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채가 안식주여서, 공현이 제게 편지를 보내왔네요ㅎ
은채가 후원인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더라구요.
겸사겸사 제가 타이핑해서 올립니다.
후원인 메일링 리스트 담당은 따이루일려나요.
제가 따이루와 통화 하도록 할게요.
(따이루! 편지 사진도 같이 메일로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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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의 감옥에서 온 편지>
안녕하세요? 새해이기도 하고, 서울 남부 교도소로 이사를 오기도 했고, 1년 6월의 총 형기 중 반 정도를 지나고 있기도 하여, 제 병역거부와 감옥 생활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후원을 해주시는 여러 분들께 편지를 써봅니다.
제가 4월 30일에 서울 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시작하여, 6월 12일에 여주 교도소로 보내졌고, 12월 26일엔 서울 남부 교도소로 왔습니다. 형 종료일은 2013년 10월 29일이고, 가석방을 생각하면 2013년 6월 말 도는 7월 말에 나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즘은 보통 4개월 정도 가석방을 준다고 하는데, 저는 4월 30일에 들어와서 6월 28일(29, 30일은 주말)은 불가능할 거란 얘기도 있습니다. 여하간 이제 만기로 계산하든 가석방 가능성이 있는 날로 계산하든, 슬슬 감옥 생활도 후반기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앞으로 길면 9개월, 짧으면 5~6개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 출소 이후에도 계속 인연이 닿겠지만요. 제겐 출소 후엔 또 병역거부자로서 살아가야 할 시간들이 있겠지요. 감옥 생활이 끝난다고 제 병역거부가 끝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출소 후에는, 예를 들어 인권교육 강사 같은 일을 맡을 때 병역거부자라고 쓰면 어떤 반응이 올까,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때론 두려움을 갖고 때론 설렘을 느끼고.
여주 교도소에서 제 트위터 등을 갖고 서신검열 지정 같은 짓을 했었던 건, 아마 들어서 아실 겁니다. 9월부터 시작된 서신검열 문제로 인한 다툼은 12월에 여주 교도소가 서신 검열을 해제하면서 마무리 했습니다. 깔끔한 승리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렇고 그렇게 감옥 생활이 흘러가고 있지요.
서울 남부교도소에는 ‘식품 조리’ 직업 훈련생으로 선정이 돼서 오게 됐습니다. 6개월간 배워서 한식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따는 것인데, 식품학, 영양학, 식품 위생 등을 필기 시험을 위해 배우고, 실기로는 비빔밥, 칼국수, 두부 조림, 버섯전 등등 49가지 한식 요리를 배웁니다. 설령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칼질 등을 비롯해 요리 실력은 많이 늘 것 같아요. 다만 고기를 쓰는 요리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고기를 꽤 먹게 되는 건 부담스럽네요, 역시. 몇 년 간 가축 고기를 최대한 안 먹는 준 채식을 해왔는데 말이죠. 나간 뒤에는 여기서 배운 요리들을 채식으로 바꿔서 만드는 법을 궁리해봐야겠습니다.
항상 많은 분들의 관심과 후원 덕분에 감옥 생활도 덜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좀 과분하게도 인복이 많은 것 아닌가, 걱정도 들 정도입니다. 이번에 국제 앰네스티에서 제가 Individual at Risk (위험에 처한 개인), 개인 사례로 등록이 됐다고 하네요. 여러모로, 제겐 과분한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청소년 운동에 대해선 항상 생각도 많고 괴로운 것도 많고 기대도 많고 그렇습니다만, 감옥에 갇힌 병역거부자로선 아주 아쉬울 것 없이 호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하긴, 감옥에 갇혔단 것부터 워낙 큰 손해를 입고 들어가는 처지이긴 하지만요.) 여러분들께 감사와 함께 새해 인사 전합니다. 안녕히 계시고, 올해 여름이든 가을이든 곧 다시 뵈어요.
2013. 1. 17. 공현
[공현이 감옥에서 쓴 기고글]
어느 활동가 겸 수인의 국가인권위원회 실망기 (2012.8.4):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2171
감옥에서 트윗질 하기 어렵다 (2012.11.7) :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2233
20130117공현의 감옥에서 온 편지.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