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데일리 영문판 기사를 번역함
풍수 탓일까?
이재명 정부의 청와대 복귀를 앞둔 청와대의 파란만장한 역사
청와대(Blue House)는 조만간 다시 대한민국 정치의 심장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곳으로 입주하면, 청와대는 다시 국가 최고 권력자의 집무·거주 공간이 된다. 이르면 올해 안에 이 대통령은 현재 용산에 있는 대통령실을 옮겨, 북악산과 경복궁 사이 한적한 자리, 전통적인 대통령 관저이자 집무 공간인 청와대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의 이런 이전 계획은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용산 대통령실 시대를 역사 속으로 밀어 넣는 조치이기도 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거주하지 않은 유일한 한국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직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실을 옮겼다. 그는 “도심 한가운데에 대통령실을 두면 국민과의 소통이 쉬워지고, 정부와 국민 사이의 거리가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 언론과 관측통들은, 그가 국방부 청사의 지하벙커를 활용해 계엄령 선포를 모의하고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그 이전 결정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쿠데타 모의 사건으로 윤 전 대통령이 축출된 뒤 집권했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용산 대통령실을 “무덤 같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청와대로 집무실을 다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의 상징성과 문화적 가치, 그리고 물리적 안보 측면을 그 이유로 들었다. 이 약속에는 전임 대통령의 불명예스러운 유산을 지우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 계획은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간 듯하다. 경찰은 이 대통령이 12월 중순쯤 청와대로 이전할 것으로 보고, 인근 경찰서 경비 인력을 기존 ‘2인 9시간 교대’에서 ‘20인 24시간 교대’ 체제로 확대했다. 다만 강훈식 비서실장은 관저 이전은 내년 상반기 중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 사이 지난 3년 동안 청와대는 일반에 개방돼 수십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했다. 2022년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약 852만 명이 청와대의 관저와 집무동, 안팎 공간을 둘러봤다. 다른 논란은 제쳐두더라도, 윤 전 대통령이 임기 초에 “은둔형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던 약속만큼은 지킨 셈이다.
서울 한가운데에 자리한 청와대는 이제 다시 국가 최고 권력자의 거처로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그러나 또다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일이 과연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정치적 쟁점으로 남게 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깊은 뿌리
현 청와대가 자리한 땅의 역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1392~1910) 시기, 지금의 청와대 부지는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과거시험의 문과 시험장, 활쏘기와 무예 훈련장으로 쓰였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 장소는 불운한 전환점을 맞는다.
일제강점기(1910~1945)가 시작되면서 이곳은 먼저 공원으로 개조됐다. 이어 1939년에는 연면적 1,735㎡ 규모의 2층 건물이 세워졌는데, 조선총독이 거주하는 관저였다. 이 건물은 세 명의 총독이 차례로 사용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경무대 일대는 한동안 외국 세력의 통제 아래 있었다. 1945~48년 미 군정청을 이끌었던 존 리드 하지 미군정 사령관이 이곳의 네 번째 거주자가 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공식 선포된 뒤에야 이 부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이곳에 집무실과 관저를 마련했다. 1960년에는 윤보선 대통령이 이곳의 이름을 ‘청와대’로 바꾸었다. 푸른 기와를 얹은 집이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황금빛을 의미하는 ‘황와대’로 고쳐 부르자는 의견도 있었다. 황색은 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결국 ‘청와대’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현재의 청와대 관저와 본관은 각각 1990년과 1991년에 건립됐다. 대통령 집무실과 두 개의 별관이 들어선 본관의 팔작지붕에는 짙은 청색 기와 15만 장이 얹혔다.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제국이 지은 건물에서 한국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고 청와대 재건을 추진했다. 그 결과 일제가 지은 옛 총독 관저 건물은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3년에 완전히 철거됐다.
