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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 시인 석화 시의 서정성과 지역성
—시집《연변》에 나타난 시장경제이후의 조선족문화공동체의 경험의 변화와 그 의미
서준섭(한국 강원대)
1. 당대 중국 조선족 문단의 대표 시인 석화와 그의 작품
한국에서도 출판된 중국 조선족문학사에 의하면 조선족문학은 중국문학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자체의 독자적인 문학전통을 이루어왔다. 중국 조선족문학사는 “중국의 성립 직후 문학(1949-1966), 문화혁명기의 문학(1966-1976), 개혁개방 이후의 문학(1978 이후)”으로 구분된다. 김학철, 이근전 등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가이며 이들의 작품은 중국 동북지역 조선족 사회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i]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세대의 문학, 특히 이 글에서 다루고자하는 석화(石華, 1958년 생)는 이들 선배 세대 작가들의 문학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선배 작가들의 작품이 다분히 정치적, 이념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음에 비해 석화와 같은 새로운 시대의 작가들의 작품은 이념에서 자유롭고 게다가 작가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낸 작품을 써왔다. 조선족문단의 한 비평가는 석화의 초기시(「나는 나입니다」, 「고백」, 「나는 돌이 아니외다」, 「나의 장례식」등 1980년대말의 작품)를 언급하면서 “이 시편들은 개혁개방 후 전국적으로 고양되던 인도주의의식을 체현하고 개성적인 인간의 탄생으로 호소하고 있으며 우리 시단에서 주체의식, 독립의식, 자유정신의 각성으로 과시하고 있으며 시창작에서 개체생명의 목소리를 담당하고 있다. 석화의 이 시로부터 (---) 시적화자로서의 ‘나’, ‘우리’가 아닌 ‘나’가 광림하게 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ii] 석화에 대한 조선족문단의 평가는 “새 시기 조선족문단의 대표적 시인”으로 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가 개성(개체생명)을 표현한 그 쪽 시단의 선구자라는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뛰어난 서정시인으로서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창작활동을 지속하여 여러 시집을 출판하였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서정성이 높은 시를 써온 그는 한국 독자에게도 비교정 잘 알려져 있는 현대 연변 문인중의 하나이다.
최근 해외 이주자 문학, 동포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강용흘, 김은국, 이창래, 일레인 킴, 일본의 이회성, 이양지, 유미리 등과 중국 조선족 작가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그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해 온 바와 같이 해외 이주자 문학 중에서도 중국 조선족 문단의 문인의 작품은 첫째, 언어 면에서 거주 국가의 언어가 아닌 한국어(조선어)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고(표기법에서는 한국과 차이가 있다.) 둘째, 작품에 나타난 문화와 생활방식이 크게 낯설지 않으며 셋째, 내용면에서 한국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 동포작가들과 뚜렷이 구분된다. 석화 시는 한국어로 번역된 중국 작가의 작품(예를 들면 위화의 작품)보다 읽기 쉽다. 예를 들면 석화의 첫 시집에 수록된「모아산」(“모아산”은 연길과 용정 경계에 있는 산 이름임)을 보자.
