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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마음과 K-신학: 60년의 기억, 오늘의 도전, 내일의 길
1. 한국인의 마음과 K-신학
1)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과 사명
K-신학은 생명을 살리고 높이는 예수의 마음(성경, 하나님의 진리)을 한국인의 마음으로 체험하고 깨달아 나와 세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생명 신학이다.
한국인의 마음이 예수의 마음을 만난 것은 동아시아의 문명권에서 벗어나 세계 보편 문명으로 나아가는 5천 년 민족사의 가장 큰 사건이다.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과 사명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은 동서 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주체적 자각이다. 서로 다른 동서양 정신문화의 세계가 만나고 충돌하고 합류하고 융합함으로써 거대한 정신적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엄청난 생명과 정신의 힘이 분출하고 크고 아름다운 인간과 인격이 생겨나고 깊고 높고 크고 새로운 영적 체험과 깨달음에 이르렀다.
2) 한민족이 만난 예수의 마음과 하나님 나라 복음
예수의 생명(하나님) 체험과 생명의 진리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살았던 나사렛 산골의 청년 예수는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만나는 깊고 철저한 체험을 했다, ‘예수’는 ‘여호수아’의 줄임말인데 ‘야훼가 구원하신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하나님 아버지 체험을 깊고 강렬하게 했던 예수는 자신의 이름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독신생활을 하였다. 하나님을 자신의 친아버지로 가까이 만나고 체험한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인 지경에 이르렀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해방하는 하나님은 모세에게 ‘야훼’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야훼는 히브리어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의 줄임말인데 그 뜻은 “나는 나다!”(I am who I am.)란 말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늘 ‘에고 에이미’(I am)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야훼(I am who I am)와 상통하고 일치하는 말이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저마다 제 삶과 역사의 주체인 ‘나’로,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고 존중하는 ‘너’로 받들어 섬겼다. 예수는 사람들을 율법의 의무와 규정 아래 두지 않고 생명의 근원적인 사랑과 기쁨으로 초대하였다.
3) 생명을 사랑하는 한국인의 마음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국가주의 문명의 억압과 수탈을 극복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믿음과 힘을 길러왔다. 한민족은 전쟁과 폭력에 기초한 국가문명이 형성되기 전에 이미 국가문명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과 생명 사랑을 체득하였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 문명을 형성하는 데 한민족과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1) 국가문명 이전에 확립된 한국인의 마음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약속의 땅을 찾아왔듯이, 우리 민족은 수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해 뜨는 동쪽을 향해 유라시아 대륙의 끝 한반도와 만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주어진 땅을 밟아버리고 하늘과 별을 우러르며 밝고 따뜻한 삶을 찾아서 오랜 세월 멀고 험한 길을 지나오면서 우리 민족은 친지들에 대한 깊은 정을 키우고 하늘의 높은 뜻과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염원을 품게 되었다. 크고 하나인 하늘을 우러른 한민족은 하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신과 신념을 가졌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심성을 길렀다. 하늘을 품은 하늘의 사람 한민족은 하늘처럼 높고 큰 하나를 열망하였고 일치와 동화(同化)를 추구하였다.
고조선 건국 설화에 따르면 하늘을 열고 내려온 사람들이 아사달(아침의 땅)에 조선(朝鮮, 아침의 고운 나라)을 세우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弘益人間), ‘이치로써 교화하며’(在世理化), ‘밝고 바르고 크고 떳떳함(光明正大)을 건국이념으로 제시하였다. 한민족이 자신의 이름으로 삼은 ‘한’은 하늘처럼 큰 하나, 밝고 환함을 뜻한다. 스스로 하늘의 사람으로 자부한 한민족은 오랜 세월 밝고 따뜻한 아침의 나라를 찾아오면서 현실적 삶에 대한 열정과 염원을 품고. 삶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착한 마음을 지니고. 강인한 생명력과 생명 사랑을 길렀다. 하늘을 품은 한민족은 땅의 물질적 속박과 제약에서 해방된 하늘의 무한허공에서 무궁한 힘과 자유를 느꼈으며, 흥과 신명을 지니게 되었다.
