남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고 미련한 존재라는 것으로, 늘 신세지고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겸손과 감사의 의식구조로의 전환이 자신을 더욱 크고 넉넉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자양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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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생활자체가 일부 특수계층을 제외하고는 항상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만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일부러 운동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먹을 것을 찾아 수렵을 하거나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은 적어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적에도 뛰거나 걸을 필요도 없고, 집을 지어 불을 지피기 위해서 나무를 벨 필요도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일도 앉아서 하고 이동할 적에도 앉아서 하며 시간이 나면 앉아서 쉰다. 몸은 쓰지 않으면 쇠퇴해 버리고 만다.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각종 질병들도 대부분 운동부족 때문에 생긴 것들이다. 심장질환, 동맥질환, 정신계통장애, 골다공증, 암이 많은 것도 올바르지 못한 식생활과 함께 운동부족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 우리는 운동을 안 하기 때문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 4-6ℓ정도되는 약수통을 양손에 들고 일주일에 5일이상 약수터를 가라 그러면 피가 손, 발, 허리 결국 몸 전체에 돌게 되고, 단전호흡은 저절로 이루어져 산소가 충분히 들어오고 나쁜 가스가 잘 나가기 때문에 몸이 건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면 혈액 순환이 좋아지고 혈압도 정상으로 내려가고 칼슘도 효율 있게 뼈 속에 정착한다. 아침마다. 달리고 일요일에 등산하는 생활습관은 훌륭한 건강법의 하나다. 하지만 달리기나 등산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직장인에겐 계단이야말로 행운의 건강로가 될 수 있다. 더욱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평지를 걷는 것보다 3배나 그 효과가 크다. 계단을 빨리 올라 숨을 가쁘게 하자.
◈ 평상과 경침 이와 함께 자신의 신체 조건에 맞는 높이의 둥근 나무베개를 목뼈(경추)에 받치고 자면 어긋난 경추를 바로잡을 수가 있다. 한편 나무베개를 통하여 경추가 압박을 받기 때문에 혈관이 수축되므로 혈관 속의 피의 순환속도가 빨라져서 노폐물의 제거에도 좋고 신경도 자극하여 신진대사를 도와준다. 평상생활과 나무 베개를 베는 생활을 하면 척추와 경추의 어긋난 것(부탈구)을 바로하여 주고 부수적으로 신경을 자극하여 줌으로서 질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 붕어운동 ◈ 모세혈관운동 ◈ 합장합척운동 ◈ 등배운동
◈ 유산소운동이란... ◈ 즐거운 마음으로 변화있게... ◈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들... ▶걷기 - 이 운동이 갖는 제일 큰 장점은 운동을 하는데 특별한 기술이나 연습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누구나 걷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준비할 것은 걷기 편한 운동화를 구하는 것뿐이다. 실내와 실외 어디에서고 할 수 있다. 다칠 위험도 적어 안전한 운동이다. 다만 문제점으로는 너무 편하게만 걸어서는 운동이 되지 않을 수 도 있다는 점이다. 운동으로 걷기를 할 때는 천천히 걷거나 아니면 놀기 삼아 걸어서는 안 된다. 걷기는 다른 운동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시간을 단축하고, 운동의 강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걷든지, 아니면 언덕길을 오르든지 손에 무거운 것을 들고 걸으면 된다. ▶달리기 - 최근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운동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칼로리도 많이 연소되기 대문에 체중도 준다. 운동이 힘들기 때문에 엔돌핀도 많이 나오고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효과가 있다. 이 운동의 단점은 발, 다리, 허리, 따위의 관절을 다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수영 - 수영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운동이다. 수영할 장소와 어느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게 제약이긴 하지만, 물 속에서 하기 때문에 다른 운동에 비해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물의 부력 때문에 관절이나 근육을 움직이기가 쉬워 근육골격 계통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운동이다. 헤엄치게 되면 운동감각등 자유로워지고 부유감도 느낄 수 있는 데다가 호흡도 율동적으로 할 수 있어 깊이 몰두할 수 있다. 또 걷기나 달리기와 달리 하반신뿐만 아니라 상반신도 쓰기 때문에 근육을 균형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 심장혈관 계통에 미치는 부담도 달리기보다는 크지 않다. ▶자전거타기 -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운동을 유산소 운동으로 하고자 할 경우에는 상당히 힘들게 해야만 한다. 