저-기 바라뵈는
저 뫼가 모아산
모아산이웨다
어느 로인님이 벗어 놓은
둥그런 초모자 같다니 비슷하구말구요
밀양 박씨 김해 김씨 한산 리씨
아니면 충청도 충주 석씨일지도 모르지만
좌우간 먼 옛날
저기 버들숲 헤치고 논답 풀던 령감님이
쉴참에 벗어 놓은 초모자가 틀림 없지요
(---)
그래도 내 눈에는 저 뫼가
풍수 좋은 명당자리에 앉은
조상님에 산소인줄로 보이네요
그 차거운 두만강을 뒤웅박 차고 건너와
칡뿌리 가시덤불 파고 헤치며
돌자갈 뙈기밭에다 명줄 비끄러매였건만
오늘날 이처럼 자손이 번창하고
가나오나 웃음소리 넘쳐만 나니
백두산 대맥에 산지리 골라잡은
조상님에 은덕이라 어찌 아니하리오. (연변, 152-153쪽)
한국 독자들에게 중국 조선족 문학이 다른 지역 한국계 이주자 문학보다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공용어 이외의 각 민족의 독자적인 언어, 문화를 허용해온 중국 특유의 소수민족 정책 때문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민족언어와 공동체의 고유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제도, 민족의 역사문화를 연구하는 연구기관, 민족어를 사용하는 매체(방송, 신문)와 독자적인 문단이 형성되어 있다. 앞에서 인용한 석화 시에는 중국의 동북 3성 연변지역에 처음으로 이주, 정착했던 시인 자신의 조상의 이야기가 들어 있으며 가족을 주제로 한 시에도 그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가 등장한다. “수십년을 하루같이/ 조밭김 매시듯 가꿔오신 살림살이에/ 즐겁던 일 노엽던 일 아프던 일이/ 두벌김 가라지만큼이나 많았겠지만/ 말로 해서 조이삭 영근다더냐는 듯이/ 언제나 몸을 먼저 움직이던 아버지”(「아버지」, 154쪽). 그의 시작품은 조상들이 살아온 땅과 자연에 뿌리박고 있으며 중국 조선족 사회가 대대로 이어온 역사, 풍속, 문화를 창작의 원천으로 대하면서 이를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양국의 학술문화교류가 확대되면서 한국에서의 중국 조선족문학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지만[iii] 개별 작가연구 특히 당대 작가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하는 시인 석화는 길림성 용정 출신으로 연길에 있는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에서 공부하였고 1970년대 말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나의 고백》, 《꽃의 의미》, 《세월의 귀》 등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 연작시 「연변」을 발표하였고 최근 네번째 시집에 해당하는 《연변》(2006)[iv]을 출판하였다. 《연변》은 초기 시집 이후의 중요한 작품들과 최근의 신작을 함께 묶은 시선집이자 새 시집이라는 두가지 성격을 함께 지닌 현재까지의 그의 주요 작품들을 집대성한 시집이다. 이 점을 고려하여 이 글은 이 최근 시집을 중심으로 석화 시의 세계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는 한국의 배재대학교 인문대학원에서 유학생활을 한바 있고 현재 연변대학에서 시창작을 강의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여러 개의 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 연변문단의 시의 동향과 수준을 대변하며 따라서 이 시집은 연변문단의 문학적동향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연변지역의 조선족문학을 한국 독자가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해당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와 각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그 현실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그러나 오히려 문학작품이야말로 그것을 낳은 지역의 풍토와 사회문화를 가장 생생하게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의 시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으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의 시는 시인 개인이 경험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그의 가족, 나아가 조선족의 희로애락을 드러낸 작품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가. 사실이 그렇다면 그의 작품에 나타난 개인적 경험과 조선족 사회(문화적 공동체)의 경험과 그 의미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할것인가 – 이 글은 이런 소박한 관심에서 석화 시를 읽자고 한 한국 독자의 독후감이다.
2. 석화 시의 전개와 개혁개방/도시화 체험의 시적 변용- 첫 시집에서 《세월의 귀》까지
할아버지 대에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한 중국 조선족 제3세대인 석화는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한 지식인으로서 20대(1970년대말)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이후 네권의 시집을 냈다. 최근 시집 《연변》(2006)에는 앞서 출판한 그의 각 시집의 중요 작품들 대부분이 재수록되어 있다. “나”를 화자로 내세운 그의 초기시 중에는 문화혁명기를 거쳐온 청년시인의 인간적 번민과 자기 성장과 정립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사회적 맥락이 시에 드러나지 않은 채 현저히 내면화된 언어로 표현된다.(「나는 돌이 아니외다」, 「우리는 개인가」등. 이 작품들은 다분히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그 시적 성취면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 조선족 문단의 한 평론가에 의하면 이 시기의 석화 시에는 청년기의 “인생불안”이 드러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v] 이 초기시 중에서 성공적인 작품을 들자면 「옥수수밭에서 –어머님께」를 들 수 있다.
