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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일지
7월 31일 오후 흐림/약간 비
마장동 터미널에 도착하지 벌써 (2년)화진이와 (1년)대현이가 먼저 와 있었다.
먼저 여관을 잡고 난 뒤 짐을 풀고 있으니까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7시 반쯤 영일이를 제외한 모든 대원이 다 집합 하였다.
8시 반까지 기다렸으나 오지는 않고, 연락드린 선배님께서 (전두성) 반갑게도 오셨다.
선배님의 지도로 짐을 정리하는 동안, 희준이와 2학년 대원을 비상식량과 연료를 보충하기 위해 시장에 보냈다.
그 사이에 1학년 학남이가 배가 아프고 머리에 두통이 있다고 하여 바로 눕혔다.
10시쯤 준비해온 비상식량을 배분하고 짐을 모두 꾸리기 시작하였다.
가능한 모든 대원의 무게가 같도록 하였으나, 김영일 대원의 불참으로 짐이 더 무겁게 된 것 같다.
땀 흘리는 도중에 이희준 대원 여자친구의 시원한 선물을 (수박) 먹으면서 이번 산행을 무사히 마치자고 다짐했다.
11시쯤까지 선배님께서 대충 정리·점검까지 해 주셨고,
잠시 3학년 대원과 함께 여관 옆에 있는 가게에 모여 이번 산행에 관하여 소상하게 말씀을 해주신다.
예상 상황,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 계곡에서 주의점, Leader의 갖추어야 할 점 등 하나하나 상세하게 짚어 주셨다.
12시가 넘어서야 선배님은 우리들의 든든한 눈망울을 믿고, '잘 다녀오라'는 말씀을 남김 뒤 집으로 가셨다.
지도관께서도 선배님과 말씀을 나눈 뒤 곧 서울에 있는 집으로 가셨고 나머지 11명만 한방에서 자게 되었다.
모두 내일부터 다가오는 등반의 두려움과 또 한편으로 잘해보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꿈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영일이가 내일이라도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 준비단계
식량 - 끼니대로 포장, 정확히 측정, 포장
장비 - 1주 전부터 정리
소수 인원 중심 → 전체 집회 부족
체력 test 및 강화
치밀한 계획 부족
*오늘, 기억해 두어야 할 점
1. 짐 꾸리는 것, 배분하는 것,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한 강의 (쌀, 의복 개인용품 등 불필요한 것 배제)
2. 정확한 시간에 집결 (모임과 동시에 산행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함.)
3. 학남 아픈 것 - 치유하지 못한 것 → 더 큰 병 발발
4. 차 시간표 미리 알아두기
5. 불참석의 악영향
8월 1일 월요일 흐림/비
일어나니까 밖에는 천둥과 번개가 울어 재끼고 있었다.
첫차가 5시 40분이다. 4시 30분에 기상을 시켜서 간단한 세수와 그리고 식빵으로 아침을 때웠다.
여관에서 마장동까지 가는 동안 흠뻑 비를 맞았다.
불길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반갑게도 명일이가 와 있다.
원망과 반가움에 가득 찬 애매한 눈길을 보내면서,
함께 우유를 먹고 승차하니 멎었던 비는 가랑비가 되어서 내리기 시작한다.
아! 얼마나 어려웠던가?
설악산행 버스를 탈 즈음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출발 2주 전부터 밤잠을 못 자면서 준비했던 일, 계획서에 '불가'라는 쇠망치가 달렸던 일,
없는 돈 더 아끼려고 이곳저곳에 가서 장비를 빌리던 일,
방학하는 날 남들은 방학 준비로 바쁜데 결재가 나기를 기다리면서 애태워 하던 일 등…. 그동안 가슴 아팠던 일들이 차창에 어른거린다.
이번 등반을 무사히 마쳐서, 산악부의 앞길에 큰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산행에 임하리라.
10시쯤 남교리에 도착하였다.
설악산은 구름에 가려져 장딴지만이 보일 뿐 그 위용은 간 곳이 없다.
앞 냇물은 어제저녁 폭우로 '황룡'이 되어서 건널 수 없고, 나룻배도 운항하지 않는다고 하여서 2km쯤 상류에 있는 다리로 향하였다.
무거운 배낭을 처음 메서 그런지 걸음이 불안하고, 어깨는 아프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다리를 건너 십이 선녀가 십이 선남을 (12명의 대원 - 늑대) 기다리는 십이 선녀탕 입구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다행히도 앞에 일반 대학산악부 팀이 있어서 안심하였다.