평탄한 길에서는 시속25킬로미터 이상으로는 달려야 하며 15킬로미터보다 느리게 달려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이 운동은 속도감 때문에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가 있고, 주위의 수려한 경치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 큰 이점이다. 무릅이 약한 사람에게도 적당한 운동이다. 관절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어 운동장에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에어로빅스 - 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미리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음악에 맞춰 유산소 운동과 근육강화 운동을 하는 게 보통이다. 대개는 초급?중급?고급으로 과정이 구분되어 있고, 조직적으로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확실한 동기가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다른 이들과 어울리면서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운동항목에는 점프나 달리기와 같이 관절이 다칠 염려가 있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요즘에는 이런 충격을 줄인 에어로빅스를 개설한곳이 많다.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 운동이다. ▶줄넘기 - 운동 선수들은 유산소 운동으로 줄넘기를 많이들 한다. 이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간단하다는 점이다. 줄도 싸고 언제 어디서라도 할 수 있다. 숙달되면 리듬에 최면효과가 생겨나고 싫증도 나지 않을 뿐더러 시간이 빨리 지나치는 것같이 느끼기도 한다. 심장혈관 강화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팔다리의 근육도 단련시킬 수 있다. 숙달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착실한 리듬을 몸에 익힐 것과, 발을 지상에서 너무 떼지 말고 춤추듯이 하는 게 요령이다. 양발로 함께 뛰는 것보다는 한 발씩 교대로 뛰는 게 더 효과적이다. 30분 동안 계속하기가 길다고 생각되면 중간에 다른 운동을 넣어 해도 좋다. ▶춤 - 스포츠 가운데는 춤을 가볍게 보는 이들도 있지만 춤은 예술이며 최고급 유산소 운동 가운데 하나다. 즐겁게 할 수가 있고 심신을 튼튼하게 해주며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운동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는 운동으로 싫증도 나지 않고 건강증진에도 좋다. 노인들 가운데는 춤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춤은 사람이 여럿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혼자서고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날씨 때문에 밖에서 춤을 출 수 없으면 실내에서도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중간중간에 줄넘기를 해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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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 항생제, 호르몬제가 주종인 양약은 한마디로 독이다. 입으로 복용하는 약이든, 외용으로 사용하는 약이든 그 피해는 별반 다르지 않다. 처방되어진 약은 장이나 피부를 통하여 흡수된 후 일차적으로 문맥을 통해 간장에 들어가서 이물질로 간주되어 처리, 제거되며 일부는 콩팥을 통하여 몸밖으로 배설된다. 따라서 복용한 모든 약은 간장에 부담을 주게되고 끊임없이 간세포를 핍박한다. 간세포가 손상되고 재생되어 가면서 급기야 간장에 심각한 질환을 야기한다. 호르몬제제의 경우는 내분비계통의 조절기능을 손상시켜 더욱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난치성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젊은 아가씨들이 아무 생각없이 복용하거나 피부에 사용한 호르몬제제들이 몸 속에 누적되면 훗날 결혼한 후에 기형아를 낳게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우리 부부에게 이런 시련이 닥쳐야 하느냐고 하늘을 보며 원망을 하지만 그 원인은 정작 자신에게 있는 것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간장에 가장 해로운 약은 항생제, 결핵약, 호르몬제 등이다. 약물성 간질환의 1/3 이상이 항생제 남용에서 온다. 약은 먹고 배설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먹을수록 내성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이 이때까지 써온 모든 ‘약’을 바다 속으로 집어던져 버렸다고 치면 우리 인간은 병고와 가난을 면해서 행복하게 살 것이다. 덕분에 바다의 고기들은 달갑지 않은 쓴맛을 볼것이다.” (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 의학박사 올리버, 밴터, 홈즈)
음식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 공복감이 기아감(飢餓感)으로 변해도 음식물을 먹지 않으면 그때까지 몸 속의 모든 조직이 저장해 두었던 여분의 영양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때 몸안에서 가장 중요한 신경이나 심장에 필요한 영양분은 끝까지 남고, 가장 빨리 사용되는 것은 체내의 종양이나 유착물 등의 노폐물이며 그 다음이 피하지방이나 혈관내의 콜레스테롤이다.