옥수수밭머리에
멈추어 섰다
시골길 가다가
하나씩
둘씩
서넛씩
등에
그리고 가슴에
아기를 업고 또 안고있는
내 엄마같은 옥수수여
큰절이라도
드리고싶다
달구지바퀴에 깊숙히 패인
길 한복판에
그대로 넙적 엎드려
절하고싶다
남들에게는
너무나도 화사했던
그 한시절도
있었던듯 없었던듯…
눈에 띄우는
꽃잎 하나 피우지 못한채
벌써 오늘의 계절에
휘여질듯 서있는
옥수수여
철없던 시절의 수수께끼가
언제나 가슴을 허빈다
잠자리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이 늦은 여름의 오후
그대의 어느
푸른 잎사귀 한자락잡고
빨간 댕기라도 매여드리고 싶다
내 엄마같은
옥수수여. (155-156쪽)
서정시인으로서의 석화의 시적 재능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대상과의 서정적 동화, 영탄과 감정의 내면화, 풍부한 자연이미지 등은 이후 석화 시의 중요한 특성이 된다. 그는 타고난 서정시인인 것 같다. 서정성이 풍부하고 감정표현이 진솔하여 진정성이 깃들어 있어 독자에게 호소력이 큰 서정시가 그가 쓴 작품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인용시는 시인의 “어머니”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어머니는 개인적이자 이를 넘어선 연변 조선족 어머니 일반을 대변하는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일차 독자는 조선어를 해독 할 수 있는 연변지역의 조선족이다. 시인은 조선족의 시선으로 조선족의 삶의 애환을 노래한다. 조선족 사회의 조선어 시인으로서 석화 시는 이처럼 연변 지역의 토착적인 조선족의 생활과 그 감정을 노래하고자 한다. 그가 후에 “연변” 연작을 쓰게 되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일상 생활 속의 서정”을 노래하는 석화 시의 시적 특성이 보다 뚜렷해진 것은 두번째 시집 《꽃의 의미》를 거쳐 대체로 세번째 시집 《세월의 귀》(1990-2000년대)에 이르면서부터이다. 이 시기 즉 1990년대는 중국이 개혁개방, 시장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그 가시적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던 시기에 해당된다. 「도시 속의 시골사람들」연작은 이 세번째 시집에 수록된 작품의 경향을 잘 대변하는 작품이다. 이 연작 중의 하나인 시「육촌형」을 보자.
쓰딸린거리를 건너가다가
“어이-“ 부름소리에 뒤돌아 보니
길죽한 얼굴의 륙촌형입니다
한사람 건너 누구나 한다는
경리인지 “로반”(老板)인지된다고
소 팔고 집 팔아 시골 떠났다는 륙촌형 (160쪽)
이 시는 시골에서 올라온 “육촌형”을 도시의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고 헤어졌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서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이 육촌형이 “소 팔고 집 팔아 시골을 떠나” 현재 도시로 이주해 있다는 내용이다. 이 시의 후반부에는 그 육촌형이 화자에게 갑자기 돈을 빌려달라고 손을 내밀어 스스로 지니고 있던 도을 건네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시 속의 시골사람들」 연작은 육촌형 이야기 외에도 연길시 역전에서 본 행인들에게 푼돈을 구걸하는 시골에서 온 남자 이야기, 비오는 날 텅빈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는 시골출신 아가씨 이야기 등 세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연작은 이 시를 쓸 당시의 시장경제 도입 이후의 연변 주변의 사회변화, 특히 산업화, 도시와 속에서 시골 주민들의 급속한 도시유입이라는 당시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읽을 때 그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90년 이후의 석화 시는 연변에 몰려오는 이런 변화의 물결을 신속하게 반응하면서 그 변화를 자신의 시 속에 수용하였는데 이는 그의 시세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사실은 《세월의 귀》시대의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라 할만 하다. 당시 계획경제정책을 고수한 중국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은 급속한 사회변화를 가져왔고 시골인구의 대거 도시 유입이 그런 변화 중의 하나였다. 토착적인 공동체 문화에서 시적 영감을 받아온 조선족 이주자 3세대 석화에게 이런 변화의 바람은 일종의 “충격 경험”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외국문화의 유입, 탈정치적 분위기. 도시화, 산업화, 국제교류 등은 이 시대의 중요한 경험이였다. 「아방가르드의 캠버스」라는 제목의 연작시에 나타난 시적경험은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잇다. 이 연작 중 특히 「작품 36」, 「작품 58」이 그렇다. 전자가 “철근 + 세멘트 + 타일 + --- =벽체 / 벽체 × 유리 × 페인트 × --- × 하늘= 빌딩”으로 시작되는 복잡한 수학기호의 실험성이 높은 시로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는 도시화와 그 속에서의 비인간화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후자는 “론어의 공자의 코가 야마구찌 모모에의 봉긋한 앞가슴에 밀착되여있고 포스트모더니즘 학설 위에 포개져있는 조선어문법, 성지식, 료리만들기, 세계명인전 등의 주인공들, 이들와 나란히 그랑데 고리오, 아Q. 등이 버티고 있는 현상” 즉 외국문화의 급격한 유입 속에서 겪는 시인의 문화적 혼동과 혼란을 다룬 작품이다.
