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獻康順天行㫌[巳未]
虯川 全克恒
使君五馬半空鳴
九度分憂世所榮
曾說寇公留北塞
又看裴老出東京
袋魚好彩誇行色
琴鶴淸音認政聲
遙想順天䧺府裏
便敎奸猾畏神明
“강복성” 순천 행차에 봉헌하다.
규천 전극항
부사(府使)가 탄 수레를 이끄는 다섯 마리 말의 울음소리 공중에서 들리고
아홉 번을 지방관으로 나가니 세상에서 멋진 영예이다.
‘구순(寇恂)’에게 북쪽 변방에 더 머물게 해달라는 말이 있었다지만
‘배로(裴老)’가 동경으로 출발했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된다.
자루에 든 물고기는 윤기 있어 행색을 자랑하고 싶고
거문고와 학의 맑은소리가 치적 칭송함을 공인하는 듯하다.
멀리서 순천 웅부(큰 고을) 속사정을 생각하노니
문득 간사하고 교활함이 신명을 두려워하게 하고 싶다.
[국역] 전과웅
[출처] 규천선생문집
● 강복성 [ 康復誠 ]
개설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명지(明之), 호는 죽간(竹磵). 강중진(康仲珍)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강유선(康惟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한 뒤, 참봉·직장(直長)·찰방(察訪) 등을 역임하였다.
1595년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장현광(張顯光) 등과 함께 발탁되어 장수현감이 되었으며, 곧 김제군수로 옮겼는데, 이때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남원에 주둔한 왜적을 쳐서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 뒤 1599년(선조 32) 고양군수를 거쳐 천안군수를 역임하였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잠저(潛邸: 왕위에 오르기 전인 왕자로 지낼 시기) 때에 시강(侍講)한 인연이 있다 하여 가자(加資)되었으며, 동부승지·우부승지를 거쳐 평산부사·전주부윤·청송부사 등의 외직에 보임된 뒤 1617년(광해군 9) 도총부부총관(都摠府副摠管)을 제수받았다.
이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키는 등의 난정을 행하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인조반정 뒤 다시 부평군수를 제수받았으며, 곧 성주목사로 옮겼다.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즉시 군대를 모아 인조를 호위하였다.
그 공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진되었고, 곧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승진되어 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았다. 그러나 노쇠하여 향리인 선산으로 귀향하여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는 일찍이 재행(才行)을 겸비하고 학술이 정심(精深: 정밀하면서 깊음)한 것으로 천거되었으며,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표창받은 바도 있었다.
저서로는 『죽간집(竹磵集)』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복성 [康復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㫌 기 정
1. 기(새털로 장식한 기) 2. 왕명을 받은 신하에게 신임의 표시(表示)로 주던 기
3. 천자(天子)가 사기를 고무할 때 쓰던 기
● 使君 사군
임금의 명령(命令)을 받들고 나라 밖으로나 지방(地方)에 온 사신(使臣)의 경칭(敬稱).
● 분우分憂
걱정을 나눈다는 뜻으로, 지방관(地方官)을 가리키는 말임.
● 寇公
동한(東漢)의 구순(寇恂)이다, 구순이 일찍이 영천태수를 지냈는데, 그 뒤에 한 광무(漢 光武)를 따라 영천에 이르자 백성들이 노상에서 광무(光武)의 앞을 막고 말하기를 “ 폐하께서는 구순(寇恂)을 이 영천에 1년만 더 빌려주소서.”라 하였다. 후세에 지방관을 유임시키는 비유로 쓰고 있다. (후한서 권 16 구순전)
● 北塞 북새
북쪽에 있는 국경(國境)이나 변방(邊方).
● 배로(裴老)
배로는 양 무제(梁武帝) 때의 문신 배자야(裴子野)를 가리킨다. 배자야가 일찍이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은 원래 생강을 먹지 않는다고 말하자, 당시 태자 첨사(太子詹事)이던 주사(周捨)가 대뜸 말하기를 “공자께서는 생강 먹기를 그만두지 않는다고 했는데, 배는 원래 먹지 않는다고 말하는구려.〔孔稱不撤 裴乃不嘗〕”라고 하니, 좌중이 모두 기뻐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 袋 자루 대
1. 자루(헝겊 따위로 길고 크게 만든 주머니) 2. 부대(負袋), 포대(包袋) 3. 가방
● 政聲 정성
정치(政治)를 썩 잘 한다는 소문(所聞). 선정(善政)으로 소문(所聞)난 명성(名聲).
● 遙想
회상하다. 추억하다
● 奸猾 간활
간사(奸邪)하고 교활(狡猾)함. 간악(奸惡)하고 교활(狡猾)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