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에서 돈이라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는 점은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이 명백한 사실입니다. 사실 인간이 태어나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수 있는 능력은 매우 기본적인 자질일 것입니다.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책임진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 먹고 살 돈도 벌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망신이며 태만일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현대인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돈을 말합니다. 그보다 더 벌어서 남도 돕고 사회사업도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지만, 돈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삶 전체를 투자하거나, 향락과 쾌락에 빠진다면 오히려 가난한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교육비라든가 상대적인 빈곤과 박탈감으로 인해 돈이 의외로 더 많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적어도 기본적인 생계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러한 기본적인 경제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경조비, 휴가비, 외식비, 접대비, 문화 생활비, 종교생활 등이 그러한 일들이 될 것입니다. 세금이나 공과금은 기본 생활비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여기서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한다는 것에 돈문제가 항상 개입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미도 교회들은 많은 돈을 교인들에게 간접적,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교리나 가르침때문이 아니라, 바로 현실적으로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의 문제라는 점에 대해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정말 바르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돈을 드리거나 헌금을 바친다는 말은 절대로 바람직하고 옳은 말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물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서 물질을 많이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주의라는 특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며, 경제적으로 정립이 되지 못한 이스라엘의 사회적 환경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스라엘은 신정(하나님의 직접적인 다스리심과 그분의 직접적인 공급하심)하에 있었던 때문으로 그들에게 부족함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고, 그들이 그에 따라 과하게 드린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물질-돈이나 재물, 짐승을 하나님께서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직접 취하시거나 받으신 적은 별로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성직자들만이 이 부분에서 예외적인 것은 교회라는 새로운 직장이 되어버린 때문입니다. 결국 구약에서 십일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한 사역을 맡은 직분자(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계를 위한 필요와 성전유지를 위한 필요 때문에 생긴 것이지 하나님께서 가지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안에서 헌금을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께서 복이나 축복을 주신다는 식으로 그 핑계를 하는 것은 커다란 죄를 짓는 모습이 됩니다. 재물을 드리는 것을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엮는 것은 그 분의 거룩함과 성스러움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돈이 필요하면 그것을 솔직히 교인들과 나누고 돈을 내자고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게다가 십일조를 가지고 교회의 재정을 위해 강조하고 복이라는 기계적인 역동성을 투영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이며, 하나님을 망령되이 하는 일이 됩니다. 헌금이나 재물, 심지어 구약에서도 이들은 복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무일 뿐입니다. 그러니 교회다니는 일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돈이 없으면 돈을 낼 수 없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의 삶 어디에도 돈을 낼 형편이 아닌 사람에게 의무라 하여 돈을 내라고 하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빈한한 자들은 국가도 도움을 베풉니다. 그런데 교회는 아무튼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내라고 합니다. 그게 어디 더 이상 의무가 될 수 있을까요? 만일 의무라 한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돈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의 것이라는 청지기적 사고방식에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십일조에 대한 강조는 세 가지의 큰 오류를 낳게 됩니다. 첫째는, 십일조만이 하나님의 것이며 나머지 9/10은 자신의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낳습니다. 그 결과로 실제로 돈이 있는 교인들은 십일조만을 내고도 자신의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을 하며 가난한 자들을 은근히 멸시하며 자신의 부를 자랑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십일조를 잘 한 자신에게 복을 주셨다며 은근히 자신의 의를 내세웁니다. 두 번째는 십일조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나님을 구약의 하나님으로서 율법가운데 만나려는 미신이나 이교도 신앙에 빠집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과 구속은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인간을 구속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도, 주일 성수(안식일 준수), 인간을 얽어매는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십일조를 제대로 낼 수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죄책감을 가져다 줍니다. 이것이 또다른 엄청난 죄를 교회가 짓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남을 돕는 기부나 자선은 자발적인 것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강요해서는 안되며, 누가 얼마를 내든 공개되어서도 안됩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교회의 헌금에 대한 생각입니다. 헌금은 연보이며 기부이고 donation입니다. 냈다고 자랑할 것도 없으며, 내지 않았다고 욕먹을 것도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더 낼 수 있는 것이지 없다고 억지고 빌려서 낼 성격이 아닙니다. 교회에 내는 헌금은 자발적이고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부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교회를 사랑할 수 있고 그런 마음이라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낼 수 있는 성격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이어야 하지 강요하거나 의무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르친 연보의 성격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교회는 이 세상에 속한 한 단체로서 비영리기관이므로 필요한 재정을 회원인 교인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충당하고 있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안에 속한 교인들이 헌신해야 복음을 위한 사업, 목회자의 생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무리한 헌금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 이러한 기본적인 교회의 삶때문이 아닙니다. 더 큰 교회를 짓기 위한 대지구입이나, 성전 건축, 기도원 매입 등 너무나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교회들이 가진 돈으로 가난한 교회를 돕고 가난한 학생들과 사회 구제를 위한 일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부하기를 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교회는 기본적인 생계만을 위해 돈을 모으고 나머지는 구제나 장학 사업이나 선교에 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교인들이 헌금을 내려면 그만큼 (특히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본적인 생계비를 쪼개서 교회에 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는 성직자들이 늘어나길 바랍니다. 그런 돈으로 배부르고 헛된 곳에 함부로 돈을 사용한 자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교회당 건축은 최대한 자제해야 합니다. 교회돈이기 때문에 아끼지 않고 쓰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공적, 사적 개념이 매우 흐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배안에서 헌금기도를 하고, 축복을 하고 헌금 낸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정말 더는 보기 어려운 망령된 일들입니다.
첫댓글 그래서 슐라이마허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교회의 재산을 팔으라고 했는데... 삯꾼 먹사들 때문에... 무ㅓ? 성경구절 300개만 외우면 부흥사된다고 헛소리하는 먹사도 있고, 석사 간판 때문에 성도의 귀한 땀과 피를 쪽쪽 빨아 쳐 먹으며 인자?한 모습으로 탈을 쓰고... .. 그 먹사를 끝까지 쫓아가 예수의 이름으로..... 울 애들 엄마는 '심판은 주께 있다며... 기도만 하라고 하는데... 그래도..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