1990년대 이후의 석화의 시에는 도시적 체험을 수용한 시가 눈에 뜨게 늘어나고 있다. 그 방면의 시에 나타난 시인의 문학적 태도는 도시체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거기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하거나 비판적 거리를 두고 수용한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본 작품들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의 시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현란한 거리 풍경경험은 인간성 상실, 퇴페적인 문화, 퇴폐성 등과 관련되어 있다. 시 「패션쇼가 한창인 도시」 의 요점도 그렇게 요약할 수 있다. 도시의 현란한 거리풍경은 “핫바지저고리”와 “색채와 무늬와 디자인”이 무리지어 걸어가고 있는 공간, 갖가지 형태의 “조명등불빛”속에서의 현란한 패션쇼와 같다. 시인은 “도시는 지금 T형무대우의 패션쇼가 한창이다/ (---) 패션쇼의 율동으로 뜨겁다”고 쓰고 있다. “패션쇼”가 어지러운 거리풍경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이고 자연을 거세한 곳”이다.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으로 인한 중국 사회의 급속한 변화의 바람은 대도시를 시작으로 하여 연변 연길시를 중심으로 한 조선족 사회에도 급속히 확산되었다. 당시 문화적 혼란은 중국어로 글을 쓰는 중국 작가들에게도 큰 것이였다. 현대 중국 작가의 글을 한 대목 인용해 둔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은 중국의 문화와 사회에 있어서 일대 전환점이다. 1989년 이후 중국에는 놀랍게도 아주 새로운 상황이 출현했다. 급속한 경제발전, 세계화, 시장화 등이 이 나라가 기존의 확고했던 통제를 거의 완전히 풀러버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대륙에 투자된 외국 자본은 중국경제성장의 연료가 되어 중국인들의 새로운 부의 원천이 되였다. 보편화된 정치적 환멸의 결과로 주식과 부동산은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 되었다. 주식시장은 자본의 재분배와 재조직을 상징한다. (---) 이와 함께 부동산 붐은 부의 새로운 척도를 제공하면서 중국의 사회적 공간을 재구성했다. 한편으로 세계화의 과정은 중산층 인구를 증가시켰고 대부분의 중산층 성원은 사영기업이나 다국적기업에서 일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가 사업의 약화는 실업인구의 증가를 가져왔다. 한편으로는 최신 할리우드 영화, 서양의 최신유행패션, 가장 선진적인 생활방식 등이 중국에 수입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주의가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등장했다. 그 결과 1990년대의 중국은 가장 잡다하고 뭐라 형언할수 없는 복잡한 생활공간이 되여버렸다.[vi]
3. 조선족 시인의 기억속의 문화전통과 변화하는 사회현실의 만남
1990년대 이후의 석화 시에서 개혁개방후의 도시적, 문화적 충격을 다룬 작품은 수적으로 많지 않다. 이 작품들은 대개 단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도시 체험을 직접적으로 깊이 있게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중국 사회에 불기 시작한 당시의 변화의 바람을 시 속에서 다루는 석화의 방식은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다. 연작시 「누나 3편」 중의 하나인 「도시의 달」은 서정 시인인 그가 이 도시체험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누나!
우리의 달은 마을뒤 재너머 할아버지산소로 가는 휘우듬한 언덕마루에서 고무뽈처럼 튕겨올랐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높은 아빠트와 커다란 빌딩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떠오르고있습니다
누나!
우리의 달은 조잘거리는 도랑물소리와 벌끝 논두렁우에서 은은하게 울려오는 단소소리에 둥-둥- 떠있었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가로등불빛이 희미한 네거리에서 목메게 흐느끼는 색스폰의 부루스와 비빌치듯 커피색 창유리를 두드리는 나이트클럽의 디스코에 박자를 맞추지 못한채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누나!