음식의 맛을 내고, 빛깔을 내고, 향을 내고, 부패하지 않고 먹음직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식품첨가물의 종류는 300 가지가 넘고 여기에는 2,700여 종류의 독성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같이 내분비계나 신경계를 교란시키고 암이나 심장질환을 유발하는 독성물질들이다. 식품제조업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독극물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면책을 주기위함이라고 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식품허용기준치'라는 의미없는 기준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식품들을 매일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몸 속에서 분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효소를 갖지 못한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화학물질들을 고스란히 체내에 누적시켜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독극물은 농축되어 2세대 3세대까지 전해진다는 데 심각한 문제성이 있다.
서양의 물질문명이 전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관이 된 이후 최초로 사람들을 긴장시킨 것은 카드늄, 납, 수은 등의 중금속이었다. 모두들 놀라고 우려하였지만, 그 정도는 급격한 산업화와 기계화의 부산물로 인간들에게 내려질 수 있는 재앙을 예시하는 옐로카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여러 환경단체들의 노력으로 유사호르몬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여 내분비계통을 교란하는 물질들이 발견되고, 그 위해성을 경고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밝혀진 것들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고속도로에서 내려서야 한다. 그리고 한숨 푹 자고 밝은 햇살과 지저귀는 새소리, 나뭇잎에 맺히는 이슬방울을 바라보면서 숲 사이 오솔길을 걸으며 우리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나가야 할 때다.
미국의 엘머게이츠 박사가 흥미 있는 실험을 했다. 즉 인간이 토해내는 숨(息)을 냉각해서 액화시켰을 때 생성되는 침전물의 빛깔이 호흡 할 때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화를 내고 있을 때의 침전물은 밤색이고, 슬픔, 고통, 후회로 괴로워할 때는 회색으로 그리고 기뻐할 때는 청색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자연에서 유리되어 인간들만의 오만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인간사회가 오늘날과 같이 극심한 물질과 산업의 노예가 된 적은 없었으며, 이 속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경쟁심과 자기방어심리를 키워나가게 된다. '더불어 함께'는 손해를 보고 망가지는 길이고 '투쟁하여 승리'하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고 행복을 성취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길들여진다. 이러한 경쟁과 투쟁은 정신과 육체를 긴장시키고 해소할 길 없는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가중된 스트레스로 증가된 활성산소는 콜레스테롤과 결합하여 산화된 콜레스테롤을 만들어 혈관을 경화시키고 있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시작되어 가족에 이르면 가족단위의 이기심, 집단이 되면 집단으로서의 이기심, 나라가 되면 국가의 이기심으로 확대되면서 오로지 반목과 불화의 씨앗을 증폭시켜나가고 있다. 이러한 이기심과 편협한 독단이 심신을 지치게 하고 기혈을 막히고 꼬이게 만들고 신경조직과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리듬이 붕괴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는 몸안에 자체적으로 2중 3중의 정화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가 단지 장기(臟器)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폐와 콩팥, 대장과 소장도 정화 시설이고 피부와 모발, 손톱도 역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정화 시설이다. 폐는 호흡을 통해서 탄산가스 같은 독가스를 몸밖에로 내보내는 기체정화 시설이고, 콩팥은 액체의 정화 작용을 담당하고 있으며 작은창자 큰창자는 고형 물질을 걸러 내는 정화 시설이다. 