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의 삶과 세상 이야기] 44번째: 꿈은 양식이요 생명이니
이스라엘의 건국 수상인 벤 그리온에게 아서 번즈라는 경제학자가 물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그처럼 놀라운 성공을 이룩해 냈습니까?"
벤 그리온이 대답했다.
"우리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을 해냄으로써 그 꿈을 실현
시켰습니다."
벤 그리온의 자랑스런 대답 속에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이 숨어 있다. 꿈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놓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모지 사막에다 조국을 세운다는 꿈을 가졌다.
세계의 모든 경제학자들은 그 꿈을 비웃었다. 광대한 사막을 육토로 뒤바꾸겠다는 계획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꿈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갑자기 몇몇 사람이 모여서 정한 꿈이 아니라 수천년 세월 동안 유랑인의
삶을 견디면서 품고 키워온 민족의 꿈이었다. 그들은 그 꿈에 도전하였고, 혼신의 힘으로 싸웠고, 결국
그것을 실현해 내고 말았다. 꿈의 흡인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민족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꿈은 중요한 문제이다. 꿈을 가진 사람과 꿈을 갖지 못한 사람의 삶은 과정에서나 결과
에서나 커다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은 그 꿈을 언제 어떻게 가져야 할까. 꿈을 정하는데도 이를 테면 원칙 같은 게 존재할까.
우선 나는 꿈이라는 게 조급하게 정해져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이후에 정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 마냥 미루고만 있을 수도 없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일생 동안 아무런 꿈도 없는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꿈이 청년기를 통하여 끊임없이 모색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배우고 접하는 모든 분야에 마음을 열면서, 그 어딘가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탐색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기가 끝날 무렵에는 자신만의 단단한 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법조인으로서의 장래를 결정한 것은 대학교 3학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제는 청년기의 마지막 수레가 지나가려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수레의 한 자리를 얻어타야 했다.
법관의 길은 내 한 인생을 바쳐 추구할 만큼 충분히 가치있어 보였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삭막하고
걱정스럽다.
내가 성장기를 보내던 시절에는 여유라는 것이 있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고, 그러면
서도 때가 되면 입시공부에 열중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된 다음에도 마찬가지
였다. 처음 두어 해는 여유롭게 인생을 탐구할 수 있었다. 삶은 무엇이고 젊음은 또 무엇인지를 사뭇
낭만적인 기분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
부터 입시전쟁터로 내몰린다. 그 고귀한 시간들을 쪼개어 영어다 논술이다 음악이다 미술이다를
배워야 한다. 대학생이 된 다음에는 또 가차없이 취업전쟁터로 내몰린다. 고등고시는 물론이고,
모든 종류의 취업시험을 위한 준비가 대학 초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처럼 정신없이 휘둘리는 삶 속에서 과연 어떻게 자신만의 꿈을 탐색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일종의 과속도가 걸려 있다는 느낌이 든다.
태어날 때 체중이 정상치보다 많이 떨어졌던 아기들 중 일부는 몇 개월이 지나면 정상치보다 훨씬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작게 태어난 데 대한 보상심리로 지나치게 많은 영양을 빨아들이는
까닭이다. 우리 사회의 과속도도 그런 성격을 가진 게 아닐까 싶다.
일제시대의 폐막과 함께 우리나라는 세계시장에 내던져졌다. 아주 작고 여윈 미숙아의 탄생이었다.
우리는 한꺼번에 많은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과속도의 성장에 몰두한 것이다.
다행히 그 욕심들은 우리를 살찌워 주기도 했다. 그러나 살덩이만으로 모든 게 완성되는 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건강하고 균형잡힌 생명체가 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서둘러서 경쟁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넣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전쟁터로 밀어
넣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는 삭막한 전쟁터 대신 꿈의 궁전이 필요하다. 꿈을 먹고 자란 청소년들은
한결 튼튼하게 뻗어오를 것이다. 그들은 개인으로서도 성숙한 존재가 되겠지만 우리 사회의 입장에
서도 가장 확실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를 위한,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청소년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을 가꿔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 같은 환경을 마련해 주는 일은 당연히 어른들의 몫이다. 물론 내 자신의 몫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