우리의 달은 고래등같이 덩실한 기와집추녀끝에 만월로 걸터앉아서 토끼와 계수나무의 꿈이 되고 옛구리거울의 그리움이 되고 은쟁반에 흘러넘치는 서러움이 되고 하였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색바래고 구겨진 광고종이 한쪼각처럼 깜박거리는 네온등의 오색불빛에 파리해져버린 밤하늘 저켠에 겨우 붙어있습니다
누나!
도시의 달은 이젠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채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멀건 흔적 한점을 남길가말가 하며 밤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조금씩 지워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꿈과 우리의 그리움과 우리의 서러움도 정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우리의 가슴속에서 사라져버릴수 있을가요.(103-104쪽)
이 작품에서 “도시”의 의미는 비유적 언어들로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도시 경험은 “도시 / 시골(고향)”, “도시(자본주의) 문화 /조선족 공동체문화”와 같은 다분히 이분법적인 대립적 관계 속에서 인식되고 그 시적 의미가 부여된다. 화자는 “도시”를 시골과의 관계속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시골(고향, 조선족 공동체)에서의 기억을 회상한다. 인용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화자는 이 과정을 통해 기억 속에서의 이 공동체문화에 대한 상실에 대한 불안과 그 문화에 대한 그리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 시의 화자(시인)가 시장경제 이후의 자본주의적인 도시문화 전체를 전적으로 부정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시가 도시적 충격경험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시인의 이런 태도는 도시가 순기능도 있지만 그 이면에 물질주의, 개인주의, 퇴페, 인강성의 상실, 전통적 공동체 문화의 상실 등의 역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석화 시가 90년대 이후의 사회적으로 확산된 이 도시화 바람에 대하여 적극적 수용이 아니라 소극적 대응으로 대처하고 있었던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다. 도시적 화려함은 시인 자신의 것도 조선족 공동체의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시인의 소외감과 불안은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의 큰 흐름은 인용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도시와 과정 속에서 사라지는 고향적인 것, 공동체 문화, 인간다움 등에 대한 그리움이다. 인용시에 나타난 “우리”는 이 이야기 시에 공감하는 농경사회의 전통적 공동체로서 그 속에는 조선족 문화 공동체, 느낌의 공동체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시인의 “누나”로 대변되는 가족, 이웃들이고 조선족 문학 독자들, 그리고 이에 공감하는 독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가 도시화와 시장경제 속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가치관에 불안과 과거의 공동체의 기억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는 점은 음미할만 하다.
석화의 1990년대 작품들은 그 내부에 “시골 / 도시”의 이분법을 간직하고 있다. 이 이분법은 당시의 급격한 사회변동에 따른 도시화, 자본주의화 붐을 시작품 속에 수용하면서 생성된 것이다. 그이 시에 나타나는 문화적 충격 경험은 개혁개방이 그가 속한 조선족 사회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중국 정부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도시화가 가져온 도시 문화는 자본주의 도시문화이며 그 급속한 확산은 토착적인 공동체의 문화의 상실과 변화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도시화 확산 속에서는 공동체 문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문화란 원래 공동체의 기억, 공동체의 가치관, 공동의 윤리와 결부되어 있다. 공동체 문화의 위기와 불안은 이 가치관 윤리관의 위기를 자아 낸다. 가치판단이 공동체의 문화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때, 그 문화의 혼란, 위기는 곧 가치관, 가치 판단의 위기로 이어진다. 석화의 도시경험의 시가 보여주는 여러 혼란과 비판적 거리두기 가치판단은 모두 그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 전통과 관계 깊다. 문화란 공동체에 주어진 삶의 가치 전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시에 나타나는 도시의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적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도시 문화, 도시의 개인주의적 소비문화에 나타난 그의 태도는 비판적인데 그것은 당시 중국 사회에 확산된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그의 시에 등장하는 용어) 물화에 대한 그 나름의 비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 공동체 문화는 발을 붙이기 어렵다. 석화 시가 조선족 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가 조선족 사회의 당대적 느낌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석화 시의 가치관, 윤리, 문화의 근거는 바로 그가 속한 소수 민족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 중에는 가족의 기억,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거나 독자에게 이야기로 전하는 형식의 시가 많다. 그의 시들을 연대순으로 읽어보면 거기에 몇 가지 특징적인 계열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각 계열의 시는 시간적 계기에 따라 반복, 변주되면서 그 안에 수많은 차이를 만들어 내면서 전개된다. 그 계열은 대체로 1) 자기 고백, 자기 인식으로서의 시: 자신의 개인적 삶을 성찰하거나 사랑을 노래한 여러 편의 시가 이 계열에 속하며 이 계열의 시는 명상시로 변주되기도 한다. 2) 도시 체험을 다룬 시: 1990년대 이후의 시에서 나타나는 도시적 경험의 시들. 3)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시: 석화의 큰 흐름을 형성한다. 수적으로 우세함(예: 「하늘과 나무와 이야기」 등) 4) 조선족의 역사 문화에 대한 상념을 표현한 시: 초기작 「돌이 많은 고장에서」에 이어지는 시들(「모아산」, 「우리말, 우리라는 말」 등) 등 네가지로 요약해 볼수 있다. 이 네가지는 이해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서 서로 중첩되기도 한다.
