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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울뜨레야
 
 
 
카페 게시글
일반 게시판 스크랩 예수님의 사랑 / 가상칠언
마르첼리노 추천 0 조회 34 11.05.20 01: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예수님의 사랑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삶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마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 받기를 좋아합니다. 남편이 나만 사랑하면서 살아주기를 바라고, 아내가 나만을 위해 살아주기를 바라며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해 주기를 바랍니다.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순수한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이기적으로 변해서 질투와 분쟁을 유발시키기도 하며 이러한 모습은 교회 안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사제가 본당으로 부임될 때에는 본당 신자들의 사목뿐만 아니라 , 본당이 속해있는 지역의 주민들까지 포함해서 목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부임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사제는 신자들만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민의 구원을 위해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제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인 사고에 쫓습니다. 그렇게 사제를 좋아하고 따르던 신자가 어느 순간에 사제의 눈길이 내게서 떠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시기와 질투뿐만 아니라 험담과 모략도 생겨납니다. 이 때는 주님의 말씀도 뒷전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본당의 봉사자라는 사목위원 생활은 어떻습니까? 협조는 하지 않으면서도 뒷전에서 궁시렁 거리는 사람.... 봉사라는 직책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 교회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얻으려는 사람... 온갖 아부를 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사람... 목소리만 크면 최고라는 생각으로 떠들어대는 사람... 정말 교회 안에는 갖가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모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모습을 주님께서 바라보고 "내가 십자가상의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은 이런 모습을 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야" 하고 꾸짖지나 않으실까 두렵기만 합니다. 마지막 죽음에 임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은, 일 곱 마디의 말씀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오전 9시였고, 십자가상에서 운명한 것은 오후3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6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생명이 유지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죽음은 빨리 죽지도 않고 처절한 아픔의 고통을 겪으며 서서히 죽게 만드는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상의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당한다면 어떤 이야기로 생명을 연장하려 했을까? 예수님께서는 이 길고 긴 6시간 동안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일곱 마디의 말만 하셨습니다. 4복음서에 나타난 것을 종합해서 순서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째 말씀: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 이것은 예수님의 인간사랑, 인애주의(人愛主義)로 자신이 마지막 죽음에 임하면서도 상대를 용서하는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둘 째 말씀: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가 23,43). 최후순간까지 회개하는 한마리 양을 위해 봉사하는 봉사주의로 이것은 파라다이스(낙원)의 약속이었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는 세 가지 봉사가 있습니다. 첫째는 존재의 봉사로 우리 자신이 풍기는 향기 평화 등입니다. 둘째는 말씀의 봉사로 교리, 성경말씀, 남에게 용서와 힘을 주는 말입니다. 셋째는 행동의 봉사로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인데 이기심을 줄이고 상대방을 이해해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셋 째 말씀: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요한 19,26-27). 이것은 예수님이 영적으로 맺어준 투철한 형제주의이며 아들로서의 효도였습니다. 넷 째 말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 27, 46). 이것은 예수님의 신앙주의며 영적인 고민이었습니다. 우리도 끊임없는 악의 유혹으로 위기에 다다르고 절망, 좌절할 때 하느님을 찾는 신앙을 굳건히 하도록 표양을 보이셨습니다. 다섯 째 말씀: "목마르다"(요한 19,28). 예수님의 희생주의로 극심한 고통중에도 초와 쓸개등 진통제를 거부하심 우리가 하고싶은 것 절제하고 하기싫은 것 하는 것이 희생입니다. 여섯 째 말씀: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예수님의 실천주의로 이것은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날 그날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될 때 우리도 죽음을 맞이하여 제가 할 일을 다했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곱 째 말씀: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루가 23,46). 예수님의 구원주의로, 이것은 최후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처음 세 마디는 9시부터 12시 사이에 말씀하시자 12시부터 3시까지 세 시간 동안 온 땅은 어두워졌습니다. 그 세 시간 동안 예수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시다가 오후 3시에 예수께서는 나머지 네 마디 말씀을 연거푸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으로써 죽음이 아닌 죽음이었고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는 죽음이었으며 거룩한 죽음이었습니다. 신앙이 없는 자들은 보이는 세상이 전부이기 때문에 지금 모든 것을 결판내야 합니다. 여기서 쾌락을 누리지 못하면 불행한 삶이요 돈이 없으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경쟁에서 밀리면 패배한 것이고 먼저 용서를 청하면 남에게 굴종하는 것입니다. 희생과 봉사는 손해 보는 일이며 자선은 돈 낭비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죽음 뒤에 이어질 부활의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나는 너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많은 고통도 겪었습니다. 쉴 시간이 없었습니다. 늘 기도했습니다. 손에서는 묵주를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고독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묵묵히 실천하느라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제 그 십자가를 여러분들에게 넘기고 나는 쉬러 갑니다. 나는 이제 그대들 곁을 떠나지만 내가 하던 일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해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편히 주님께 갈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

 

 



 




♥해주었다」가 아닙니다
저 사람을 위하여 그 일을「해주었다」.
이렇게 「해주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봅시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어 기뻤다」라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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