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괴로울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합니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의 존재들이겠죠.
하지만, 제가 심리 관련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의외의 사실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털어놓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유는 제각각입니다.
상대방은 관심도 없는데 괜히 내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요.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필요가 있나요?
이야기를 하면서 나만 속시원한 것은 조금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이야기를 왠지 다른 데서 할 것 같아서 불안해요.
친구를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누가 재밌자고 모인 자리에서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듣고 싶겠어요?
상대방 눈치도 보이고, 나도 부담스럽고.
차라리 선생님처럼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역할이 명확한 관계에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훨씬 더 편해요.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게 당연하신 분이잖아요.
말하기와 듣기
술자리에서 자주 보게 되는 광경이 있습니다.
고민을 토로하는 친구
그 친구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느라 바쁜 친구들
그 친구들에게 '내가 그걸 모르겠냐'라고 역정을 내는 친구
여기서 참 재밌는 점이 뭐냐면,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쾌감 중추가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것은 굉장히 지루한 일인 반면,
그에 대해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운 행위라는 거죠.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생각을 어필하면서 나름대로의 만족감을 찾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는 일 자체가 애당초 인간이라는 종족에게는 극악 난이도의 미션인 셈.
감정쓰레기통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된 이유는,
그만큼 현 시대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심리적 거리감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갖는 게
요즘 시대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 지를 대변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 우리는 이러한 친구의 소중함에 대해서 평상시 잘 깨닫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친구라면 응당 들어줘야 되고, 공감해줘야 되고, 내 감정을 받아줘야 되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금전적으로 힘들 때 돈을 빌릴 수 있는 친구가 있느냐만큼이나 희소한 게
정신적으로 힘들 때 내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느냐의 문제일 만큼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며 서로의 히스토리를 기록해나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곧 엄청난 자산이에요.
흔싸귀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하면 싸고, 귀하면 비싸다라는 뜻이죠.
같이 있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친구들은 흔합니다.
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친구들은 매우 귀해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들어주는 일의 중요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가치가 여전히 저평가 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내 감정이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는 일이 다반사인 사회에서
친구의 감정을 거추장스럽게 여기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받아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들.
감정을 주고 받는 일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면,
당신의 감정을 쓰레기처럼 던지지 말라는 경고 뿐만이 아니라,
내 감정을 조심스럽게 받아줘서 고마워라는 감사도 아울러 전해지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성공한 인생의 조건 이라는 노래라도 만들어야겠네요
읽는데 왠지 모르게
그냥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흔싸귀비를 아로 새기어 정진해 보겠습니다.
진짜 진짜 진짜 맞는 말씀이라 생각되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주면 그걸 고맙고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 = 내 말을 듣는 사람 =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 = 시켜도 되는 사람
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어디서나 어떤 이유로든 귀한 사람은 귀한 사람 그 자체인 게 아닌지...
그나마 의식적으로라도 무명자님이 적으신 바람,
고맙다는 마음이 전해지는 시대가 바람 그 자체로 넓게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좋은 글이네요~ 인간은 언어의 동물인가봐요 저도 듣기보다는 말하는 걸 좋아합니다만 제게 별 이야기 다 하는 형이 있는데 더 열심히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