이 네 계렬 중에서 4) 조선족의 역사, 문화에 대한 상념을 표현한 시 계열은 그 수는 적지만 그의 작품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이 방면의 작품은 초기작 「돌이 많은 고장에서」연작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데 그 특성은 이 연작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연작은 “장군묘, 완도산성, 호대왕비” 등의 역사 유적이 있는 “집안, 현성”의 자연 “말이 없는 유적”과의 마음 속의 대화를 다룬 것이다. (고구려, 발해의 역사 유적에 대한 상념을 다루고 있는 이 계열의 시는 최근작 「돈화 역에 내리면」(「연변」 연작의 일부)에서도 볼 수 있다. 3) 자연과의 교감을 다루고 있는 시계열의 시들은 석화 시의 서정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현실의 번민에서 벗어나 마음의 위안(평화)과 기쁨을 주는 존재, 마음 속으로 서로 교감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 섭리와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존재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연은 그가 자주 관심을 기울이는 소재이자 주제이다. “능금나무 한그루 / 뜨락에 옮겨놓고 / 사는 법을 배운다//(---)//마가을 찬바람엔/ 남은 잎사귀마저 다 뿌려주고 / 함박눈이 쏟아져도 / 그런대로 / 칼바람이 불어와도 / 그런대로 / 맴몸에 빈가지로 말없이 서서 / 다시 올 봄의 꿈을 / 조용히 펼쳐가는 // 능금나무 한 그루”(「사는 법」, 140-141쪽)
계렬 1) 자기고백, 자기인식으로서의 시 역시 초기시에서 비롯되고 있다. 초기의 “개체생명”의 인식과 자각을 다룬 시들은 자기 삶에 대한 “명상”의 시로 변주되기도 한다. 그의 시에는 명상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며 “명상시”가 적지 않다. 이 명상시의 주제의 하나는 노자나 장자의 철학을 연상시키는 “비움의 철학”이다. 이 방면의 시를 보면 초월적인 보다 큰 자아완성, 인간적 위엄을 지키기 회한 현실로부터의 초연 등의 모티부를 볼수 있다.(“그대 / 비움으로써 / 가득참에 이르는 / 항아리여 // 언제 바라보아도 / 당당한 모습 / 가득차서 탐냄이 없고 / 비여있다 하더라도 / 슬픔이 고이지 않는 / 항아리여”(「항아리여」, 115쪽)
계렬 2) 도시체험을 다룬 시계렬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1990년대 작품에서 그 얼굴을 드러낸다.
석화는 조선어(한국어)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 그의 “우리말”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우리말을 주제로 한 다음과 같은 시를 보라.
어머니의 품속에서
숨결로 이어지고
아버지의 눈빛을 거쳐
온 세상 만물의 이름 지으며
해
달
별
천만년을 이어온
그 빛발과 같이
또 다시 천만년을 이어갈
우리말(「우리말, 우리라는 말」, 100쪽)
석화의 시는 조선족의 역사와 문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 이웃, 농경사회의 공동체, 그리고 연변지역의 아름다운 자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자기인식은 그 공동체 속에서의 자기인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치관과 윤리의식도 그 공동체와 이어져 있다. 물론 그는 자신이 조선족이지만 중국 국민의 일원이며 “각 종족이 서로 언어는 다르지만 중국이라는 한배를 탄 시민”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중국의 장강 하류를 여행하면서 쓴 작품 「한배를 타고」 에 특히 그런 시민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의 시가 그의 생활의 근거지인 중국 동북지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경험과 존선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문학은 중국의 공용어문학과는 다른, 그 나름의 지역성을 강하게 띤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농촌공동체의 일상 생황에 바탕을 둔 서정시, 농경사회적 상상력, 휴머니즘의 옹호 등은 그의 시의 중요한 특성이다.