신화처럼 따라붙는 ‘저주받은 터’ 논란
약 70년 동안 대통령 거처였던 청와대는, 풍수지리 논리에 비춰 볼 때 과연 나라의 최고 권력이 머물기에 길지(吉地)인가를 두고 늘 논쟁의 대상이었다. 풍수지리(풍수지리학)는 중국의 고대 지리 철학인 풍수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바람과 물 등 자연환경과 주변 지형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길흉을 판단한다.
풍수지리 전문가 지종학(池鍾學)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와 경복궁 뒤에 있는 산이 이들을 감싸 안지 못하고 오히려 등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악산의 동쪽을 향한 봉우리는 자연스럽게 기운이 청와대와 경복궁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또 청와대 뒤편 자하문 고개는 서북풍이 그대로 불어 들어오게 만들어, 풍수에서 말하는 ‘고난의 기운’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지대표는 “조선 시대부터 한국전쟁(1950~53)에 이르는 외세 침입의 역사와 여러 대통령들의 불운한 말로(末路)를 떠올려 보면 이 자리를 길한 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1991년 출간된 이병주 작가의 소설 『대통령들』도 청와대를 회의적으로 묘사한다. 작품 속 인물은 “청와대는 쫓겨나거나, 사임하거나, 죽어서야 떠날 수 있는 곳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게 끝난 대통령들이 적지 않다. 박정희 대통령은 암살당했고, 전두환·노태우·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후 구속 수감을 겪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탄핵·파면돼 수감됐다.
이처럼 청와대를 둘러싼 불길한 이미지와 불안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0월 22일에는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통령 집무실은 청와대로 옮기되, 거처는 삼청동 별관(대통령 공관)에 두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청와대 관저 자리에는 “흉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유 관장은 “(청와대) 관저는 지금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된다”며 “풍수적으로도 문제가 많고,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은 매우 음침한 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불행을 터와 지리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우석대 김두규 교수는 올해 초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입지는 길흉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한국은 197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됐다. 청와대가 흉지라면 이런 발전이 가능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들의 불명예스러운 말로는 모두 권력 남용과 개인적 비리 때문이었다”며 “문제는 청와대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용산보다는 낫다
풍수 논쟁과는 별개로, 전문가들은 국민 편의와 국정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청와대가 용산 대통령실보다 나은 선택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숭실대 행정학과 우윤석 교수는, 대통령 집무실이 국민에게 일상적인 불편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의 경우 출퇴근 때마다 대통령 경호차량의 이동으로 교통 체증이 빈번히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 교수는 또 청와대가 경복궁 앞 중앙정부청사와 인접해 있어, 국무위원·고위 관료들과의 대면 소통과 협의가 훨씬 원활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졸속으로 꾸린 용산 대통령실과, 주변과는 다소 떨어져 있지만 상징성과 서사가 있는 청와대 사이 어딘가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이명석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의 용산 이전을 “무모하고 부적절한 결정”이라고 평가하면서, 국민적 합의와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통령 집무공간과 관저를 함께 갖춘 청와대로 지금 돌아가는 것이 적기”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정치권과 국민이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면, 앞으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과정에서의 혼란은 막을 수 있다”며 “윤 전 대통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전 결정은 지지율 하락과 총선 패배로 이어졌고, 정치권은 이 교훈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청와대로 복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행정수도 세종으로 대통령실을 옮겨야 한다는 학자들의 의견도 있다. 충청권에 위치한 세종시는 서울에서 차량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있으며, 뱀처럼 길게 뻗은 정부청사 건물 안에 12개 부처가 모여 있는 계획도시다. 우 교수는 “현재도 장관과 고위 관료들이 업무 보고를 위해 세종과 서울을 수시로 오가야 한다”며, 청와대와 국회가 모두 서울에 있는 탓에 이동 비효율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실이 세종으로 옮겨가야 비로소 세종시의 행정 기능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또 “공간 배치는 리더십과 조직 업무 효율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며 “대통령 집무실의 위치를 정할 때는 무엇보다 그 공간이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고 나라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11/11 중앙데일리 이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