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인생 선배들은
"아! 건강할 때 좋은데 좀 더 다녀볼걸 하면서 후회한다," 고 한다,
청경회 회장을 5년 동안 역임한 안영구 전회장도 "우리도 더 늙기전에 배편이나 비행기로 해외여행에 눈을 돌려 보다 깊은 우정을 쌓도록 하자." 며 권유하기도 했다.
그것은 낯선 타국에서 친구들과의 활짝열린 만남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깊이 이어주는 가교역활을 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필자는 1980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부터 취재 차 세계곳곳을 다녔지만 고향친구들과의 여행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보았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도 메지않고 자유롭게 떠나고 싶어 몇번이나 계획 했지만 성사가 되질 않았는데 대전 이창하 친구의 같은 성당 교우인 김재호 박사가 오랜 여행경험으로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다기에 이뤄졌다,
그러나 해외여행은 서로 배려심이 없으면 어려움이 생기므로 고향에서 숙식도 종종하며 우정을 쌓아온 대전 이창하, 청주 설형종, 그리고 김재호(대전 카이스트 연구소) 박사, 전대식 이렇게 네명이 11월28일~12월2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떠났다.
여행이 좋아 전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공학박사에서 여행 전문가로 변신한 김 박사는 특유의 정보력으로 일반 패키지 상품보다 절반이나 저렴한 비용으로 장가계>북경 만리장성 일정을 준비했다.
이번 여행중 백미는 역시 장가계의 추억이다,
"사람이 태어나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중국 최고비경 장가계에 올라 삐주(중국 백주) 한잔씩 나누며 낭만의 순간들은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 했다,
3일간 장가계, 원가계 일대를 둘러본 일행은 중국 수도 베이징으로 떠났다. 기차편으로도 계획했지만 8시간이나 걸려 항공편으로 2시간만에 도착해 고대하던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를 보였던 장가계와 달리 만리장성은 뼈속까지 파고드는 추위가 엄습했다,
티셔츠만 입고 누비던 장가계만 생각하고 마스크와 장갑도 챙기질 못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만리장성을 오르던 형종이가 갑자기 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하며 하산해야만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급히 내려와 가까운 식당에서 57도 삐주 한잔을 걸치고 나서야 화색이 돌았다, 중국정부는 수 백미터 깍아지른 산악벽에도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타를 설치해 누구나 천하명산을 관람하도록 하는가 하면 몸이 불편한 노약자들을 위해 인력거를 타고 모든곳을 보도록 정성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았다, 이 또한 사회주의 중국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만리장성 아래 식당에 합류한 창하도 처음엔 추웠는데 끈기로 오르니 칼바람 부는 만리장성 팔달령 정상에서 웃통도 벗어재킨 채 땀까지 나더라며 건장함을 과시했다, 역쉬 해병대 정신이 살아있는것 같았다.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만리장성을 감상하며 옛날 진시황제 시절 중국인들의 기상을 느끼기도 했지만 가족도 자신의 인생도 버리고 수 년간 성만 쌓다 희생된 영혼들을 떠올리며 측은히 느껴졌다.
수 백미터 깍아지른 협곡위에 세위진 아찔한 장가계 유리길, 그리고 만리장성을 보며 공산국가안 중국사회가 아니면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여행길이기에 이 또한 대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창조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필자는 유튜브 등을 통해 사전지식을 익혀두고 웅장한 대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카메라도 꺼냈다 넣었다 몇번하다 결국 핸드폰 두대만 챙겼지만 다행히 충전받데리가 있어 주요한 부분들은 모두 담을 수 있었다, 이젠 눈보다 마음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실상와서 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영화 아바타 배경으로도 나오는 세계명산 장가계의 비경, 제아무리 좋은 카메라로담아본들 도저히 표현해낼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으로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