1시 15분쯤 출발하였다.
도중에 계곡을 건너는 곳이 있어서 보조 자일을 이용하여 무사히들 건넜다.
계곡은 비가 온 뒤라 상당히 물이 불어서 급류가 흐르고 있었다.
3시쯤 비가 오기 시작하여 우의를 (판초) 꺼내 입으니까 그 모습들이 재미있게 보인다.
우리 판초는 전경이 사용하는 것이라 국방색으로 무겁고, 또 덥기도 하였다.
첫날이라 모든 것이 그저 무겁고, 힘들 뿐이다.
그런데 지금껏 잘 나타나던 앞길이 곳곳에서 사라지곤 하였다.
그저 앞 팀의 발자취만 좇아서 올라갔다.
계곡은 좁아지고, 양옆으로는 급경사로 된 절벽이 있고, 길은 없어지고, 물줄기는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하였다.
순간, 언뜻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와 나침반을 놓고, 지도관님과 함께 살펴보니 너무나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일 뭉치를 배낭에 멘 앞선 일반 산악부의 노련한 경험을 믿으면서, 올바른 길이겠지라고 믿어 본다.
설상가상으로 1학년 김학남 대원이 몸이 아프다고 한다. 배낭을 덜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영일 대원이 배가 고파서 더는 못 가겠다고 주저앉는다.
길도 잘못 들었고, 환자가 둘씩이나 발생하니 더욱더 당황하였다.
우선 영일이에게 비상식량을 공급하고, 학남이의 짐을 옆 대원들에게 분배하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조금 올라갔으나 물이 끊어지고 울창한 숲밖에 없다.
6시쯤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옆 절벽을 나무 잡고 올라가서 정찰하였으나 보이는 것은 절벽뿐, 갈 곳은 오직 뒤돌아가는 것뿐이었다.
6시 10분쯤 미끄러운 바위로 된 계곡을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 미끄럽고 엉덩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하다.
숲이 깊은 계곡이라 해가 넘어가자 금방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빗방울까지 한두 방을 떨어지니 마음은 더 긴장되고 불안하다.
다행히도 6시 30분쯤 계곡 옆에 조그마한 언덕이 있어서 그곳에서 짐을 풀었다.
김학남 대원은 저녁도 못 먹고 앓고 있었고,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였다.
불안하다.
*오늘, 기억해 두어야 할 점
1. 아침 식사 불충분
2. 표 일찍 예매는 good (할인도 가능)
3. 영일이 합류
4. 산노래에 대한 연습 부족
5. 기상에 대한 지식 부족 (라디오를 제대로 갖추질 못함)
6. 호루라기 사용법에 대한 고안 및 교양
7. 다리를 건너 돌아간 것은 good
8. 점심 라면 시간이 무척 길었다. - 지나친 개인행동
9. 계곡 횡단할 때 너무들 무서워하였다.
10. 판초 사용법
11. 지도를 이용하지 않았고, 안내판을 너무 신뢰
12. 앞선 team 너무 신뢰
13. 무리한 강행으로 환자 발생 - 항상 check 못함
14. 영일…
15. 판단이 너무 늦었음 - 경험 부족
16. 야영지 선정 이후 불침번 역할 꼭
17. 환자 간호 부족
18. 아침에 개인적 시간을 너무 많이 가짐.
8월 2일 화요일 맑음
밤새껏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제발 비가 오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환자도 완쾌될 수 있도록……."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바람에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소나기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나기를 수십 번 하고 나니 앞산에서부터 밤이 물러나기 시작한다.
기상과 함께 학남이를 보니 어제저녁 때와 똑같았다. 식사도 못 하고 끓인 죽도 얼마 먹지 못하였다.
짐을 챙겨서 어제 올라온 길을 더듬어 내려가니 11시쯤 길을 잘못 선택한 지점에 도착하였다.
내려오는 도중에 경택이가 발을 삐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였다.
지도관님과 3학년이 모여서 의논한 결과
발이 삔 경택이와 대현 그리고 호성이는 올라온 길로 하산, 용대리 쪽으로 이동하여 백담 산장으로 오기로 하고,
학남이는 서울로 보내기로 하였다. 영일이도 백담사로 보내려고 하였으나 그 고집을 너무 내세웠기에 같이 가기로 하였다.
짐을 배분하고, 식사를 마치니 1시가 조금 지났다.
A팀이 (하산하여 백담사로 오는 팀) 짐을 정리하는 동안 B팀 (12 선녀탕으로 오르는 팀) 8명은 출발하였다.
