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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잘 있는지…
2000년 가을 암릉등반 雜說 시작.
11. 3. 20:15분 서울 출발.
이번에는 어떤 가슴 벅찬 기억을 만들어 올는지, 사뭇 기대가 크다.
작년 천화대 갈 때는 등산학교 동문 수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학교 5기와 6기가 합세했으니 수가 더 늘어날 수밖에.
새로운 루트 개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산으로 향하는 버스는 언제나 그렇듯 모두의 기대가 어우러져 무지갯빛을 띤다. 좋은 산행이 되리라.
설악동에 도착한 시간은 11. 4. 24:30분. 칠흑 같은 밤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들이 우리의 랜턴이 되어 주었다.
물론 달도 곁에 있었지만, 나의 관심은 단연코 별에 있다. 항상 보던 얼굴보다는 못 보던 얼굴을 만날 때 더 반가운 이치와 같다.
별이 끝나는 저 하늘 끝에 그리운 누군가를 그려 본다.
하늘의 별은 설악산의 천년토(千年土)가 만들어 놓은 땅 위에도 있었으니 이들은 바로 무심하게도 전부 져버린 가을 단풍잎.
조금만 더 우릴 기다렸다면 단풍잎도 이 진한 크림색깔의 달빛을 받아 땅 위의 별이 되었을 터인데…
설악골 입구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끌벅적 때론 고즈넉이 걸어간다.
태용 형의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그다지 재미난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형이 웃는 소리를 듣노라면 그냥 함께 웃고 싶어진다.
선천적으로 웃음을 즐기는 사람이 아닐까?
이승훈 선생님, 환균, 태용, 승헌, 종남 형과 미자 누나, 상래 형, 주영일 선배, 병문 형 그리고 영선이…
칠형제봉으로 루트를 잡은 11명의 대원이 끈끈한 팀워크로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각자의 맘속에 오래오래 간직할 11개의 봉우리를 그려낼 것이라 생각한다.
설악골 입구에서 천화대 팀과 안녕을 고한 시각이 11. 4. 01:40분.
가장 연장이며 어머니라 불러드리는 김영희 님께 잘하시라고 몇 번 외쳤지만 안 들리는 것 같다.
02:15분에 잦은바위골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이 우리 루트를 시작하는 초입이다.
잠잘 곳을 찾았다. 너무 자리가 좋아 밤사이 누가 지나가며 우리 머리를 발로 다듬어 놓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드는 곳이다.
환균 형, 영선이와 함께 잤다. 영선의 향수 냄새인지 샴푸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11. 4. 06:20분
기상하여 아침 식사로 어제 마련한 김밥을 먹는다. 날씨가 꽤 쌀쌀해서 따뜻한 침낭에서 나가기 싫다.
영선이는 벌써 물을 떠 와 미역국 국거리를 준비한다. 그냥 있을 수 없었지만, 몸이 뒤따르지 않는다.
다른 대원은 좀 더 위쪽 사이트에서 잠을 청했기에 함께 식사하지 않았고 환균 형, 영선이, 나만 식사를 마쳤다.
미역국을 한 방울 남김없이 먹고 출발한 시간이 07:10분. 산에선 뭐든 양껏 먹어야 한다는 본능이 작용한다.
드디어 산비탈로 칠형제봉 암릉 등반을 시작했다.
호흡을 조금씩 고르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준비한 칠형제봉 등반 자료로는 곧 30m짜리 직벽이 앞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산길을 따라 오른 지 벌써 한 시간 이십여 분이다. 앗! 무언가 나타났다. 높이 12∼3미터 직벽이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난 칠형제봉 팀의 후미를 받으라는 환균 형, 이승훈 선생님의 지시로 맨 뒤쪽에서 등반했는데 사실 후미가 쉽지만은 않다.
사용한 로프를 간추려야 하고 그 외 사소한 작업도 항상 확보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 많다.
확보를 생략할 정도의 실력은 되지 않고 또 그런 위험을 감수할 자신도 없다. 영선이가 줄곧 나를 도와줬다.
어떻게 이 웬수를 갚나?
열한 명의 대원이 직벽을 올라서면서 소비한 시간은 약 삼십 분 정도.
