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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풍당(澤風堂) 및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택당 묘는 양평에서도 가장 외진 곳인 양동면에 있어서 예전에는 한 번 찾아가기도 힘겨운 곳이었다. 그런데 근자에 광주원주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근처에 동양평IC가 만들어져 접근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얼마전 원주 답사를 위해 가다가 동선상에 있어서 오랜만에 택당 이식선생 묘를 다시 찾았다. 이곳은 택당선생이 조부 묘를 옮기면서 이장 내역을 택당집에 상세히 올려놓아서 당시의 명풍들이 직간접으로 참여한 곳이라 풍수공부 하는 사람들은 필수 코스가 되다시피 하였다. 이곳에서도 조부 묘가 명풍들이 잡은 곳인데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용,혈만을 논할 때는 경도가 심하고 양용이라 하지만 용이 거의 없는 이곳을 사격과 수구만 보고 좋은 터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당대의 국풍들이 이구동성으로 말 한 곳이니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겠지... 택당 묘역은 겸혈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 겸혈이 높은 곳에 있다보면 필시 바람을 두려워 해야 하는데 이곳은 바람을 막을 방도가 별로 안보인다. 그러나 혈장에 사성이 없는데도 좌우 선익이 손바닥 양옆처럼 도톰하게 솟아있는 것이 아주 좋아 보인다. 나는 다른 것보다 택당이 조부 묘를 이장하면서 풍수에 대해 많이 기록해 둔 글들이 맘에 들어 이곳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택당 묘를 인터넷에서 쳐보면 다들 한가닥 하시는 분들인지 모두 제각각으로 큰 목소리를 내는데 참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조선시대처럼 잡과를 만들어서 국풍을 만들던지 해야 잠잠해지려나... |
택풍당(澤風堂) 및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314-10 택풍당 및 택당 이식 선생 묘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에 있다. 1986년 5월 30일 양평군의 향토유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중기의 문신이었던 이식(李植, 1584~1647) 선생이 제자와 자손들의 교육을 지도하고 학문연구를 위해 광해군 11년(1619)에 건립한 것을 근년에 종중에서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층 누각형식의 특이한 건물로써 팔작지붕에 겹쳐마 형식의 지붕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각 변 4.6m의 건물로, 2층 누에는 외각 1칸의 툇마루를 달았다. 택당(澤堂) 이식(李植)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택구거사(澤癯居士). 좌의정 이행(李荇)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좌찬성에 증직된 이안성(李安性)이고 어머니는 무송 윤씨(茂松尹氏)로 공조참판 윤옥(尹玉)의 딸이다. 택당 선생의 조부 이섭의 자는 사제(司濟)이며, 1533년 원상(元祥)의 장남으로 출생하였고, 1555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같은해 11월 아버지 판서공 원상(元祥)이 별세한 후 외가인 전남 고부(古阜)로 이주하여 살다가, 1570년 1월 별세하니 향년 38세였다. 택당 선생의 부친 이안성의 자는 양백(養伯)이고, 1554년 섭(涉)의 장남으로 출생하였고, 17세인 1570년에 부친상을 당하여 3년상을 마치고 전남 고부에서 서울집으로 이주한 후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다가, 1599년 46세에 접대도감 낭관이 되었고, 1600년 군자감 주부를 거쳐 1602년 상의원 별좌에 임명되었다가 12월 26일 안기도 찰방으로 전임한 후 조봉대부에 올랐으나 1605년 모친의 병환으로 사직하였다. 1613년 8월향년 60으로 여주 대신면 보통리에서 별세하였다 이식은 1610년(광해군 2)별시문과에 급제했다. 1613년 세자에게 경사(經史)와 도의(道義)를 가르친 정7품에 해당하는 설서(設書)를 거쳐 1616년북평사(北評事)가 되었다. 이듬해에 선전관을 지냈다. 1618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정계에서 은퇴하여 경기도 지평(砥平:지금의 양평군 양동면)으로 낙향했다. 그 후에 남한강변에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했다. 호를 택당이라 한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1621년 관직에 나오라는 명을 계속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을 어겼다는 죄로 구속되기도 했다. 1623년인조반정이 일어나 교분이 있었던 친구들이 조정의 주요직에 진출하게 되자 발탁되어 이조좌랑에 등용됐다. 이듬해에 부수찬·응교·사간·집의 등을 역임했다. 1625년(인조 3)예조참의·동부승지·우참찬 등을 역임했고 다음해에 대사간·대사성(大司成)·좌부승지 등을 지냈고 1632년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 역임했다. 