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지식이 필요하다.
현재 나와 있는 신앙의 다양한 자료들은 검증된 객관적 지식도 있지만 단순히 저
자의 주장이나 설교자의 해석인 경우가 많다.
검증된 자료들은 정설로 인정 받지만 실험이나 입증된 자료에 의해 검증되지 않
은 주장이나 해석들은 추측일 뿐이다.
객관적 지식이 아닌 이러한 추측을 바탕으로 새로운 추측을 시도했을 때 내리게 되는
결론은 사실로 구현될 가능성이 더욱 적은 희박한 확률의 추측일 수 밖에 없다. 이
런 과정이 몇번 반복되어 나온 최종의 결론은 사실로 구현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추측이다. 믿음도 추측의 일종이다. 믿음의 바탕이 되는 기초적인 사실이 있
다 하더라도 그 믿음은 추측이다 만일 그 믿음이 사실로 구현될 때 그 믿음은 더 이
상 믿음이 아니라 사실로 그 위치를 전환하게 된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추
측이 거듭하여 연관성을 가지는 경우를 워치타워 중추 교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1914년 교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 교리와 관련된 추측을 살펴 보면,
1 느부갓네살의 일곱 때를 이방인의 때의 기간으로 본다(추측)
2 하루를 1년으로 본다(추측)
3 예루살렘 멸망이 기원전 607년이다(추측)
4 70년 예루살렘 황폐기간이 만으로 정확한 70년이다(추측)
5 이방인의 때의 기간이 차면 하늘 왕국이 설립된다(추측)
6 하늘 왕국이 설립되면 그리스도의 임재와 동일하다.(추측)
7 그리스도께서 임재했으므로 한 세대내에 아마겟돈이 온다.(추측)
이 외에도 많은 추측이 결부되어 있다. 위 열거된 추측만도 7가지인데 모두가 참이 되어야만
워치타워가 주장하는 마지막 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추측*추측*추측*추측*추측*. . .<= 원숭이가 인간으로 바뀔 확률보다 작거나 같다.
이러한 추측성 확률에 바탕을 둔 믿음이 참 믿음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판단될 것이다.
적어도 워치타워가 주장하는 종류의 마지막 때는 아닐 것이다.
주관적 믿음이 요구된다
어떤 성서 주석서의 해설이나 설교자의 설교는 자신이 인식하고 믿는 신조들을
전달하는 것이다. 백지 상태의 마음이라면 그러한 해설과 설교들이 일단은 우리의
마음의 공백을 채우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분명히 그 사람들의 신조를 빌
려온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사용한 후 어느 때인가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즉 완전한 나의 소유가 아니다. 남의 것을 일단은 모방하여 수용하되 나의 객
관적 지식을 바탕으로 비판하고 정리하며 확장시켜 완전히 새로운 나의 신조들을
만들므로서 그 빌려 온 것들을 되돌려 주고 나만의 독특한 신조만이 남게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서에서 요구되는 믿음이다. 믿음의 바탕이 되는 객관적인 지식은 모든 사람
과 공유될 수 있으나 그러한 지식으로부터 발전된 믿음(믿는 것들=신조)은 추측이므로
그 추측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에 의해 비판되어 정리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분야에 대한 다양하고도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될 수 있는데 지지하는 쪽
의 주장과 증거 자료뿐만이 아니라 무신론적 견해나 고등 비평적인 의견 나아가서
안티적인 자료들도 함께 연구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신들의 주장만을 검토하
고 반대 자료를 검토하지 않겠다는 자세는 결코 바른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주장이 틀린 것이 드러나게 되거나 답변할 수 없음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믿음이 필요한 이유
물론 숭배로서의 믿음이 전문적이거나 많은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
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숭배로서의 믿음이란 측면이 아니라 교리 또는 구체화된 미
래의 희망과 관련된 신조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련된 지식의 정확
성과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어떤 신조나 교리들에 대해서 그 정확성을 따져 보
려면 그것들이 1 사실성에 기초하는 것인지 아니면 2 사실에 대한 해석인지 나아가 그
해석을 바탕으로 3 재구성된 창작인지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관적 믿음은, 믿
음이란 자체가 추측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추측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는데 기인
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나 한 그룹의 사람 또는 한 개인의 추측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것은 믿음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믿음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이 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이다.
따라서 워치타워의 자랑하는 일치된 믿음은 자랑이 아니라 수치일 뿐이다. 어떻게 추측
이 동일할 수 있는가? 추측은 개인이 가진 지식과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은 개인적 믿음이지 교리에 의해 획일화된 신학이나 신조가 아
니다. 물론 어떤 소통의 공동체에서 기본적으로 가지는공통적 신조는 정할 수 있다 그 신
조가 틀리다면 그 공동체의 성원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족하다.
따라서 이 카페의 개설 취지는 동일한 신조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를 결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신조들을 가진 사람들의 토의의 장을 열어주기 위함이다. 토의를 통하
여 기존하는 신학이나 신조들의 단순한 답습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고 일부를 공유하게
되며 나아가 새로운 생각들로 발전하게 된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고 그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믿
음을 발전시키고 사랑을 실천하며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데에 있다. 나아가 진정한
연합은 관념이나 이론의 일치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또한 이 카페의
가장 중요한 취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