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이
척주(陟州:지금 삼척)부사에 있을 때(1661~1662) 쓴 기행문에 대관령과 대화에 대한 기록이 관심을 끈다.
대관령(大關嶺)을 넘으면 횡계역(橫溪驛)인데 날씨가 매우 추워서 오곡은 자라지 못하고 메밀만 심을 수 있다.
횡계역에서 30리를 내려가면 진부역(珍富驛)인데 그곳에서 월정(月井)까지 올라가면 15리이고,
그 아래는 청심대(淸心臺)이니 또 15리이다. 청심대는 청계(淸溪) 암벽 위에 있다.
서쪽으로 30리를 가면 대화역(大和驛)이다.
대화역 북쪽에서 석굴을 구경하였다.
큰 횃불을 앞뒤에서 연이어 들고 그 속으로 들어갔는데 험준한 구멍이 사방으로 통하여 막힌 데가 없었다.
동북쪽으로 수십 보를 가면 굴이 점점 높아져서 손으로 잡고 몸을 붙이고서야 오를 수 있었다.
깊이 들어가도 끝이 없고 시냇물이 그곳에서 흘러나와 돌 아래로 세차게 흘러가는데 물소리가 요란하였다.
그곳의 돌은 기괴한 모양이 많아 어떤 것은 꿈틀대는 이무기 같은 것이 있어 발로 낚아채는 것 같기도 하고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어떤 것은 무쇠가 녹아 흐르다 엉겨 붙어 괴상한 모양이 된 것 같기도 하는 등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었다.
유자후(柳子厚)가 영주(永州)에서 서산(西山)의 고무담(鈷鉧潭)을 유람하고 석굴에 대해 기록하면서
유석(流石)의 기괴한 형상을 말하였는데 이런 유였던 것일까.
생산되는 종유석(鍾乳石)은 품질이 좋아서 발로 밟으면 돌마다 음악소리가 난다. 나와서 쓰다.
출처: 허목의 시문집 기언 제24권 중편 기행
관광지원으로서 가능한 것인지 세밀한 탐색이 요구된다.
첫댓글 기행문을 읽으며 한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특히, 종유석은 품질이 좋아 밟으면 음악소리가 난다는 표현은 기막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