어제 우리와 똑같이 길을 잘못 든 조선대학 산악부는 (의과대학)
우리 덕분에 더 많이 올라가지 않고 바로 내려왔기 때문에 12탕을 우리보다 먼저 올라갔다.
출발한 뒤 20분쯤 지나니까 시원한 계곡이 앞에 나타난다.
배낭을 벗고, 반바지를 제외한 모든 지저분한 옷은 팽개치고 7명 모두 그대로 12 선녀 품에 안겼다.
몸은 포근하면서도 눈은 차가운 한기가 서렸다.
지도관님은 옷을 입으신 채로 물세례를 받고 나서야 물속에 들어왔다.
한동안 물싸움으로 그동안 쌓인 긴장과 불안을 풀고 힘을 얻었다.
기념 촬영도 하고 시원한 아니 차~가운 물을 들이켜기도 하니 힘이 절로 났다.
계곡 양옆으로는 아름드리 큰 전나무들이 그 거구를 못 이겨 쓰러져 신음하기도 하고,
이미 늙어 쓰러져 앙상한 뼈만 남기고 있기도 하였다.
그 사이사이로 새로 자라는 자연 그대로의 나무들, 이것이 바로 원시림이로구나!
곳곳에 거목이 길을 가로막고 누워 있어서, 엎드려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올라타서 넘기도 하고…
3시쯤, 용탕인지 막탕인지 푹 파인 탕이 자리잡은 곳에 도착했고 그 위로는 2단 폭포가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욕조처럼 생긴 탕은 과연 12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할만도 하였다.
어제 버스 속에서 이야기한 12 선녀와 함께 즐기자(?)는 농담이 선녀를 노하게 하여 첫날 길을 잘못 들게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진 다래, 머루 넝쿨과 길게 누워 있는 거목은 우리에게 허리를 굽히게 하며 겸손을 아주 많이 가르쳐 주었다.
조금만 오만하여도(뻣뻣하여도) 배낭이 걸려서 갈 수 없게 하는 산의 가르침이었다.
12 선녀탕의 상류쯤 왔을 때, 갑자기 지도관님께서 보이지를 않았다.
김 대원이 깜짝 놀라 목청 돋워 지도관님을 찾고 호루라기를 불어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별수 없이 물가에서 목을 축이면서 쉬고, 대원 하나를 찾으러 보냈다.
잠시 후 함께 오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하였으나 한편으로 괘씸(?!)한 생각도 들어서 여쭈어 보았다.
"지도관님, 어떻게 되신 겁니까?"
"응, 잠깐 작은 집을 들르느라고…" 하면서 말씀을 얼버무리셨다.
자세히 살펴보니 입 주위에 묻어 있는 미숫가루!
너무 배가 고프셔서 혼자, only 혼자 뒤에 처져서 사모님께서 정성스레 싸 주신 미숫가루를!
"하하하"
"우~" 웃음과 야유.
그때 지도관님 말씀인즉슨,
"대장, 식생활 개선 좀 합시다! 라면으로 이러한 훈련을 한다는 것은 무리야. 몸 생각도 해야지!"
"꼭 식생활 개선을 하자구."
하기야 점심을 라면으로 먹고 5시간 정도의 산악 행군을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내일부터는 밥도 함께하여야 겠다. 광년이도 배고파서 생라면 2개를 바수었다고 했으니…
6시쯤 계곡 물이 끊기려는 곳에서 야영하고, 마음 느긋이 잠을 청하였다.
그런데 부엉이가 텐트 옆 나뭇가지에 않아서 기분 나쁜 소리로 울고 있다. 플래시를 비춰도 눈만 껌벅거릴 뿐, 움직일 줄 몰랐다.
돌을 주워들고 사격했는데, 어찌 된 것인지 맞아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할 수 없이 기관총(자갈 수십 개를 동시에 투석)으로 사격하니 그제야 바로 옆 가지로 움직인다.
더욱 신경질이 나서 나무를 흔들었더니 그제야 날아갔다.
하늘은 온통 별들로 가득하다. 초롱초롱한 별빛이 막내 조카 놈의 눈 초롱 같다.
오늘 기억해 두어야 할 점!
1. 개인적 시간에 너무 허비.
2. Leader 명령에 너무 따르지 않음. (영일)
3. 1·2 학년의 나약한 정신 자세. 목표의식 부족.
4. 점심 식사 양이 너무 부족.
5. 호루라기 연락 잘 안 됨. (한 쪽으로 길을 잘못 든 것)
6. 선후배 기강 너무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