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 선지식 31차 39. 한국불교계는 선차를 성찰하라
한국 불교계는 선처의 위력을 모르고
세상 시류에 빠져 본래의 근본을 상실
신라 전승의 뿌리를 던져 버리고 말았는데
이것은 바로 후학들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자기 조상들이 입었던 옷을 벗어 던지고
낡아 빠진 옷을 입고 사는 것이 미덕인 양
그러한 행동은 누군가 원망하지도 않고 있네!
참으로 자신들이 삶이 얼마나 소중한 거를
내동댕이친 오늘의 불교는 자신들이 최고의 가치를 어긴
국가 통치자의 옷을 입고 있던 시대를 벗어 던지고
대나무, 더욱더 지조가 있던 구산선문
그러한 선법이 굴레를 벗어던지고 있었으니
그들이 지켜왔던 선처의 사상도 버리고 말았네!
나에게 있어서 선처의 고향을 달마시대
달마로부터 어어 저 왔던 선불교에서 태어난 선처는
당나라 시대 선승들이 노동으로부터 전승된 것은
당나라에 선승들이 지켜왔던 노동성
노동성을 전승하려고 했던 당나라 육우의 다경
당나라 시대 전승된 육 우다경으로부터 시작된 선법
그러한 선법을 북종선과 남종선으로 전해졌는데
신라 시대에는 구산선문으로 전승되었네!
한국 불교계는 선처를 상실하고 있으니
이러한 전승을 어이 잊었나!
신라에서는 가야차에 대한 역사를 소멸하고
신라에 전승된 선처는 국가의 자신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분명히 말하자면 선처의 근본은 선승들이 수행할 시기에
선승들은 노동성으로 이어져 왔음이네!
선처는 바로 선승들이 노동을 통해서
선처를 전승하려고 하였던 지리산에
가야에서 왕자들이 출가하여
수행하던 지역에 선처를 선양했는데
그러한 역사를 망각하고 있음이네!
선 차의 뿌리는 바로 지리산이라고 하지만
지리산에 있던 사원의 명칭을 전승하지 못했네!
선처의 중흥을 위하여서는 선승들이 실천행을 수행해야 하며
선승들이 실천하지 않는다면 선처의 근본을 모르고 있음이니
선처의 근본을 알려고 하면 선처의 위대함을 알 수 있으려니
선처만이 선승들이 전승할 수 있는 선 시를 창작하여
여래의 전법같이 여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선처의 전법이 선 차의 전법을 전해야 한다.
선처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래께서 설법하실 때 영취산에서 차를 올리듯이
선처는 바로 여러 차이고 여러 차는 선처라고 말함이니
선 차의 중흥이야말로 여러 차를 전승함이니
여래 선을 수행하는 화두는 바로 선지의 화두
선 차의 화두를 타파하는 것이야말로
여러 차를 전승함이니 선처야말로
진정한 선승들의 수행차이네
2024년 10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