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믿을 눔 없다더니 / 단편소설. 김시화
하늘이 잔뜩 흐려져서 곧 비가 올듯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조금전까지 불덩이 같은 해가 내리쬐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흐려지면서 볼썽 사납게 찌푸리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 있었던 땅도 조금은 식은 듯 했다. 개동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더운 숨을 내쉬며 소를 몰면서 밭을 갈고 있었다. 땅에 박힌 돌들이 쟁기에 부딪쳐 쨍쨍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갔다. 묵묵하게 감자 밭고랑을 파던 개동이는 하늘을 한번 보고 쟁기 끌던 소를 멈춰 세우고 나무그늘에 놓여져 있던 먹다 남은 막걸리를 한사발 들이켰다. 그는 비가 오면 옆밭에서 밭을 갈고있는 친구 달구와 마을 주막의 들병이에게 가볼 참이었다. 며칠전에 왔다는 들병이 계집은 나이가 30세 정도인데 얼굴이 아주 반반하고 볼기짝이 농익어서 색기가 철철 넘친다고 소문이 났다. 막걸리를 마시고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동은 혼자말을 하였다.
"금새 그칠 비가 아닌 가벼. 에이! 들병이 한테나 가봐야 겠구먼."
개동은 옆밭의 달구를 불렀다.
"어이! 달구야. 비가 오네. 주막이나 감세."
달구도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비는 금새 그칠 비가 아니여. 들병이가 새로 왔다는데 가봄세."
둘은 소낙비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비 핑계대고 주막의 들병이를 보러 가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집에 가서 소를 외양간에 몰아 넣고 다시 나와서 마을 입구에 있는 주막으로 향했다. 술값은 각자 추렴하기로 하였다. 소작농인 둘은 가난한 형편이었다. 둘 다 마누라가 깊숙히 숨겨 놓았던 돈을 몰래 꺼내가지고 나온 것이다. 주막은 방이 세칸이고 지붕은 짚으로 덮여 있었다. 둘은 주모에게 들병이를 들이라 말하고 제일 안쪽에 있는 골방으로 들어갔다. 골방은 좁은 것 외에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좁은 것도 사람 셋이서 술마시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잠시 후 기다리던 들병이가 들어왔다. 얼굴이 반지르하고 걸을때마다 엉덩짝이 좌우로 흔들렸다. 개동이는 들병이를 달구에게 먼저 양보해야 했다. 이윤즉슨 아까 밭에서 달구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개동이가 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지는 향란이라고 해유. 만나서 반가워유."
말씨를 들어보니 계집의 고향은 충청도인 것 같았다. 달구는 계집의 손을 잡으며 그 말투를 흉내내면서 물어봤다.
"고향이 어디슈?"
"대전이예유. 여기서 좀 멀지유. 어쩌다 보니 이곳까지 흘러왔지유. 술 한잔 하세유."
계집은 달구에게 술을 따르고 건너편에 앉아있는 개동이 에게도 술을 따랐다. 술잔이 몇순배 돌자 얼근해진 달구는 계집을 떡주무르듯 주무르다 엉덩짝을 손바닥 치듯이 치며 소리를 해보라고 독촉을 했다.
"지는 소리는 못하는데유. 죄송해유."
하긴 계집이 소리를 못한다 하더라도 워낙 인물이 반반하고 몸맵시가 좋아 그런건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아까부터 건너편에서 입맛을 다시며 둘이 하는 꼴을 보고 있던 개동이가 벌떡 일어나 계집을 자기자리로 데려오려 하자 달구가 인상을 쓰며 놓아주지 않았다.
''오늘 술값과 계집값은 내가 낼터이니 자네는 조용히 술이나 마시게."
달구가 계집에게 반해도 단단히 반해 버린 것 같았다.개동이는 속에서 울화통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조용히 술이나 마시려고 여길 왔단 말인가? 어여 계집을 이리보내지 않으면 경을 칠 것일세."
개동의 엄포에 달구는 되려 그의 화를 더 돋구었다.
"자네가 오늘 양보하게. 담에는 자네 차지가 확실히 될 것일세,"
"에이! 이 빌어먹을 눔이. 계집에 환장을 했구먼. 복장터져 미치겄네."
개동은 너무 약이 올라 막걸리를 병채로 다 마셔버렸다. 달구와
계집이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있을 때였다.
개동은 아직 막걸리가 남아 있는 잔을 들어 달구에게 휙 퍼붓고는 방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달구는 자신에게 안겨있다가 같이 막걸리 세례를 받은 계집의 얼굴과 옷을 손으로 닦아주며 분을 토했다.
"저눔 성격하나 드럽구먼. 내 다리몽뎅이를 부러 트리려 하려다 참았구먼."
"잘 참으셨어유. 긍데 친구가 섭섭하긴 했을 거예유. 혼자만 저하고 놀고 있으니 남자로서 참기 힘든 점도 있었을 거예유."
"그렇긴 하겠구먼. 허나 내가 자네가 너무 맘에 들어서 그런거니 이해해 줌세."
"저야 술많이 팔고 돈많이 주면 최고지유. 호호!''
달구가 계집을 제 것인양 가지고 놀고 있을때 밖으로 나온 개동이는 분한 마음을 풀길이 없었다. 달구란 놈이 그렇게 나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마음 같아선 요절을 내고 싶으나 차마 그럴수는 없는 일이고 다음에 혼자 몰래 그 계집을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체념했다.
시골은 해만 넘어가면 금새 어두워졌다. 달구는 캄캄한 발밑을 더듬어 가다 콩밭 입구에 털썩 주저앉았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술이 취해서인지 그만 드러누워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개동은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여자의 신음소리에 잠이 깼다. 그는 그 소리를 찾아서 걸어갔다. 가다보니 그것은 콩밭 중간쯤에서 나는 소리였다. 달구와 계집이었다. 둘을 본 개동이는 부화가 치밀어 흙을 한뭉탱이 주워서 그들에게 홱 뿌리고는 도망을 쳤다. 그러고 나니 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개동이는 봉당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비는 벌써 그치고 하늘에 달이 수줍은 듯이 떠 있었다. 개동은 달덩이 같은 들병이의 엉덩짝을 떠올리니 목에서 갈증이 났다. 마당에 우물물을 길어서 실컷 마시고 났는데도 그 갈증은 그대로 였다. 물을 마신다고 가셔질 갈증이 아니었다. 힘없이 추레하게 방으로 들어간 개동이는 잠들어 있던 아내를 쳐다보았다. 달구놈 때문에 아무런 재미도 못봤는데 마누라하고 모처럼 그 일을 치룰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잘씻지를 않아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고 떼가 끼어 있는 아내의 모양새를 보고는 그런 생각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는 아내 몰래 가져온 돈을 다시 제자리로 갔다 놓았다. 그리고 누워서 잠을 자려니 통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 콩밭에서 두년놈이 얽혀 있는 것이 떠올랐다. 계집이 말구놈 위에 올라가서 용을 쓰는지라 달빛에 비추이는 계집의 뒷모습은 도통 잊혀지지가 않았다.
이 날 개동이의 밤은 무척이나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