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시인뉴스포엠]
■ 김윤환의 시로 듣는 인생 에세이(39)
뿌리의 힘
김완
오랜 세월을 이겨낸 뿌리는 거대하다
돌 틈으로 스며들어 돌과 더불어
단단하게 붙어버린 뿌리들 무등산
꼬막재 오르는 길을 수맥처럼 흐르고 있는
어떤 뿌리들은 땅 위로 솟구쳐 나와
숱한 역경의 시간을 무심하게 건너온
그들의 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편백나무 숲 그늘 속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이 인간의 번뇌를 씻어준다
이미 부처가 된 편백나무숲의 나무들이
어리석은 이에게 달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의 기억이 저장된 목소리는 쉬이
들을 수 없다 수만 개의 무성한 나뭇잎들이
세월을 기억하는 나무의 눈이다 그들은
한 해 동안 살면서 본 것들을 뿌리에 저장하고
이듬해에 나올 잎들에게 역사를 이어준다
오래된 나무는 천수를 누린 노인의 얼굴이다
그를 버티게 한 것은 뿌리의 힘이었을 거야
― 월간 《우리시》 2021년 3월호
[감상노트] 오래된 것에 대한 경외심이 일어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시간이 짧거나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완 시인은 보이지 않게 살아있는 뿌리가 가진 시간의 힘을 이렇게 노래한다. 시인은 무등산을 “돌 틈으로 스며들어 돌과 더불어 / 단단하게 붙어버린 뿌리들”이라고 전제한다. 한국사에서 무등산이 갖는 상징은 역경의 시간을 지켜 온 뿌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 세월을 기억하는 나무의 눈’을 통해 뿌리에 저장된 역사를 상기시키고 다시 피어날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를 뿌리깊은 나무와 그 잎새와 그들을 품고 있는 무등산에서 그 힘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시간 속에 저장된 견딤과 투쟁의 반복을 통해 시인이 믿는 시간의 힘은 다름아닌 사람에게 주어진 평화의 시간, 생명의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는 일임을 ‘뿌리의 힘’을 통해 알게 해주었다. - 김윤환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