4. 시장경제의 확산 이후 연변조선족 사회의 불안과 희망— 연작시 「연변」(2000년대)
「연변」연작시 31편은 석화의 30여년의 창작생황의 중요한 결실이다. 시집 『연변』에는 이 연작 직전의 작품도 다수 수록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중국 ‘강남’지방 여행시, 한국에서 만나 우정을 쌓은 한국시인에게 주는 시도 있다.) 이 연작은 31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대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연변”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지리적 공간과 그 곳의 “주민—생활—문화”의 전체를 의미한다. 이 연작에는 앞에서 언급한 몇가지 시계렬이 반복, 확대, 변주되고 있는데 이 연작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당대 중국 사회 속에서의 연변사회의 변화상과 “큰 변화의 바람”속에 놓인 그 조선족사회에 대한 불안과 조선족문화의 정체성문제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연변”의 얼굴은 다양하다. 연변은 우선 “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나고, 용드레우물가에 키 높은 버드나무가 늘 푸르고, 할아버지는 마을 뒤산에 잠들어있고 아이들이 공부가 한창인 곳, 백두산 이마가 높고 두만강이 철리를 흘러 내가 자랑스러운 곳”이다.( 「연변·1」) 기차가 이곳으로 들어오면 기적소리도 중국어 발음과 조선어 발음 두 가지로 울고, 거리엔 중국노래와 한국노래가 함께 들리고, 거리엔 온갖 옷차림과 온갖 빛깔의 새로운 바람이 공존한다.( 「연변·2」) 시골의 “백도라지가 시장으로 와서 온갖 색깔로 변해 “칼라 도라지”로 바뀌는 곳이고(「연변·8」, 이 작품은 “도라지”의 고유성이 시장에서 변화, 왜곡되거나 인종적문화의 차이로 인해 오해되는 사실을 다루고 있음.) 사과배라는 특산물이 나는 고장이다.( 「연변·7」, “사과배”는 이 지역의 문화적 혼종성과 고유성을 함께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상의 몇 작품이 연변의 현재와 이에 대한 시인의 애정을 다루고 있다면 이 연작에는 연변의 변화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다룬 시도 많다. 몇 몇 사례를 통해 시에 나타난 연변의 변화상을 살펴보자. 「연변·4 —연변은 간다」는 이 지역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연변이 연길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구로공단이나 수원쪽에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 말이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연변은 원래 쪽바가지에 담겨
황소등짝에 실려왔는데
문화대혁명때 주아바이랑 한번 덜컥했다
후에 서시장바닥에서 달래랑 풋배추처럼
파릇파른 다시 살아났다가
장춘역전 앞골목에서 무우짠지랑 함께
약간 소문났다
다음에는 북경이고 상해고
랭면발처럼 짝짝 뻗어나갔는데
전국저으로 대도시에 없는 곳이 없는게
연변이였다
요즘은 배타고 비행기타고 한국가서
식당이나 공사판에서 기별이 조금 들리지만
그야 소규모이고
동쪽으로 도쿄, 북쪽으로 하바롭스키
그리고 싸이판, 샌프란시크코에 파리, 런던까지
이 지구상 어느 구석엔들 연변이 없을소냐.
그런데 근래 아폴로인지 신주(神舟)인지
뜬다는 소문에
가짜려권이든 위장결혼이든 가릴 것 없이
보따리 싸안고 떠날 준비만 단단히 하고있으니
이젠 달나라나 별나라에 가서 찾을 수밖에
연변이 연길인지 연길이 연변인지 헷갈리지만
연길공항 가는 택시료금이
10원에서 15원으로 올랐다는 말만은 확실하다(「연변·4- 연변은 간다」, 8-9쪽)
이 작품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연변의 변화, 특히 현재의 변화를 노래한 시이다. 급격한 변화 특히 인구의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다룬다. 2000년대의 연변사회의 인구이동현상은 도시화, 산업화에 따른 것으로 대략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인구가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연변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이다. 이 작품은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지만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연변을 떠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착잡한 상념을 노래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화자의 어조속에는 이 현상을 대하는 윤리적 위기감, 상실감 같은 것이 배여있다.(“가짜 려권”, “이젠 달나라나 별나라에 가서 찾을 수밖에” 등, 그 사이 오른 “택시요금”은 물가상승이라는 경제적 사정변화를 시사한다.)