온갖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고 해 뜨는 동쪽을 향해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오면서 길러진 강인한 정신은 진취적이고 모험적 정신으로 나타나 5~7천 년 전 고래잡이(경상북도 울주군 반구대암각화)를 하였다. 산 넘고 물 건너오면서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끈끈한 공동체 감정을 갖게 되었다.
(2) 한국어에 담긴 마음
해 뜨는 동쪽을 향해 온 서로 다른 부족들과 인종들이 한반도와 만주에서 서로 동화하고 포용하여 비교적 평화로운 과정을 거쳐 한민족과 한국어를 만들어냈다. 한국어에는 한국인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과 소통하고 교감하려는 마음이 한국어에도 담겨 있다.
주어가 문장을 주도하는 라틴어의 술어형태는 주어의 인칭과 성(性)과 수(數)에 따라 결정된다. 객어나 대상은 술어형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문장 속에 주어가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한국어에서는 술어형태가 상대(객어, 대상)에 따라서 변화하고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주어는 흔히 생략된다. 흔히 ‘나’는 생략되거나 ‘우리’로 뭉뚱그려진다.
한국어는 상대에 대한 깊은 정이 담겨 있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언어다. 한국어처럼 존댓말이 발달한 언어는 없다. 일인칭이 생략되거나 약화 되고 상대에 따라 술어가 바뀌며, 존댓말이 발달하고, 상대(대상)를 표현하고 그리는 형용사와 부사가 풍부하고 다양한 것은 우리말이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임을 말해준다. 정이 담기고 풍부하고 다양한 형용사, 부사, 의성어, 의태어로써 상대를 주인과 주체로 모시는 한국어는 소리가 풍부하고 다양하고 아름답고 음악적이다.
그러나 일인칭 주어 ‘나’가 생략되거나, 우리로 뭉뚱그림으로, 개인의 책임적 주체가 약화 될 수 있고 삼인칭의 부재로 객관성과 공공성이 약화 될 수 있다.
(4) 한국인의 마음을 짓누르고 위축시킨 것들
한국인의 마음 바탕에는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과 직접 소통하고 교감하는 무교의 심리구조와 관행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인류정신사에서 유아기적 종교심리와 형태인 무교는 인간의 마음과 삶에 밀착되어 있으나 도덕의 높이나 철학의 깊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자신의 마음과 삶에 위안을 얻고 개인의 행운과 복을 비는 무교로는 건전한 국가사회를 건설할 수 없고 사회와 역사의 책임적 주체와 주인을 길러낼 수 없다. 한국인은 스스로 높은 도덕 철학과 깊은 종교철학을 닦아내지 못했다.
중국을 통해 높은 도덕과 깊은 종교철학을 가진 유교·도교·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한국인의 마음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종교 철학적으로 보다 깊고 높고 풍부해졌으며 단련되고 굳건해졌다. 그러나 땅을 중시하는 중국의 정치종교문화는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과 직접 소통하고 하늘의 사람이 되려는 한국인의 마음을 억누르고 위축시키는 구실도 하였다. 중국의 주역 팔괘,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명리학은 한민족의 무교와 유착하여 미신적이고 불합리한 운명론과 결정론을 조장함으로써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며 보편적인 정신과 철학을 닦아내는 데 장해가 되었다.
4) 기독교의 초월적 하나님 신앙을 만나 한민족의 주체적 자각과 해방에 이르다
하늘을 우러르며 해 뜨는 동쪽 밝고 따뜻한 아침의 나라를 찾아온 한민족은 수천, 수만 년 동안 사무치게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기다렸다. 나라가 망해가는 깊은 슬픔과 비극 속에서 한민족의 마음은 드디어 생명을 살리고 높이는 예수의 하나님 아버지 신앙, 하나님 나라 복음을 만났다. 국가주의적 폭력과 미신적 운명론에 짓눌렸던 한민족이 만난 예수와 성경의 진리는 국가주의적 억압과 비과학적 운명론(미신과 율법주의)을 극복한 생명 해방의 진리였다.
