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암(民岩) 이야기...
동구 밖에는 야트막한 동산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태산만큼이나 높고 험한 산이었고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깊은 산이었지요.
그 산 정상(?)에는 아주 넓고 평평한 바위가 있었고
우리 아이들은 그 바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뒹굴며 장난도 치고
뙤약볕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낮잠에 빠져들기도 했지요.
어린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그 동산은 고향땅 마을 한구석에서 떠나와
그네들의 마음 한가운데로 자리를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산기슭(?)에는
풀도 있고 나무도 있고 구름 떠가는 하늘도 있는데
유독 너럭바위만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한 평 남짓한 돌덩어리만
표지석인양 부끄러운 자세로 남아있습니다.
.... 대학시절,
유신독재에 치떨며 분노하고
절망하고 자학하던 어느 날..
나를 "오빠"라고 부르던 한 동아리 후배에게 그 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도 빼놓지 않았지요.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에 문득 내 앞에 나타난 그 아이가
엽서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나 사실, 그동안 형(?)을 너무 좋아했었어요..
깜짝 놀란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그 아이는 혼잣말처럼
대답도 기다리지 않으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兄은 내 곁에 둘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무리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해도 손에 잡히지 않고
채워도 채워도 다 채울 수 없는
넓고 큰 가슴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바다가 그럴까요?
그래서 나의 간절한 마음을 고이 담아
애칭(호)을 하나 골랐어요..
…… 밤새워 찾아내었어요..
백성 민(民)에 바위 암(岩)..민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와서 편히 쉬다갈 수 있는
넓고 큰 가슴이 되어달라는 소망을 담아서...
형이 어린 시절 그토록 찾아가던 너럭바위처럼 말이죠..
고통 받고 있는 사람,
힘없고 가난하고 서러운 시절을
피눈물로 견디어 낼 수밖에 없는
서민대중들의 벗으로 살고자 하는 兄!
그 사람들이 불현듯 찾아올 수 있는 너럭바위..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바위...
민암(民岩)이 되어달라는 이야기...
언젠가 兄이 이 호(애칭)를 쓰게 되는 날에
나의 이 바램을 소중하게 간직하기만 해주신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게 없어요.
그 아이는 그 말을 끝으로
'民岩'이라고 크게 적힌 엽서를 쥐어주더니
결연한 걸음으로 버스에 올라섰습니다.
버스에 올라 돌아보며 싱긋 웃더니
한마디 덧붙였던가?
"소리 내어 한번 읽어보시면 알아요."
아직도 그 기대를 잊지 않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