이제 암릉등반다운 등반을 시작한 것이다. 다른 팀과의 무선교신으로 그 서막을 알렸다.
누군가의 요들이 들렸다. 천화대 능선과 칠형제봉 능선을 타고 마치 북의 공명처럼 요들은 능선과 능선 사이의 계곡까지 깊숙이 퍼졌다가 반향을 일으켜 울려 퍼진다. 전 선생님의 요들인 것이 틀림없다. 태용 형도 화답했다.
"요로레이… 요로레이히…"
잠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이승훈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근처의 천화대와 칠선봉, 공룡능선, 그리고, 칠형제봉 암릉에 대해 설명을 하시는데 정확히 모르겠다.
이 봉우리가 저 봉우리 같고 저 봉우리가 이 봉우리 같다. 산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지도를 보면 천화대 능선과 칠형제봉 능선, 천화대 능선으로 이르는 염라길, 석주길, 흑범길이 눈에 익는다.
(루트 이름 표시가 안 되어 있는 지도는 알아보기 어렵다.)
저 멀리 보이는 마등령과 세존봉 덕분에 공룡능선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승헌 형이 일찌감치 피곤해한다. "민철아, 초콜릿 있냐?"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얼굴빛이 하얗게 변한 듯싶다.
재빨리 준비한 초콜릿 바를 드렸다.
"내 몸은 내가 안다. 퍼지기 전에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쉬이 힘들어져도 영양분을 공급하면 빠르게 회복한다."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다. 인수봉에서 앞장과 산행 참여는 참으로 열정 자체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다.
우회하는 길이 보이지 않아 그저 오르기만 한다.
잠시 바람이 요동치는 듯하여 귀를 기울인다. 바람 소리가 귓전을 스쳐 간다. 손바닥을 곧추세워 지나가던 바람을 튕겨본다.
"휘이∼잉, 휘리∼익 "
몇 번째 봉우리를 넘어서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감각적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그때마다 설악의 장대함을 느낄 뿐이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한 곳이 이곳이 아닐까? 생의 성취를 위해 우리는 저 끝까지 헤엄쳐 가는 것이다.
때맞춰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 팀의 동반자이자 안내자. 바람이 부는 데로, 요들이 메아리쳐 흐르는 데로…
오후 한 시가 다 되어간다. 네 번째 봉우리인지, 다섯 번째 봉우리인지를 넘어서자 다시 15∼6m 직벽이 버티고 있다.
일단 점심을 먹기로 하고 간단히 식사했다. 어젯밤에 싸온 김밥이 아직도 남아 있어 지금까지 요깃거리가 된다.
서로들 자기 김밥을 먹어보라고 하지만 준비량이 많아서 그런지 절찬리에 팔리지 않았다.
앞에 있던 직벽은 언뜻 보기에 쉬워 보였다. 종남, 환균 형이 호흡을 맞춰 오르기 시작했다.
전면 옆쪽으로 돌아 10여 센티가량의 크랙 쪽으로 올라갔고
우리의 '호프' 영선이는 적당한 틈이 벌어진 전면 경사 슬랩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난 영선이를 확보했는데 올라가던 중 마지막 한 발짝이 애매했던 모양이다.
요리조리 궁리하다가 급기야 "악! 떨어져요. 줄 좀 주세요." 하며 도움을 부탁한다.
다른 루트로 먼저 오른 대원이 고정하여 아래로 내려뜨린 로프와 불과 20여 센티 떨어진 곳이다.
지도하던 이승훈 선생님이 고정 로프를 살짝 밀어 건네주신다.
밑에서 한가로이 쳐다보던 나는 살풋 웃음이 나왔지만 나도 어찌 될는지 모르기 때문에 혀를 살짝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다른 형들과 미자 누님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며 마지막으로 오른다.
영선이가 올라간 그대로 올라갈 자신이 없어(?) 오른편 좀 더 손잡이가 확실한 곳을 골랐다.
7∼8m를 올라간 후 왼쪽으로 한 발자국을 살짝 옮기니 좀 전에 영선이가 헤맸던 그 자리다.
'혀 깨물기를 잘했지…, 왐마! 이거 어떻게 올라가냐??' 상당히 어려웠다.
