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좌선의 요체는, 제일(第一)이 반성이며,
반성하는 데는 마음을 진정하고,
자신의 몸에 맞는 가장 편안한 자세가 좋은 것이다.
이것이라고 단정지을 만한 편안한 자세는 원래 필요 없다.
다리가 긴 사람. 짧은 사람, 몸이 살찐 사람. 마른 사람, 여러 모양인데
이것을 한 가지 틀 속에 맞추려고 하면, 아무래도 무리다.
다리가 저리기도 하고, 숨이 가빠지기도 하여 좌선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좌선의 형식은 주로 요가에서 전해져, 오늘날의 선종에 이어진 것 같다.
고타마는 오랫동안 좌선에 친근감을 갖고 있었으나 형식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있었다.
굳이 취한다면 반가부좌의 자세로 선정해 왔다.
지금은,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다.
참선 중에 개미나 독충에 물리는 수가 자주 있었다.
어쨌든 야외에서의 선정이기 때문에, 이러한 독충(毒蟲)이 언제 달려들지 몰랐다.
물리면 피부가 부어올랐고,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 때문에 선정할 때는,
약초에서 짜낸 즙액을 피부에 바르고 독충으로부터 몸을 보호했다.
그런데 이 즙액이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기분이 역겹다.
낮에는 탁발과 목욕을 하기 때문에, 선정은 대개 야간에 한정되어 있었다.
독충보다는 무서운 것이 독사(毒蛇)였다.
독사에 물려 희생된 수행자는 지난 6년간에 몇 명이나 있었다.
고타마는 이러한 재난에 아직 한 번도 당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조심만은 하고 있었다.
대나무 통속에 큰 지렁이에서 뽑은 액체를 항상 옆에 두고 독사에 물리면
그 독이 몸에 퍼지기 전에 즉석에서 물린 부위를 끈으로 묶고 상처를 지렁이 액체에 담그는(적시는) 것이다.
수분(數分) 담그면, 독이 분해되고, 위기를 벗어난다.
독사는 주로, 사암(砂岩)이 많은 암석지대에 서식하는데,
우루벨라의 수행장은, 바위도 없고 땅도 비교적 건조하여 잡초가 적었기 때문에, 이러한 염려는 거의 없었다.
고타마는, 다시 반성의 명상으로 들어갔다.
20대의 상념과 행위에 대한 반성이었다.
이 연대에는, 이웃 나라와의 싸움이 잦았다.
대군을 거느린 전면 전쟁이라기보다,
적정을 살피는 정찰적인 게릴라전 내지는 영토 문제의 착오에 의한 충돌이었다.
충돌은 카피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으나,
그래도 카필라는 항상 긴장이 계속되어,
무장한 무사들이 성 안과 밖에서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는 체제로 포진하고 있었다.
고타마는 자주 싸움터를 보러 갔다.
무사들의 시체가 도처에 흩어져 있었으며,
아군이건, 적군이건, 처참한 꼴이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장정들이 무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목이나 팔이 없는 자. 창이 가슴판을 관통하여,
땅속 깊게 박혀 움직이지 못하고 숨이 끊어진 자.
맞붙어 서로를 단검으로 찔러 엉킨 채 포개어 죽어 있는 자. 참으로 처참한 것이었다.
무장한 군인들의 진군, 행진은 용감하고 씩씩했다.
보기에는 믿음직함을 준다.
여자도 아이들도, 그만 그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무운과 승리에 취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터에는, 낭만을 자아내는 화려함은 없었다.
행군과 전쟁터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어,
싸움터에는 무참한 죽음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타마는 카필라 성과 싸움터를 왕복할 때마다 전쟁의 모순을 절감했다.
그러나 모순이라고는 생각하면서도,
카필라의 식사 당번이 스파이에게 독살당하거나
무사의 목이 잠자는 사이에 달아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면,
현실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카필라 성내를 순찰하러 나가면,
무장한 병사들이 차렷 자세로, 경외(敬畏)를 갖고 맞아 주었다.
안내를 부탁하면 기꺼이 앞장섰다.
그들은 언제라도 사지(死地)를 향하여 가 주었다.
죽음은 누구라도 싫어하지만, 병사들은 싸우기 위해 있었다.
명령과 군법이 그들의 생활을 묶어놓고 있었다.
병사들의 인생은 죽기 위한 것인가. 살기 위한 것인가.
긴장과 방일(放逸)속에 그들의 인생이 있는 것인가.
고타마는 병사들을 대할 때마다,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 살아있는 모순에 마음이 어두워졌다.
긴장의 매일이었기 때문에 밤이 되면 무희랑 가희들로 성내는 흥청거린다.
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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