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청소년상담사 2급 공부를 하고 있다. 나의 청소년 시절의 고뇌를 많은 아이들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사실 이 생각은 오늘 다시 들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의 양육은 불안정 애착이었다. 그중에서 난 회피애착이었다. 그래서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기면 피하고 보는 것이 나의 주된 행동 방식이었다. 이것은 나이가 중년이 되어서도 적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나의 대인관계 느낌은 낯설었다. 6학년 때 축구부 활동을 했는데, 그때에 본격적으로 느꼈다. 친한 친구조차 뭔가 거리감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한 친구와 싸우게 되면 완전히 멀어지는 일을 겪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소풍 때부터 친구들과 완전히 거리를 두게 된다. 난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우연히 친했던 한 친구와 멀어지며 난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30대 초반이 되어 첫 취업을 할 때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는 시절을 난 살아야 했다. 그게 햇수로 15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수능 준비로 매우 정신이 없을 때였다. 이때 본격적인 나의 대인관계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친구와 친했는데, 우연히 다투게 되며 멀어졌다. 그 후 그 친구의 존재가 각인될 때마다 나는 공부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이것은 대학에 와서도 이어진다. 서울의 야간 법대에 진학해서, 나는 1학년 때부터 법무사 자격증 준비를 하려고 했다. 근데 친해진 친구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때 이후로 그 친구만 보면 법학 공부에 전혀 몰입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고립된 경험은 나에게 소중하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청소년들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어 줄 것이다. 내가 청소년 때 많이 아파해 봤기에, 나와 만나게 되는 청소년 개개인의 마음의 아픔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들어,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많은 심리적 문제를 보이는 것으로 안다. 이것은 한국 특유의 성적과 금전 지상주의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21세기에 나타나는 정신적 폐해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한국 학생들은 오로지 어려서 성적만을 기대하며 자라기 때문에 그 마음의 고통은 심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의 청소년 때 삶의 모습을 더욱 떠올려보자. 그때 나는 거의 마음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산 듯하다. 학교에서는 오로지 말을 잘 듣는 학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토요일에 하교 후 집에 오면 부모님이 안 계셔서, TV만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청소년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어 외롭게 집에 있으며 동경하는 마음으로 봤다. 이때 나의 주된 정서는 외로움과 고독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부모님은 그런 나와 소통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냥 잘 먹여주고, 입혀주면 잘 자라겠거니 생각하시는 분들이었다. 게다가 나는 1살 때 라면 끓이는 물에 화상을 입어, 머리카락 있는 부분의 거의 절반이 흉터였다. 다행이 가발을 쓰면 보이지 않아 학창시절에 난 부끄러움을 지닌 채 가발을 쓰고 학교를 다녔다. 이것이 나의 수치심과 열등감의 원인이었다. 물론 나의 부모님이 자존감 있게 나를 양육해 주지 못한 점이 더욱 큰 근원이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나의 청소년 때 아픔은 한때는 큰 상처였다. 그런데 모든 상처는 인생의 약이 될 수 있다. 다행이 나는 지혜롭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청소년상담사가 된다면, 나의 아픔을 청소년들과 소통하는 데 활용할 생각이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온 결과 대학 시절과 청춘의 황금기에 외로움과 혼란을 겪게 되지만, 이것은 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는 것으로 한다. 주되게 나타난 특징은 대인공포와 피해의식이었다. 스캇 펙이란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혼란은 해명을 필요로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신웅 심리상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