애매하다는 표현은 암벽을 잘하는 사람들이나 쓰는 완곡한 표현이다. 무지하게 어렵다.
등에 식은땀 나기 전에, 펌핑 나기 전에 올라야 한다.
체면을 구기더라도 오늘의 안전한(?) 산행을 위해 그렇게도 날 유혹하던 로프를 잡고 가볍게(?) 올라섰다.
내 배낭은 가스버너, 가스랜턴이 옷가지류와 함께 어지럽게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로프 한 동을 배낭 헤드에 올려놓으니 조금(?) 무겁다.
하지만 더욱 괴로운 점은 시간이 지나도 그리 쉽게 가벼워지는 물건들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여섯 번째 봉우리인가? 시각이 벌써 오후 세 시, 비박지를 염두에 둘 시간이다.
칠성봉 팀으로 등반 중인 채식 형에게 환균 형이 무전으로 비박지를 물어본다.
앞으로 한 시간만 더 가면 비박지가 나온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채식 형은 작년에 이 루트 등반을 했었다.)
줄잡아 30m는 족히 됨직한 거벽이 나타났다.
리더인 이승훈 선생님께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는 의견을 드렸지만(지금 이 시각에 넘어서기에는) 그냥 없던 말이 되었다.
환균, 종남 형이 배낭을 내려놓은 채 다시 로프를 매고 암벽을 오른다.
그사이 류병문 형이 우회로인듯한 길을 정찰하며 다행스럽게도 다음 봉우리로 이어지는 루트를 찾았다.
대원 중 나를 비롯한 몇몇은 봉우리로 올라서는 길을 기꺼이 사양하고 우회로를 선택했다.
암벽으로 오르느라 내려놓은 배낭을 함께 옮기자니 엄청나게 무겁다.
내 몸무게까지 합치면(?) 족히 100킬로그램은 될 성싶다.
내 배낭과 형 배낭에 로프까지 짊어지고 난 이대로 움직이질 않는 설악산의 붙박이 장승이 된다.
이렇게 봉우리를 넘어섰는데도 비박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그저 좀 더 가면 나올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계속 나아갔는데 30여 미터 정도의 하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하강이 끝나는 지점에는 땅이 없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30여 미터 하강이 끝나는 지점 밑으로 다시 몇 미터를 더 내려가야 했지만
로프 하단을 잡고 있던 이승훈 선생님께서 이 로프를 당겨 삼 미터 정도를 가로질러 맞은편 땅에 착지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올해의 『티롤리언 브리지(Tyrolean Bridge)』.
어렵사리 하강하고 초코파이 하나를 꺼내 먹는다.
한 입 삼키기도 전에 앞서 가던 형들로부터 빨리 로프 가져오라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여덟 시가 넘어섰다.
어둠이 짙게 깔려 랜턴을 꺼낸다. 하강을 준비하는 소리에 살짝 긴장했다. 환균 형이 영선이와 마지막으로 하강했다.
지금부터 비박지를 찾아야 한다. 안부에 배낭을 내려두고 다른 대원이 내려간 반대편으로 로프를 내려 50여 미터를 내려갔으나 도무지 평평한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당혹감을 느끼면서 올라왔다.
영선이가 가지고 내려온 로프 한 동을 다시 연결하여 혹시나 하면서 100여 미터를 내려갔지만
역시나 하늘은 우리에게 편한 잠자리를 제공치 않았다.
우리 열 명은 두어 평 남짓한 자리에서 오밀조밀 거의 서서 식사를 끝내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비박이라고 이승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승훈 선생님은 비박지를 찾는다고 반대편으로 내려가셨는데 그날 밤 끝내 돌아오지 않으셨다.
나와 영선이는 팀의 막내라 무엇을 선택하던 맨 마지막 순번이다.
형들이 먼저 잠자리를 차지한 뒤 비박할 공간이라고는 손바닥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형들도 벽에 상반신을 기댄 채 아주 불편한 밤을 보냈다.)
다행히 조그마한 관목형 나무가 자연스럽게 가지를 뻗고 있어서 영선이는 그 위에 매트리스를 깔아 자리를 마련하였다.
