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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그랖손 운 하 에이데스 카이 하 에이신 카이 하 멜레이 게네스다이 메타 타우타] .
“그러므로 기록하라" [그랖손 운]는 어구에 대해서는 1;11의 주석을 보라.
주절에서 요한 은 두 가지 주어, “네 본 것” 즉 (1) “이제 있는 일”과 (2) “장차 될 일”에 대해 언급한다. 이 구절은 독자에게 요한계시록의 대요를 제시한다는 추정이 종종 있었다. “네 본 것”은 아마도 요한이 방금 받은 환상과 관계가 있고, "이제 있는 일”은 일곱 교회 각각에 존재하는 상횡을 망라하고, “장차 될 일”은 미래 즉 요한계시록 4:1-22:5에 나오는 종말론적 사건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Swete, 21; Bousset
[1906 J 198: Charles, 1 ’ 33; Lohse, 22; Vielhauer, Geschichte, 496-97) .
이 환상이 광 범위한 4-22장의 구조에 대해 아무것도 나타내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4-22장에 이어지는 환상들 중 일부가(2-3장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과거를 다룬다(예를 들어 계 12장)고는 이해되지 않는다(Beasley-Murray, 68; Roloff, 45; Swete, 19; Caird, 26: “a grotesque over-simplification")
따라서 이 절은 널리 퍼져 있던 헬라식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예언의 공식 문구를 요한이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요한은 여기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언급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재와 미래만을 강조하고 있다([하 에이데스]에 대해서는 아래를 보라) .
“네 본 것"[하 에이데스]은 요한이 12-20절에서 본 것에 적용할 수도 있지만, 19절을 기록할 때 아직 그는 환상 안에 있기 때문에 12-20절에 적용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 에이데스]는 11절에 나오는 첫 번째 위임(“너 보는 것을 쓰라"[호 블레페인 그랖손J)을 언급하는 것 같다. 19절에서 요한은 부정과거 동사 [에이데스]를 사용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그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예언의 공식적 문구를 각색하면서(아래를 보라) 과거를 언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성 복수 관계대명사 [하]는 중성 단수 관계대명사 [호] 와 다름 없이 그의 환상을 나타낸다. 19절에서 요한이 [호] 대신 [하]를 시용하는 이유는 [하]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예언의 공식적 문구에 사용되는 경향이 있는 중성 복수 정관사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절은 일종의 이중 의미(double entendre)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이 시제들은 예언의 공식적 문구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언급해야 하는 필연성을 충족시키지만, 저자는 서신의 부정과거 [에이데스]를 사용하고 있다. 즉 그가 기록하려고 하는 환상들은 이제부터 그에게 보여질 것인 반면에,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 환상들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네가 보는 것, 즉([카이]를 해설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현재와 미래의 사건들을 기록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