임금의 종실을 사사로이 기리고 관직을 이유 없이 높이는 일이 법도에 어긋남을 논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 간성현감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633년에 부제학을 거쳐 1638년 대제학과 예조참판·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이식은 1642년에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청나라를 배척할 것을 주장한다고 하여 중국의 심양(瀋陽)으로 잡혀갔다. 돌아올 때에 다시 의주(義州)에서 청나라 관리에게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돌아왔다. 1643년대사헌과 형조·이조·예조의 판서 등 조정의 주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646년 별시관(別試官)으로 과거 시험의 문제를 출제하였는데 그가 출제한 문제에 역모의 뜻이 있다고 하여 관직이 삭탈되기도 했다. 이식은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로 꼽혔으며 그의 문하에서 많은 문인과 학자가 배출됐다. 문집으로는 『택당집』이 전하는데 한시의 모든 갈래에 두루 능숙했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체로 정경의 묘사가 뛰어나고 감상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풍광을 읊은 시가 많다. 고체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오언율시에 특색을 발휘했다. 『초학자훈증집(初學字訓增輯)』·『두시비해(杜詩批解)』 등을 저술했으며 『수성지(水城志)』·『야사초본(野史初本)』 등을 편찬했다. 김택영(金澤榮)에 의하여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의 문장은 우리나라의 정통적인 고문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에는 「사간원차자(司諫院箚子)」 등의 6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여주의 기천서원(沂川書院)에 제향됐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1686년영의정에 추증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향토유적 제16호 |
문화재명칭 | 택풍당(澤風堂) 및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314-10 |
관리자(연락처) | 덕수이씨 |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입구에 세워진 택풍당(澤風堂) 안내석...
▼ 택풍당(澤風堂) 입구에 세워진 비석...
▼ 택풍당(澤風堂) 및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안내판
▼ 택풍당(澤風堂)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입구에 세워진 덕수이씨세장지비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옴푹 들어간 곳에 점혈하고 사성을 쌓지 않았어도 주위가 두툼하다.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는 흔히 겸혈(鉗穴)이라고 한다.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전면에서 바라본 모습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비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비 후면...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역에 있는 묘들은 혼유석에 묘지명을 세겨 놓았다.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는 아주 단촐하다. 그 흔한 문인석이 없다.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청룡쪽 석물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측경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 묘 후경... 겸혈이 되는 조건은 혈앞에 단이 있어야 하고 개각이 되더라도 바람을 막아야 한다.
▼ 이식(李植) 선생 묘는 바람이 무섭다.
▼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전경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비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망주석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측경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용호가 긴밀하게 감싸주어 포근하다.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그러나 입수룡이 너무 가파르다. 용이 멈추는지 의문이다.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당대의 명풍들이 참여한 묘라하니 말문이 막히지만...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후경.... 예전 아래쪽 물길이 보이면서 관쇄되는 수구가 확연했는데 지금은 안보인다.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후경... 그 사이 나무들이 자라서 수구와 조안산이 잘 안보인다.
▼ 이식(李植) 선생의 조부인 이섭 묘... 사격이나 물을 논하자면 완벽에 가깝지만 용혈을 먼저 봐야 한다.
▼ 이식(李植) 선생의 부친인 이안성 묘
▼ 이식(李植) 선생의 부친인 이안성 묘비
▼ 이식(李植) 선생의 부친인 이안성 묘 후경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