난 형들의 배낭을 비탈진 곳에 눕혀 누울 공간을 확장하였다.
배낭을 밑에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어도 엉덩이만 겨우 걸칠 정도의 공간이다. 불편하지만 하반신을 최대한 구부려야만 했다.
안전밸트를 차고 확보한 로프를 연결하였다. 참 길고도 피곤한 밤이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우리의 잊지 못할 기나긴 밤을 선사하고 싶다.
예닐곱 번을 깼는데 그때마다 하늘은 너무나도 까맸다.
산에서의 밤이 이렇게 더디게 갈 줄이야… "아이고, 허리야!"
11. 5. 아침 7시.
아침 해가 어제의 긴 밤을 몰아낸 것을 안 시각은 일곱 시다. 어디선가 이승훈 선생님께서 나타나 계셨다.
말씀을 들은즉슨, 전날 비박지를 찾으려고 봉우리를 우회하여 한참을 갔는데도 불구하고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셨단다.
피곤해서 근처에 대충 자리를 정하고 잠시 쉰다는 것이 9시를 넘겨 버렸고,
이후 저녁 식사도 끝났겠다 싶어서 그냥 그곳에서 밤을 보내셨다는 것이었다.
밤중이더라도 선생님을 찾아 식사를 권하지 않은 것이 못내 죄송스러웠다.
아침을 거르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어제 운행 거리가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로 다들 조급해한다.
앞에 나타난 직벽을 우회하여 횡단한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다들 무사히 가로질렀다.
내가 마지막으로 로프를 정리하면서 진행한다. 앞서 있는 영선이가 확보한다.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동생이다.
그렇게 가로질러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공간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아홉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드디어 배낭의 무게를 줄일 기회가 왔다. 햇반 세 개에, 약간의 반찬류, 그리고, 900mL짜리 마실 물…
햇반을 데우지도 않고 그냥 먹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별스런 맛이다.
식사 후 사십여 분을 나무와 풀을 헤치고 올라올라 도착한 봉우리 정상이 『신선봉』.
아래로 탁 트인 광활함과 시원한 바람이 어젯밤의 고단함을 씻어준다.
추억 만들기 시간이 시작되었다. 공룡능선과 천화대를 등 뒤로 두고 모두 증명사진 촬영과 작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천화대 팀은 지금쯤 범봉 하강을 하고 있을까?
산에 오면 무전 소리가 왜 그리 반갑게 들리는지.
무전을 따라 들려오는 칠성봉 팀, 천화대 팀, 홀로 공룡능선으로 등반 중인 박철규 님의 목소리도
모두 목마른 대지에 떨어지는 빗줄기처럼 동료의 안전한 등반을 바라는 갈증을 적셔 준다.
드디어 희운각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스톡을 꺼내어 튼실한 다리를 만들고 이내 하산을 시작했다.
이렇게 올해의 설악산 산행도 끝나는가 보다. 폭 좁은 릿지화의 바짝 조여진 발가락 고통 호소에 속히 내려간다.
그래도 설악산 비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눈 돌림은 계속한다.
암릉 꼭대기에서 내려다뵈는 계곡의 비췻빛 물결과 그 물그릇, 두둥실 떠다니는 노란 가을빛 나뭇잎.
하늘의 경계가 산봉우리이고 그 넓은 하늘도 고작 한 뼘에 지나지 않는 천불동 계곡을 지나치며
인간의 미술 원천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곳은 바로 이곳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차원의 점은 탕 속에 빠져 표류하는 나뭇잎이요, 이차원은 소나무 기둥과 이름 모를 수목들이다.
삼차원의 풍광은 또 어떤가? 사차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스카이라인이 그리는 수평과 산이 빚어내는 수직이 교묘히 교차하는 곳을 점으로 이어 이어 한 뼘 하늘을 만들면
그곳이 바로 사차원이 아닌가!
오후 다섯 시경 비선대에 도착했다.
귀면암을 지나치면서 만난 은성수 형과 시원한 칡 막걸리를 마시며 그 옛날 선비들의 백수 짓을 흉내 냈다.
산행의 맛이 그저 산길을 오르는 것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라도 나는 앞으로도 산행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