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172화
천하에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 이니라
천하지치자사류야
(天下之癡者士類也)
어떤 한 선비가
금강(錦江)의 나룻배 안에서
전일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던 공산(公山, 공주)의
기생과 이별하는 데,
.
기생이 통곡을 하며 물에
빠져 죽을 것처럼 하자
선비도 눈물을 흘리며
기생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달래었다.
"얘야, 얘야. 나 때문에
목숨을 버리지는 말아라."
.
그리고는 행낭(行囊)에서
수백 냥 값어치가
나가는 은 주발을 꺼내
기생에게 정표로 주었다.
.
강을 건너 선비와 작별하고
되돌아오는 나룻배
안에서 기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장가(長歌)를 부르며
희희낙락하였다.
이를 본 기생의 벗이
책망하였다.
.
"이별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태연히
노래를 부르다니
너의 정이라는 것은
믿을 수가 없구나."
..
기생은 웃으면서 은그릇을
꺼내어 두드리며 말했다.
"통곡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고,
노래를 부른 것 또한
이것 때문이었단다."
.
이 말을 들은 뱃사공이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
"천하에 가장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지.
한 번 보고 말아버릴
과객(나그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창기(娼妓)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
이를 들은 어떤 나그네가
시를 한 수 지어
조롱하였다.
.
"물에 빠져죽겠다는
창기의 꾀 믿지 마소
(莫信娼妓墮水謀)
은 주발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웃으리니
(箇中可笑爲銀器)
.
지금도 뱃사공들은
이야기하네
(至今留得 工話)
.
천하에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라고
(天下癡者是士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