한국 근현대에서 한민족은 서양문명에서 기독교 신앙, 민주정신, 과학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늘의 높은 뜻과 이념을 구현하고 밝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땅을 중시한 거대한 중국의 실용주의적 정신문화는 하늘을 우러르는 보다 활달하고 진취적인 한국인의 마음을 억압하고 위축시키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끝내 한민족은 자신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구현하지 못하고서 나라를 잃고 식민지가 되는 망국의 고통과 절망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때 서양의 정신문명에서 기독교 신앙, 민주 정신, 과학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한민족은 중국의 정치 종교문화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신문화적 정체와 주체, 얼과 혼을 깨닫고 수 천 년 수만 년 지녀온 염원과 뜻, 생명력과 생명 사랑을 드러내고 펼치기 시작하였다.
오늘 한국인의 마음은 여전히 무교, 유교, 도교, 불교의 전통적인 형태로 존재하면서도 기독교 신앙, 민주 정신, 과학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훨씬 높고 크고 깊은, 더욱 아름답고 참되고 거룩한, 슬기롭고 솜씨 있는 삶과 뜻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한류를 통해 문화예술적으로 자신과 세상을 놀라게 하며 이끌어가고 있다.
2. 전신협(KAATS) 60년의 기억
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돌아온 학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신학연구와 활동이 이루어졌다. 보수적인 교회 현장과 비교적 자유롭고 진보적 신학활동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학자들은 외국의 새로운 신학을 소개하거나 한국문화를 반영하는 신학활동을 하였다.
예수와 성경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민족의 마음을 깨워 일으키고 새 나라, 새 역사, 새 문명을 이루는 한국 근현대의 중심과 선봉에 섰는가? 예수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인격과 정신, 새로운 영적 깨달음과 영성을 보였는가? 이 물음을 기준으로 지난 60년 신학 활동을 평가해보자.
윤성범의 토착화 신학은 유교의 핵심개념 효(孝)와 성(誠)을 바탕으로 기독교 신앙과 진리를 한국의 유교문화 속에 받아들이려 했다. 더 나아가서 건국설화의 환인, 환웅, 단군을 삼위일체 교리의 흔적(Vestigium Trinitatis)으로 봄으로써 기독교 교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근거와 바탕을 건국설화에서 찾으려 했다. 토착화 신학을 위한 윤성범의 이런 노력은 창의적이고 진지하지만, 기독교 교리와 진리를 한국종교문화의 관념들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사변적인 논의수준에 머물렀고, 한국인의 마음, 생명과 역사를 새롭게 하고 살리는 신학에 이르지 못했다. 그의 토착화 신학은 기독교신학의 교리적 전통과 한국 고유한 문화사적 전통의 결합을 넘어서, 예수의 마음을 받아들인 한국인의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예수의 마음을 만나 조선왕조의 낡은 체제와 사상을 깨트리고 중국 중심의 정치문화와 샤머니즘을 극복하고 넘어서서 새로운 삶과 영성을 펼치고 새 나라 새 역사 새 문명을 열어갔던 근현대 한국인의 마음에 이르지 못했다.
유동식은 한국인의 기층종교인 무교를 연구하고 그 바탕에서 자연과 함께 기쁨과 신명의 마음, 영을 살리는 풍류신학을 제시하고, 한국인의 마음과 삶을 ‘한 멋진 삶’으로 제시하였다. 그의 예술문화 신학은 한국인의 마음과 삶을 발견하고 그 삶을 아름답게 제시했지만, 한국 근현대에서 예수의 마음을 만난 한국인의 마음의 그 깊이와 크기를 드러내지 못했고, 한국 역사와 사회, 문명과 나라를 새롭게 하는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을 담지 못했다. 무속은 국가주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인의 유아기적 종교와 심리상태다. 그것은 국가주의 역사와 문화에 짓눌려 변질되고 왜곡된 한국인의 종교적 심리구조와 형태다. 이런 심리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삼키는 부활 신앙과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조와 종말론적 심판, 율법주의를 초월한 아가페 사랑의 믿음과 사랑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 삼국시대 변두리 국가인 신라의 애국주의 청소년단체인 화랑의 정신과 기풍은 아무리 미화해도 오늘 한국인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토착 영성가 도암의 성자 이세종, 맨발의 성자 이현필, 이용도는 온몸과 맘으로 예수의 마음을 체험하고 살았다. 이세종(李世鐘)[1879~1942]은 글을 몰랐으나 성경을 공부하면서 창조자 하나님과 예수의 사랑을 만난 후 이름을 공(空)이라 하고 자연만물을 제 몸처럼 사랑했고 재산을 팔아 이웃에게 주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으로 하늘의 마음으로 하늘처럼 살았다.
