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같은 핏줄을 나눈 가족끼리도 동고동락하기가 힘들진데,
다른 환경, 다른 성격,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각기 수십년을 살아온 두 남녀가 합을 맞추며 살아가기란
당연히 어려운 미션에 해당합니다.
결국, "순조로운"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애당초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상대,
즉, 환경이나 성격, 세계관 등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의 결합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인생의 아이러니 중 하나는,
나에게 매력적인 사람과 나에게 잘맞는 사람이 대부분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처럼 어렵다는 거죠.
매력 vs 궁합
남녀관계에서는 애당초 이 둘 간에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야 그 사람과의 궁합이 궁금해지는 것이지,
아무리 서로 잘맞는다 해도 상대방이 이성으로 보이지 않으면 결혼의 ㄱ까지도 못가는 게 곧 현실이니까요.
그렇게 서로 매력을 느낀 두 남녀가 결혼에 골인하고 나서 서서히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게 되면,
그때부터 바야흐로 양자 간 조화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문제 해결이라는 판타지
제가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살펴본 바로는,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아끼며 신뢰하는 부부는 소수입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부부들은 온갖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마치 사계절이나 경기 순환처럼 일종의 사이클을 타게 돼요.
좋다가 나쁘다가 바닥을 뚫고 최악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와서 피크를 치고 다시 내려가고 올라가고의 반복.
바람직한 결혼 생활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할 땐,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희생과 노력, 배려 등을 통해 우상향만 하는 모습을 꿈꿀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부부관계의 전 기간동안 계속해서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 같은 것이죠.
행복과 불행, 무료한 순간들이 반복적으로 순환하며 지속되는 느낌.
종합적으로 평점을 매긴다면 그냥 뭐 평균 정도 되는 것 같은 내 결혼 생활.
대부분의 기혼자들이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는 순간은,
이 문제점들이 영원히 개선되지 않고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때입니다.
평생을 내가 이러고 살아야될 것만 같은 두려움, 억울함, 불안감, 분노.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 결혼 생활과 인생은 영원히 복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이때 누군가는 이혼을 결심하고,
다른 누군가는 빈 껍데기만 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또다른 누군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부부 상담 등을 시도해 보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 어떤 대응을 선택하든지간에,
문제를 인식하고 이걸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만 너무 과몰입하게 되면,
내가 인식한 결혼 생활의 문제점이 해결되느냐 아니냐가 내 인생의 가장 큰 화두가 됩니다.
마치 주객전도 같다랄까?
내 인생, 내 결혼 생활 자체보다 특정 문제의 해결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상황.
내 인생, 내 결혼 생활이 이 문제를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에 좌지우지되는 상황.
이처럼 주객이 전도된 상태에서는 정상화를 위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에 쏠린 비중은 줄이고, 내 인생과 결혼 생활 자체에 집중하려는 태도.
문제 있어, 그래도 이 또한 결혼 생활의 일부일 뿐이야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있어? 이 정도의 문제는 안고 갈 수 있는 정신력, 체력을 기르자.
문제는 인생의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문제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요.
따라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버텨낼 수 있을만큼
평상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고 있느냐가 인생 버티기의 관건이 됩니다.
똑같습니다.
정신적인 에너지가 충분한 부부들은 아무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지라도,
그 문제가 몰고 오는 폭풍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정신적 여유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이클의 최저점을 지나고 있더라도 묵묵히 버티며 우상향의 순간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극소수에요.
오히려 다수는 문제를 버텨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부부 관계를 우상향으로 지속하는 게 판타지라면,
문제에도 불구하고 부부 관계의 사이클을 어찌저찌 잘 넘기는 것이야말로 현실 속 부부의 세계에 가깝습니다.
결국 관건은 두 남녀가 평소에 에너지 관리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 오고 있었는가가 좌우하게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삶의 태도는
문제를 버텨낼 수 있을만큼의 충분한 에너지가 전제되었을 때에만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죠.
결혼 생활로 인해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께 제가 늘 말씀드리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차피 지나가요.
지금 이 최악의 순간이 영원할 것 같겠지만,
이 문제들이 커지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문제는 항상 있어 왔지만, 예전에는 내 에너지가 충분했기 때문에 관리할 수 있었던 거고,
지금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에너지가 너무 없어서 이 모든 걸 관리하기 벅찰 뿐인 거예요.
그러니, 일단은 나부터 챙기면서 내 몸과 마음을 충만히 살찌울 수 있어야 해요.
다시 에너지가 붙게 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버텨내고 지나갈 수 있거든요.
그렇게 살다 보면, 머잖아 관계도 다시 좋아지고,
지금 이 순간들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순간들이 반드시 찾아올 거예요.
문제에 여러분의 주도권을 내주지 마세요.
문제는 내 에너지가 커지면 자연스레 작아지는 부차적인 존재일 뿐이니까요.
모든 기혼자 이웃 여러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5년에 결혼후 그동안 두 사내아이들을 키우며 잘 살아오고 있었는데,
작년 5월 부터 주말부부 생활이 되다보니 아내 혼자 고등학생 녀석들 커버가 쉽지 않은 것 같네요...
거기에 한달전 아버님 암으로 보내드리고 나서 부부 모두 정신과 몸이 힘들어진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좋았던 부부 사이도 약간은 소원해진듯도 하고...
사실 저는 아이들 보다는 아내를 좀더 생각하고 아끼려는 타입이라 제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바로 하려 하였지만 고등학생 과정은 끝내려는 아내 생각을 이길수는 없더군요...
어떻게 해야 서로 에너지를 키우며 극복할수 있을지 고민인 요즘입니다....ㅠㅠ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버텨낼 수 있을만큼 평상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고 있느냐가 인생 버티기의 관건이 됩니다." 부분에서 한참을 멈춰있었네요. 부부 문제 뿐 아니라, 친구, 직장, 가족 등등 인생 전체에 해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