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선(楞嚴禪)은
‘능엄경(楞嚴經)’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참선 수행법이다.
‘능엄경’에서 설하는 25가지 수행방법인 이십오원통(二十五圓通) 중
25번째 관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 수행법’이 그 핵심 내용이다.
‘이근원통’이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6근 가운데
이근(耳根, 귀, 청각) 즉 귀로 듣는 소리를 자각하는 수행법이다.
소리를 들을 때 '듣는 자'
즉 무엇이 듣는지 그 자성(본성)을 깨닫는 이치로,
이것을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 또는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고 한다.
들은 것을 되돌려서(反聞) 자신의 자성, 자신의 본성이 듣게 하여(聞自性)
자각함으로써 번뇌를 잊고 불성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능엄경’에서는 이근(耳根) 하나가 원통해지면
나머지 5근도 모두 원통해져서 해탈을 이루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원통(圓通)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안근(眼根)이나 비근(鼻根)이 아닌 이근(耳根)이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눈은 담장 밖의 것을 보지 못하고, 입과 코도 마찬가지며,
몸은 접촉하는 대상과 합해야 앎이 생기고,
마음과 생각은 분잡하여 단서가 없지만, 이근은 담장에 막히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모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오직 이근만이 전체를 통하는 진실한 것이다.
이근이 탁 트여서 원통해지면, 나머지 5근도 모두 원통해져서
각각 자성을 반조하여 불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근원통 수행은, 바깥에서 나는 소리(外耳聲)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소리(內耳聲)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바깥의 소리란 바람소리, 물소리, 또는 타인이 염불, 독경하는 소리 등에
집중하는 것이다. 또 자신의 소리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즉 다라니나 나무아미타불 등 염불소리, 독경소리를 자신의 본성이 듣는 것이다.
즉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들음으로써
‘누가 이 소리를 내고 누가 이 소리를 듣는가?’,
‘듣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자각을 통해,
번뇌를 단절하고 자성이 곧 불성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능엄선 수행법은 처음에는 소리에 집중(觀)하고,
그 다음에는 ‘돌이켜서 듣는 그 놈을 자성이 듣는(反聞聞性)’ 것인데,
중국 명·청(明淸) 대에 형성된 염불시수(念佛是誰, 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 화두도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인가 라는 반문을 통하여 본래면목을 깨닫는 것이다.
‘
능엄경’에서는 이근원통(耳根圓通) 반문문성(反聞聞性)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아난아! 소리도 사라지고 메아리도 없어지게 되면 너는 들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은 것이 없다면 듣는 성품(자성)이 이미 없어져서
고목과 같을 것이니, 종(鐘)을 다시 친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과 없음을 아는 것도 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너에게서 그 듣는 성품 자체가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한다면 무엇이 있어 그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저절로 소리가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지,
소리가 생겼다가 없어짐이 너의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은 아니니라.”
선불교에서 ‘능엄경’을 중시한 것은 중국 송 대부터로
특히 선원에서 선승들이 능엄주를 외우기 시작한 것은 중국 남송 때인데,
능엄주를 외우면 보다 쉽고 빠르게 능엄삼매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 불교에서 ‘능엄경’을 강조한 이는 고려중기 청평거사 이자현이 있으며,
근현대에는 용성 스님과 성철 스님께서도 ‘능엄경’을 중시하여
제자들에게 능엄주를 외우라고 강조하셨다.
능엄주에 마음을 집중시켜 능엄삼매를 얻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이다.
[출처] 법보신문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 능엄선카페 재인용함
첫댓글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닷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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