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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주류성이야기 기벌포 전투
하루신선 추천 0 조회 127 19.01.10 09:23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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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9.01.10 09:34

    첫댓글 글 첫 단락 "백제가 망하기전 전체 성곽이 200여 성인 것에 비추어 볼 때 부흥군에 가담한 성이 200개 성이라 한다면 웅진사비의 도성지역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부흥군의 세력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가 패망하기 직전 "200여성"은 지방행정 조직 단위를 가리키는 것이지 성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흥군의 본거지 "임존성" 또한 행정조직 임존성과 성곽 인 임존성의 분별이 필요하다.
    백제가 망하고 풍달군 "군"을 "성"으로 격하시켜 임존성으로 대체하여 풍달군은 사라지고 갑자기 임존성 만이 등장하는 것이다.

  • 작성자 19.02.27 23:44

    멸망할 당시 백제는 5부·37군·200성(혹은 250현)이었고 호수(戶數)는 76만호(萬戶)였다.

  • 작성자 19.03.06 14:24

    백강전투의 위치와 함께 이해할 수 없는 또다른 한가지를 지적해 본다.

    왜는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수백척의 배에 수만의 군사와 군수품을 싣고 백제땅으로 건너왔다. 왜의 수군은 사실상 수송선 역할이 주된 임무였다. 그런데 역사서 어디에도 가득 싣고 온 지원군과 군수품을 상륙시켰다는 내용은 없고 단지 전투 내용만 전해진다.
    지원군 군수품이 가득한 배로 전투가 가능할까?
    당시 전투에서는 별도의 수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운송수단 이었을뿐이다. 그런데도 해전이 있었다면 어떤 해전이었을지 고민해 볼 일이다.

  • 작성자 19.03.06 14:13

    나당군이 주류성으로 진격하면서 수군도 함께 주류성으로 향한것 처럼 기록하였고, 백강구(백촌강 웅진강구)에서 백제 기병, 왜의 수군과 전투한 내용을 같이 기록하면서 백강과 주류성이 마치 가까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맞다, 백제부흥운동을 기록한 고서들의 내용은 3년간의 주요한 사건들을 함축하여 기록한 것 이기에 많은부분 시간과 장소들이 뒤섞였을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힘들다.

  • 작성자 19.03.06 09:51

    구당서 유인궤전에 "손인사, 유인원과 신라왕 김법민은 육군을 이끌고 진격했고, 유인궤 별수 두삽 부여륭은 수군과 양선(군량선)을 거느리고 웅진강으로부터 백강으로 나아가 육군과 합류하여 같이 주류성으로 향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을 근거로 백촌강 전투를 추정해보면 웅진강으로부터 백강으로 나아가 백강구(군산인근)에서 전투를 한 후에 수륙이 함께 주류성으로 향했다는 뜻이다.

    위 주장의 해석을 반론하면

  • 작성자 19.05.27 11:08

    위 주장의 해석을 반론하면
    주류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나당군은 육로와 수로로 웅진에서 출발하여 백강에서 강을 건너 주류성으로 떠났다. 그런데, 고서에는 백강어귀에서 부흥군의 무리를 만나 진압하고 이어 백강해전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필자는 백강어귀에서 부흥군무리를 물리치고 주류성으로 향한 것으로 해석하였지만, 궁색한 해석이다.
    백강어귀의 전투를 벌인 당수군은 웅진에서 출병한 군사가 아닌, 다른 곳에 주둔하고 있던 당군으로 보아야 옳다. 즉 백강구는 백강(금강)이 아닌 다른 지역의 해안포구 이고, 당군이 안전하게 상륙 주둔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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