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가 사르트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생은 B(삶)와 D(죽음) 사이 C(선택)의 연속이다.
삶을 살다 보면,
수없는 선택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그럴때마다 올바른 선택에 대한 압박감과 불안, 두려움 등을 느끼게 됩니다.
설상가상,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판명되면, 어마어마한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에 집어삼켜지게 되죠.
인간이 평생토록 이러한 스트레스들에 짓눌린 채 살아갈 수는 없어요.
따라서,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후폭풍을 다스릴 수 있는 삶의 노하우가 반드시 필요해집니다.
Selection이 아니라 Reaction
비혼주의는 결혼으로 완성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야, '아, 나는 결혼이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거죠.
하지만, 이는 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한 판타지적 상상에 불과할 뿐,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까?
결혼주의 역시 비혼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선택한 길에서는 수많은 단점들을 몸소 경험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서는 실체화된 스트레스를 겪을 일이 없기 때문에,
애당초 남의 떡이 커 보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선택에 얽매이게 되면,
올바른 선택과 올바르지 않은 선택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선택에 너무 많은 권능을 부여하지 말라.
그리하면 올바른 선택이라는 환상에 당신의 인생을 저당잡히고 말 것이다.
선택은 그저 갈림길에 불과하다.
어떤 길을 가던지 정상에 도달하는 건 결국 당신의 마음가짐과 두 다리에 달려 있다.
인간의 선택에 대한 편애는 어찌 보면 현실도피의 일환일 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금 너무 힘든 건, 그 때 그 선택을 잘못해서야.
그 선택만 제대로 했다면 내 인생이 훨씬 더 나아졌을 텐데.
어차피 돌아가지도 못할 거,
그 때의 선택을 탓하며 지금 내 힘듦의 원인을 모조리 잘못된 선택 탓으로만 돌리려는 태도.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나를 변호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하고 있지 않은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의도.
어차피 글렀어. 그 때 그 선택을 했었어야 했어.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하지만 결국 정상에 오르게 하는 건 나의 마음가짐과 두 다리의 역할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는 정상에 이르기까지 다소의 어려움에는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언정,
애당초 정상까지 도달할 수 있고 없고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 변수가 아니라는 거죠.
즉,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Selection)보다 중요한 게
그 길을 선택하고 나서의 나의 대응(Reaction)인 것입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이런 상황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인데,
그 책을 읽으면서도 느낀 게 많지만 그 상황을 심리학에서는 어떻고 보고 대처하는지를 보는 것 또한 재밌네요.
프롬은 그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해줄 절대자를 찾는 인간의 습성에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대신해줄 절대자, 독재에 귀의하는 걸 보고 당시 파쇼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하는데
개인에게는 무명자님의 이 글이 다른 의미로 더 유용하게 읽히고 이용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무수히 그릇된 결정을 했다고, 하지만 그 결정 후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의 리액션을 했다고 생각하는 저는
음... 기대보다는 형편없지만 그런 거 치고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아직도 포기 안하고 뭐라도 해보려고 으쌰으쌰(이게 리액션이네요. ㅎㅎ) 하는 걸 보면요.
글을 읽으니 왜 그런지 조금 이해가 되네요. 리액션을, 어떻든 포기하지를 않았네요. 저는.
좋은 글 고맙습니다. :)
와 선택에 지나치게 큰 권능을 부여하지 말라는 얘기가 가슴에 확 와닿네요. 늘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