그리고 피부는 땀을 통해 노폐물을 내보내고 모발이나 손톱을 통해서는 우리 몸의 중금속을 내보낸다. 이렇게 우리의 몸은 이미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완벽한 기계장치를 마련하여 두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섯가지 독소들은 소화기관을 통하여, 호흡기를 통하여, 피부를 통하여 끊임없이 몸 속으로 들어온다. 우리 몸을 자세히 보면 횡격막을 기준으로 해서 위 아래로 3가지의 기관이 있다. 위에 있는 뇌와 폐 그리고 심장은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순환장치이다. 심장은 피를 순환시키고, 폐는 공기를 순환시키고, 뇌는 신경을 순환시킨다. 그리고 아래의 간장, 위장, 신장은 불순물을 배설하는 장기이다. 즉 몸을 깨끗이 씻어내는 기관으로 간은 중금속 및 병균을 씻어내고, 위와 장은 음식물 중에서 몸에 불필요한 것을 배설시키고, 신장은 핏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 모든 병은 횡경막 아래에 있는 3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여 신진대사 과정에서 생기는 배설물을 깨끗이 배설하지 못할 때 순환에 장애가 일어나 병이 유발되는 것이다.
일본이 낳은 세계 제일의 자연건강학자인 니시가쯔조(西勝造)박사는, 15세에 때에 너무나 몸이 약해서 그의 부친과 함께 동경에 있는 일류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다. 의사가 하는 말이 “이 아이는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20세 이상 살 수 없습니다.”였다고 한다. 니시가쯔조 박사는 그후 전세계의 7만여 권의 건강책을 독파하고 드디어 “니시(西)식 건강법을 창안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어 미국의 각 대학의 초청강연으로 10여 차례나 도미하게 되었다. ◈ 아침의 생수 두 잔과 하루 2리터의 물은 천하의 둘도 없는 보약 ◈ 올바른 소금은 천연의 방부제이자 해독제 소금의 해독, 정장작용은 천일염에 있는 미네랄의 화학적작용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미네랄을 많이 함유한 천일염일수록 유효하다. 일반에게 시판되고 있는 흰소금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작용이 있으므로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또한 소금의 특별한 성분이 효과를 나타낸다고 해서 그것을 화학적으로 합성해서도 안된다. 어디까지나 염화나트륨에 여러 가지 성분이 합성된 자연상태의 천일염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토제(吐劑)로서도 유효하다. 음식물이 위속에 있어서 괴로울 때 또는 나쁜 것을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20~30그람의 천일염을 20㏄의 더운물에 탄 것을 단번에 마시면 즉시 토하게 된다. 그 때를 놓치지 말고 손가락으로 목속을 깊숙이 휘저으면 쉽게 토할 수가 있다. 그 후는 요구에 따라 자연수를 마시면 심신이 함께 진정될 수 있다. 올바른 소금을 적절한 방법으로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세한 내용은 [5대 기본생명물질>소금]편 참조. ◈ 조식폐지로 몸을 정화시킨다. 배가 고픈 상태, 이 상태야말로 인체에 해독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이며, 백혈구의 식균력이 높아지고 T임파구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상태이다. 바로 간장과 신장, 위장이 모처럼 과중한 노동에서 해방되어 상처난 자신의 세포를 치유할 수 있는 생명의 시간인 것이다. 조식폐지에 관하여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연생활요법을 일상에 실천하고자 해도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가 없다. ◈ 단식은 생체의 대청소작업이자 심신합일을 위한 구도의 방편 각자가 면밀하게 공부하거나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며칠씩 계획된 단식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더할나위 없지만 일반인들의 경우 아침 한끼를 먹지 않는 것, 그리고 매주나 2주에 한번 정도라도 하루는 금식일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단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교단체에서 금식일을 정해놓고 이를 지키도록 한 데에는 이것이 정신을 맑게하고 몸을 깨끗이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편이기 때문이다. |
출 처 : http://ulna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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