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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 김동명 '호수' 못이 운다. 진종일 맑은 눈빛을 빛내며 파아란 11월의 시린 하늘을 담고 있던 그림자 못이, 오늘은 하늘을 벗고 송림의 정갱이를 찰싹 찰싹 때리며 운다. 그 매끄럽던 이마에 주름을 가득 드리운 채 이 세상을 주름살 속에 구겨 넣으며 씨이잉~ 소리를 내며 운다. 오늘도 머나 먼 고국, 백제를 그리워하며 우는 것일까. 아니면 2천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먼저 간 아사녀를 만나지 못한 그 애달픈 그리움으로 저리도 몸을 파르르 떨며 울고 있는 것일까. 아니, 먼저 간 아사녀가 지금까지도 보일 듯 말 듯 하면서 열심히 뒤따라오기만 하고 있는 아사달을 부르는 한 맺힌 소리일까. 그림자 못으로 아사녀의 긴 기다림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림자 못으로 아사달의 긴 그리움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윽고 아사녀의 긴 기다림과 아사달의 긴 그리움이 만날 듯 만날 듯하면서도 물살 한 구비 사이로 떨어져 애달픈 손짓을 계속하고 있다. 아, 바람아! 더 세게 불어다오. 씨이잉~ 그래. 때마침 불어온 갈바람에 낙엽들이 물살을 타고 못 기슭으로 우수수 몰려간다. 아, 그리고 마침내 긴 기다림과 긴 그리움이 하나가 된다. 해마다 저들은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저리도 가슴 아픈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넘어선 두 사람의 사랑이 이미 물이 되어 삼라만상을 제 몸 속에 드리우며, 바람만 불면 저리도 촐싹대면서 영원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다보탑과 석가탑... 그리고 아사달과 아사녀...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영지(影池). 영지는 경주 불국사에서 울산으로 가는 길을 따라 약 2km쯤 지난 곳에 사랑의 못을 박고 있다. 그래. 어떤 날은 이 그림자 못인 영지에 와서 아사녀처럼 물 속만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이 간혹 있다. 마치 아사녀처럼 이 그림자 못에 행여라도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이 세상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그 아이들이 있는 한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 있으리라.
우리 어른들은 때가 묻을 만치 다 묻어 이제는 냄새까지 나는 그런 마음 때문에 뻔히 비치는 석가탑을 보고도 당달봉사처럼 보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또한 영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실제로 토함산 불국사 앞 주차장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러므로 석가탑이 이 곳에 비친다는 그 이야기는 전혀 억측이 아니다. 하지만 영지 주변에는 그 애달픈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것에 비해 특별한 유적은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것은 불국사에 워낙 유명한 국보와 보물이 즐비한 까닭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리라. "아니, 이 곳에서 낚시를 해도 돼요?" "허어! 이 젊은이가 실성을 했나? 이곳이 낚시가 얼마나 잘되는 곳인지 알기나 알고 하는 소리가?" "아, 그래요?" "아, 꾼들이 어디 고기만 낚나? 이곳에서는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자네 생각처럼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을 낚는다 아이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낚싯대가 드리운 못가 주변에 떡밥을 던지며 씨익 웃는다. 그리고 그림자못 남쪽을 턱으로 가리킨다. 잔말말고 그쪽으로 가보라는 소리다. 그랬다. 그림자 못 남쪽에는 얼굴이 없는 돌부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이 돌부처가 바로 영지석불좌상(影池石佛座象)이란다. 그때 아까 그 낚시꾼이 어느새 따라붙었는지 이 영지석불좌상은 아사달이 조각했다고 귀띔한다. 하지만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전설 그대로라면 아사달은 다보탑이 완성되자마자 이 곳으로 달려와 숨 돌릴 틈도 없이 영지 속에 빠져 죽은 아사녀를 안고 함께 빠져 죽었다고 했으니까. 그래. 삼국유사에 기록된 영지에 관한 전설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대부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낙엽이 우수수 지는 서러운 11월에 다시 한번 역사의 물살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애달픈 사랑을 살펴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제 각각의 탐욕으로 경상도, 전라도가 마치 다른 민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장난질(?)을 치고 있지만, 당시에는 삼국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교류가 몹시 활발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적국인 신라에 백제의 석공 아사달이 건너와 불국사의 동탑인 다보탑을 완성하고, 서탑인 석가탑을 만들기까지 했으니. 때는 삼국시대. 신라로 떠난 아사달이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자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는 사랑하는 낭군을 만나기 위해 서라벌인 불국사로 찾아온다. 하지만 불국사의 주지는 너무나 아리따운 아사녀를 보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 낭군님께서는 심혈을 기울여 불후의 명탑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인께서 지금 낭군님을 만나시면 그 정성이 부인께로 기울어져서 탑을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부디 탑이 완성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요" 주지의 간곡한 부탁에 아사녀도 어쩌지 못한다. 아사녀는 할 수 없이 석가탑이 완성될 때까지 영지 못가에서 기다린다. 주지의 말씀이 석가탑이 완성되면 그 그림자가 이 못에 비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나저제나 낭군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아사녀는 아사달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만 뜨면 영지만 들여다보았다.
얼마 뒤, 석가탑을 완성한 아사달은 그의 아름다운 아내 아사녀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바람처럼 달려온다. 하지만 이를 어이할꼬. 그토록 그리운 아내는 영지 속에 주검이 되어 누워 있었다. 아사달은 미친 듯이 아사녀를 부르며 영지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사녀! 나가 예술에 미쳐 고마 당신을 잊어부렀구먼. 나가 인자부터는 예술이고 생명이고 다 버리불고 영원히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지라. 오, 내 사랑, 아사녀!" 이토록 애달픈 아사달과 아사녀의 목숨을 건 사랑이 촐싹거리고 있는 곳이 그림자 못이라 불리는 영지다. 그래서 지금도 서로 가슴 조이도록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림자 못을 자주 찾는다. 이곳, 그림자 못에서 서로 손에 손을 맞잡고 정답게 돌면 영원히 헤어지는 일이 없다라는 그 전설을 믿으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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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함 가볼까 해요. 퇴근 길에 잠시 가 볼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