이용도는 33세의 나이로 죽었으나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의 슬픔을 안고 그의 병들고 아픈 몸과 맘을 불사르면서 피를 토하듯 쏟아내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아름답고 거룩하고 참된 말씀이면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움직이는 노래이고 시였다. 이용도는 천하고(賤), 가난하고(貧), 낮은(卑) 삶을 추구했고 늘 누구에게나 배우는 겸허한 학도가 되려 했고 십자가의 예수를 따라 고난과 죽음의 길로 갔다.
이용도는 자기비움의 영성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예수의 기쁨과 사랑을 실현하며 살았고 자기를 잊고 버리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사랑과 진리를 아름답고 거룩하게 드러내었다. 이세종과 이현필의 삶과 말과 행동이 그랬듯이, 이용도의 삶과 말과 행동은 그대로 아름답고 거룩한 시와 노래이면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이들뿐 아니라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유영모, 함석헌, 김교신, 유관순, 전태일, 문익환의 삶과 말과 행동도 그처럼 시와 노래이면서 하나님이 한국인의 마음으로 빚어낸 한 예술품이었다.
한국의 여성신학이 미국의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여성신학이론, 페미니즘을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을 사랑하고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 여성신학은 이성주의적 비판과 의심을 앞세워 성경을 분석하고 평가한 퓌오렌자의 의심의 해석학을 여성신학이론으로 받아들였다. 비판과 의심에 기초한 여성신학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받아들이는 따뜻하고 평화적인 한국인의 마음을 가리었다. 그리고 버림받은 인간을 끌어안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예수의 마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오늘 한국사회는 심리적 내전상태에 빠질 만큼 극단적인 진영논리와 당파주의에 빠졌고, 젊은 여성이 젊은 남성을 혐오하고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것은 교감하고 소통하며 존중하고 배려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정복과 지배를 추구한 서양의 심리와 논리에 매몰된 것이다.
전태일의 삶과 죽음에 영감과 자극을 받은 민중신학은 신학적 완결성이 부족하고 신학적 논리와 주장이 거칠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버림받고 고통받는 민중의 심정과 처지에서 예수와 성경의 마음을 읽고 민중의 마음과 예수의 마음을 만나게 했다는 점에서 한국역사와 사회의 중심과 전면에 섰다는 점에서 민중신학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문익환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가 생명과 평화의 대통합논리이며 원리라고 갈파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은 차별과 당파를 짓는 흑백논리, 당파논리라고 보았다.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조건 없는 복음의 진리, 십자가 사랑의 진리는 영과 육, 자연과 역사, 내재와 초월, 인류, 세계, 문명을 통합하는 평화의 원리였다. 믿음만으로 구원얻는다는 진리를 통합과 평화의 생명신학적 진리로 파악한 문익환의 통찰은 ‘믿음만으로!’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신학적 통찰을 훨씬 능가하며 생명과 영혼을 살리고 구하는 예수와 바울의 통전적 복음을 회복한다.
2) 새로운 한국신학을 위한 사전 작업, 전통적인 서구신학에서 생명을 살리는 K-신학으로
(1) 히브리 기독교 전통의 재평가: 생명의 책 성경의 재발견
성경은 생명을 살리는 진리의 책이며 생명의 언어로 쓴 생명의 책이다. 히브리인들은 역사와 삶의 현장에서 믿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성경은 죄와 죽음에서 참된 삶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구원사건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삶의 아픔과 절실한 염원이 드러나고 참된 삶의 아름답고 온전한 실상이 드러난다.
