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머무르는 법이 없습니다.
쉬엄쉬엄 갈만도 한데, 하루 돌아서보면 저만치 성큼 달아나 있습니다. 아쉬워하는 이 세상 모든것들은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아니하나 봅니다. 어제, 오늘 그리고 이번 주 내릴 비들은 이제 이가을에 마지막을
고하는것 같습니다. 덜컥거리며 지나가는 가을을 뒤로하고, 훌쩍 먼데로 떠나는것도 괜찮은 생각입니다.
가만히 지켜서서 아쉬워하느니 여기와는 다른 이역만리로 계절을 거스르며 떠나는 겁니다.
나뭇잎들을 다 떨어낸 나무들이 추위에 떨고, 초록으로 수놓았던 들판이 소리없이 저물어가는 지금, 갈대는
모여서서 찬바람 부는 밤에 울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자기를 흔드는 것이 자신의 조용한 울음임을 알아
차립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처마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서 작은'
바람이라도 불면 툭하고 떨어질것 처럼 아스라이 매달려 있습니다. 눈으로 누군가 바라보아야만 인식되는
풍경은 파란 하늘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가느다란 바람이 불어 지나가면, 풍경은 때를 놓치지 않고
청아한 소리를 자아냅니다. 그윽한 풍경소리는 고요한 산야를 깨우며 울려 퍼집니다. 바람이 불러주는줄
알았던 노래를 풍경은 깨닫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끼리 부딪쳐 울리는 소리였음을,
갈대나 풍경처럼, 인간사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고, 내 내면의 문제임을 깨달으란 말입니다.
이웃한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란 녹녹치 않습니다. 나도 나자신의 내면과 싸워야 하고, 그래서 스스로
울기도 하고, 눈을 들어 이웃한 존재들을 보면 모두 내마음 같지않아 갈등으로 울기도 합니다. 하지만, 풍경이
노래를 부르듯, 갈대도 노래를 부를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내면과의 싸움에서 울것이 아니라, 삶을
노래하고, 내 이웃과의 갈등에서 벗어나 조화를 이루어 부대낌이 아닌 어루만짐이 되어 삶의 노래, 조화의 노래를
합창해야 합니다. 외부에서 받은 자극들이 내면화되어 나에게 외치는 소리들, 그 소리들 속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해야 할지니!
어느날 갑자기 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이 떠납니다. 영영 세상을 떠난거지요. 인생의 유한함과 순서없는
떠남에 대해 생각하며 나를 돌아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