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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2016. 11. 27. [16-48] 한우리교회
*제목: 우는 자와 함께 울라 *본문: 롬12:15-16
*주제: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축복하심은 선교를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1. 주님은 우리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2. 교회는 고통당해 눈물 흘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케 하는 도구이다.
*생명의 말씀: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들어가는 말) 유머. '순종'이란 영화는 아프리카 우간다와 서남아시아 레바논에서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선교사 아버지의 삶을 이어받아 우간다의 작은 마을 '딩기디'에서 살아가는 딸 김은혜 선교사와 그녀의 남편 한성국 선교사. 또 레바논 난민촌에서 IS 위협 등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는 난민들과 동고동락하는 김영화 선교사의 이야기가 각각 전개됩니다.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지역, 촬영 스텝들은 지근거리에서 선교사들을 따라다니며 치열하게 한 장면, 한 장면을 담아낸 영화입니다. '순종'은 한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인생 역경과 사랑, 헌신 등 종교를 넘어선 인류 보편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들이 척박한 땅을 선택하고 그 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 그리고 이들에게 '순종'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는 그 대답을 성경구절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에서 찾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 시사회때 보았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애환이 묻어 있어서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는자와 함께 울라”는 이 말씀은 로마서 12장 15절에 나옵니다. 로마서는 크게 2분하여, 1~11장, 12~16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교리편(Indicative)이고 후자는 실천편(Imperative), 전자는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느냐”에 대한 직설법(直說法), 후자는 “그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느냐”에 대한 명령법(命令法)으로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5절은 이 중 실천편에 속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서론(12:1~2), 교회 생활에서의 사회적 윤리(12:3~8)와 국가에 대한 의무(13:11~14) 사이에 위치하여, 인간관계에서의 사랑의 대원리(12:9~21)를 논하는 맥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그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일이며(12:1),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며(12:9~10),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는 일이며(12:13), 서로 마음을 같이하는 일입니다(12:16). 바울은 이런 맥락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합니다.
1. 주님은 우리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34-40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 예수님의 눈물이 떨어지는 곳에 내 눈물이 떨어지게 하라.
- 그리스도인으로 먼저 해야 할 일은 슬픔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공감능력이 더욱 뛰어나야겠습니다. 주변에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할수 있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보다는 축하해주고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사촌이 땅을 사면 함께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 경쟁자가 잘되면 그가 기뻐하는 것처럼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까? 만일 시기와 질투심을 갖는다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도 회개하고, 정말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누군가 슬퍼하고 울 때에, 정말 그들의 슬픔을 함께 공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외면하고, 내 슬픔이 아니니까 하고 지나쳐버리나요? 우리는 슬퍼하고 우는 이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해간다는 것은, 이러한 공감능력이 점점 자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왜 성경에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고 합니까? 그 까닭은 이러한 공감능력이 이웃을 사랑하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능력,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사실은 모든 사랑의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사람들을 먹이고 고치고 가르치신 것은, 이와 같은 공감능력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마9:35, 36절에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 14:14절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눅 7:13절에 "주께서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의 기적을 낳은 것은, 예수님이 함께 슬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11:33-35절입니다. "예수께서 그가, 마리아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으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이 사람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사람들을 가르치신 것은, 이와 같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키우고 돕는 것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무슨 정책이나, 방법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봅니다. 뛰어난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사람들의 슬픔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방법도 나오고, 정책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점에서 이웃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을 달리 말하면, "너희는이 세상에서 선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그 마음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있을 때에, 우리는 세상을 향한 비젼도 갖게 되고, 공부하는 이유도 알게 되고, 내가 할 일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가을 대심방을 통해 성도들의 마음을 더욱 공감할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즐거움도 힘든 것도 함께 공감하며 기도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조금이나마 주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습니까?
1) 예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내가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죄의 문제와 사망의 문제를 공감하고 아파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는 영원히 구원 얻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분입니다. 내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며, 내가 고통할 때 함께 고통하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서 4:15,16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2) 고통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픔을 공감한다는 것은 아픔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때, 너무 쉽게 나에게는 그런 고통이 안 올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당하는 고통은 우리 모두에게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고통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위로의 행동도 나옵니다. 영어단어의 언더스탠드는 "이해하다" 라는 말의 뜻을 잘 나타냅니다. ‘아래에 서 보다’ 라는 뜻은, 결국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3) 공감의 능력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배울 수 있습니다. 많은 아픈 소식들을 들을 때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는 위로의 영을 보내시며, 우리에게는 동정의 마음이 더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 이 생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비젼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비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내 민족과 세계를 생각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지혜를 받아서,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는 일꾼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교회는 고통당해 눈물 흘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케 하는 도구이다. 누가복음 7장 3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고통가운데 있는 자들을 외면하는 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고통에 동참하는 교회가 고통 하는 이들의 “하나님 어디계십니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가 고통을 소멸할 수는 없으나 고통에 동참하는 교회가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없애도록 부름받은 초능력자들이 아닙니다. 고통에 동참하며 성육신의 삶을 살도록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성도일 뿐입니다.
고통의 의미와 고통의 소멸과 고통의 유익은 십자가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신 분이십니다. 절망과 좌절의 사람들을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있는 희망의 지팡이가 되십시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 교회가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동참하시길 원하십니다. 1)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모두 선교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가정도, 교회도 2) 하나님은 선교를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보내는 선교사가 되자. -다음 세대를 위한 선교입니다. 3)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복을 받습니다.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좋은 기회요 축복의 기회입니다. -물질도 채워주심.
나가는 말) -교회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장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우리 교회는 18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곳에 세우셨습니다. 어려움도 시련도 많았지만 하나님은 한결같이 우리교회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교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게 자라가길 원하십니다. 주파송은 그런 측면에서 우리교회가 한층 성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요 성도들이 축복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축복의 기회를 우리 성도들이 붙잡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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