기존의 서구신학은 성경의 역동적이고 생명적인 사유와 언어에서 벗어나 그리스의 관념적이고 실체론적인 사유와 어법에 매이게 되었다. 페터 아이허(Peter Eicher)는 신학(Theologie)이란 말 자체가 성경의 말이 아니며, 기독교의 신학이 그리스의 정신과 철학의 맥락에서 생겨났음을 밝혔다. 그리스의 철학과 기독교 신학이 결합됨으로써 그리스 철학의 관념과 실체에 근거한 교리논쟁과 사변(기독론과 삼위일체론에서 사용된 개념들, ύποστασια, ούσια)에 사로잡혔고, 국가권력과 결탁되고 교권과 제도에 매임으로써 복음의 생명력과 실천력을 잃었다.
(2) 과학적 이성과 초월적 영성을 통합하는 생명신학
유럽기독교 문명의 사명과 과제는 헬레니즘의 과학적 이성(로고스)과 초월적 생명(하나님) 신앙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요한복음에서 창조의 말씀, 그리스도를 로고스로 번역하고 Theos와 Logos를 결합하여 theologia(신학)를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 창조의 말씀과 그리스철학의 로고스를 통합할 책임과 사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서구문명은 과학적 이성철학과 생명-영적 초월신앙을 통합하지 못했다. 중세기에 이루어진 과학과 신학의 야합은 해체되었다. 근현대과학 철학(대학교의 학문세계)에서, 수학과 실험중심의 연구방법론에서 기독교 신앙은 배제, 추방되었다.
한국 기독교는 유럽기독교가 실패한 사명을 감당할 과제를 안고 있다. 율법, 로고스, 도(道, 법도와 이치), 다르마(법과 진리) 로고스(이성적 원리와 법칙)는 크게 보아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생명과 영혼에 규정과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다. 생명과 영혼은 과학적 이성의 원리와 법칙 위에 생명과 영혼의 진리와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과학적 이성 철학을 충분히 받아들이면서 그 위에 영적 생명 신학을 형성해야 한다.
헬레니즘 철학의 용어로 만든 교리. 교회제도와 형식, 과학주의(물질론과 기계론)에서 벗어나 생명의 진리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비종교화, 루돌프 불트만의 비신화화, 프리츠 부리의 탈케리그마화를 과감하게 받아들여 생명과 영, 역사와 사회의 진리를 체험하고 체화하여 새 나라, 새 공동체를 세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힘을 회복해야 한다.
3. 오늘의 도전, 내일의 길
1) 오늘의 도전과 새로운 한국신학의 모색
오늘의 도전과 새로운 신학의 모색
오늘의 도전 다섯 가지
첫째 권리와 의무 중심의 사법체계를 바탕으로 세워진 서구 민주주의 사회체제는 정치적 효율성을 잃고 한계에 직면한 것 같다. 사회경제적으로 중산층이 붕괴하고 극단적 양극화로 생활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둘째 과학기술과 산업자본이 지배하는 현대국가 사회의 인간들은 물질론, 기계론, 관념론에 함몰되고, 데이터와 정보에 파묻혀서 물질가치와 계산가치의 지배와 예속 아래 살고 있다. 물질론과 기계론, 과학기술과 돈이 지배하는 현대 산업 문명사회에서는 생명철학과 종교신앙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셋째 한국 개신교인 비율이 2012년 22.6% 2023년 16.6% 2033년 12.6%로 급격히 줄어들고 2023년 무종교인의 비율은 62.9%로 역시 급속히 늘고 있다. 20대와 30대의 무종교인의 비율은 80%를 넘는다.
넷째 오늘날 인간의 노동(생산성)과 지능(지식과 정보, 언어와 추론)을 압도하고 대체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전보다 더 근본적이고 철저한 사회혁명을 요구한다.
다섯째 논문 형태의 학술적 작업은 아주 작은 부분만 남겨두고 거의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참된 신학은 ‘내가 죽고 다시 사는 일’과 ‘예수의 살과 피’, ‘예수의 정신과 뜻’이 나의 삶 속에 살아 있게 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신학이다.
(2) 글과 내가 하나로 되는 신학: 한국인의 마음으로 신학한 김재준의 생활신학
그는 “서(書)와 아(我)가 일체가 되는 경지”를 말함으로써 주체적인 학문, 학문의 자립을 강조하였다. 학문의 권위와 주체성과 창조성을 얻으려면 남의 글, 각주에 의존하기보다 나와 글이 일치하는 경지에 서야 한다. 문자와 주해에 매인 서기관과는 달리 예수는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다.(마7:29) 예수야말로 “서와 아가 일체로 사는 경지”를 보여준다. 김재준은 “우리 학자들도 서기관 ‘레벨’을 상회하는 권위가 성자의 후광처럼 나타나는 날”을 기대한다.
(3) 생명을 살리고 높이는 생활신앙과 한국 생명 신학
한국 근현대의 중심과 선봉에서 새 역사, 새 나라, 새 문명을 열어간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유관순, 전태일, 문익환에게서 교리와 교회 제도를 벗어나 오늘의 삶과 성경의 진리를 직결시키는 생명신학을 배우자. 김교신, 이용도, 이세종, 이현필, 최홍종에게서 생활신앙과 토착적 영성을 배우고 K-생명신학을 형성하자. 감성과 이성과 영성, 몸, 맘, 얼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생명 신학, 생명철학을 닦아내자.
2) 시대정신을 구현한 생명 신학의 모범, 안창호, 유영모, 함석헌의 생명신학
한국 근현대의 시대정신은 1907~1910년 안창호와 이승훈이 신민회를 중심으로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제시하며 민족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는 민족교육운동에서 가장 뚜렷이 온전히 드러났다. 한일합병 후 일제는 먼저 신민회 조직의 뿌리를 뽑으려고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였는데 이 때 체포된 105인 가운데 92인이 기독교인이었다. 도산이 조직하고 이끈 신민회의 민족독립교육운동은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뿌리와 불씨였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내용과 토대를 놓는 운동이었고 민주화와 산업화, 민족 독립과 통일의 정신과 토대를 다지는 운동이었다.
이들의 민족교육운동에서 3·1운동의 불씨가 뿌려졌고 임시정부의 정신적 인적 자원과 토대가 마련되었다. 민족의 주체와 정체를 확립하는 민주공화의 노래로 만들어졌던 애국가 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와 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구름없이 높고,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는 기독교정신과 한국민족정신이 만나서 형성된 새로운 민족정신을 아름답고 심오하게 드러내었다. 1절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성경의 초월적 하나님 신앙이 드러나고 3절에는 하늘을 우러르며 높은 뜻을 간직한 한국인의 마음(일편단심)이 오롯이 드러난다.
3)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모습을 보여주는 새 나라, 새 생활공동체
드라마 작가가 한국인의 마음과 예수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창의적인 인문학자다. 드라마 작가는 모든 사람을 그 사람의 심정과 처지에서 주체와 전체로 본다. 단역, 조역을 맡은 사람도 개성과 생기로 빛나게 그린다. 저마다 사연과 곡절을 지닌 인물로 그림으로써 한국 드라마는 재미 있고 감동적이다. 교회는 드라마처럼 재미 있고 감동적인 곳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그 사람의 심정과 처지에서 보았던 예수가 그랬듯이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으로 제 삶과 역사의 주인과 주체로 선언하고 존중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마을 생활공동체, 지역사회공동체, 민주 공화의 나라, 세계연방을 열어가는 중심이어야 한다. 교리와 교회 체제를 넘어서고 벗어나서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산 위에 세운 동네(도시)처럼 교회가 삶과 정신, 모범과 희망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새 시대, 새 나라, 새 공동체 비전과 대안을 보여주어야 한다.
K-신학은 AI를 위한, 새 사회체제를 위한 물질과 생명과 정신의 가치와 존재의 체계를 밝히는 생명철학이고, 삶의 지침과 방향을 제시하는 생활윤리이며, 신의 정의와 평화, 사랑과 진리를 드러내고 신의 나라 헌법과 그림(산상설교)을 제시하고 하나님 나라를 앞당겨 보여주는 희망의 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