연변사회가 직면한 이 변화와 동요를 시인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가. 이 문제는 간단히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몇가지 사례를 통하여 간단하에 살펴보겠다. 우선 연작 「연변·14- 씨앗」, “씨앗”에는 시인의 불안과 희망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밭고랑시이에 묻어둔 것일 뿐/ 우리들의 눈에 잠시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것이 아니다/(---)/ 구름이 비로 내리고/ 꽃은 열매로 모양을 바꾼다/ 천년이 간들 어떠리/ 오동성 담벼락에 부서지는 해살이/ 늘 저러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하리(「연변·14- 씨앗」, 22쪽)
연변은 이제 “씨앗으로 묻히고 있다”는 시인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밭고랑사이에 묻어둔 씨앗”이란 이미지가 다른 작품에서는 화석화(化石化)라는 의미의 “화석”(「연변·22- 화석」)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이 시는 수만년전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고 땅 속에 묻현다가 “포크레인 삽날에 찍혀나온 화석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지만 그 후반부에서 스스로 “화석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가 하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토로되고 있다.(“그게 이름이 뭐라고?/ 화석화석(---)/ 그게 이름이 뭐라고?/석화석화(---)/ 그게 이름이 뭐라고?” – 이 시는 자신의 이름을 시적으로 변용시킨 것임) 자신의 위기의식, 나아가 “연변”문화공동체의 위기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을 1990년대 도시의 충격경험을 다룬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그 사이에 연변사회와 시인 모두에게 큰 변호가 있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연작에는 연변사회의 “시시비비”와 일상화된 “현금카드”에 대한 시도 들어 있지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인의 이러한 변화하는 현실을 수용하는 태도이다. 시인은 이 변화의 바람을 때로는 착찹하게 때로는 담담한 심정으로 수용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현저히 내면화하여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발해를 만나려고/ 돈화역에 내리면/ 나를 싣고 온 밤기차/ 해가 뜰때까지/ 굽이굽이 몸속을 굴러가/ 울먹이는 기적소리를 듣게 한다”(「연변·15- 돈화역에 내리면」, 23쪽) 그는 “살아가는 것이 내곁의 것을 하나씩 지우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세상은 원래 내곁의 것을/ 하나씩 지우며 살아가는 것을/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더 많아진/ 이 시점에 와서야/ 조금씩 깨닫는 것 있는가/(---)/ 목 아프게 쳐다보고 올려다 보던 마천루도/ 보다 높은데서 내려다보면 성냥갑 하나/ 널직하 네거리 호화판의 이 중심가도/ 그냥 개미들이 북적이는 란장판 한판이려니/ “동산에 올라 나라를 굽어보는”/ 그날의 어른 심사 이와 같지 않았을가(「연변·26- 동산에 올라」, 38-29쪽)
“난장판”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이 작품은 이 난장판으로부터의 그의 시적 초월을 보여준다. 공자가 “동산에 올라 천하가 좁다”고 말한 고사에 기댄 시로서 현실을 좀 더 멀리서 원대한 시선으로 대하고자하는 초월의 시, 위안의 시이다. 이 연작 마지막 작품의 부제는 “길은 길다”이다. 이 작품은 연변의 한적한 시골풍경을 다룬 시로서 “길이 길다”라는 표현은 이 연작 안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길이 길다”는 것은 길이 비어있음과 쓸쓸함을 뜻하는 것이자 갈 길이 멀다, 앞길이 고단하리라는 뜻을 함께 함축하고 있다. 시인이 이 작품으로 연변 연작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칠월 땡볕에/ 수레바퀴자국을 가로질러가는/ 개미들의 발이 따갑다//(---)// 앞내가 돌다리를 건너간 마을애들// 저기 푸른 하늘가에 뒤모습만 얼른거리고/ 동구밖으로 서성이는/ 할아버지의 허리가 더욱 굽었다// 길이 길다(「연변·31- 길이 길다」, 46쪽)
연변 연작은 석화 30년 창작생활의 중간 귀착지가 어딘지 보여주고 있다. 이 연작은 변화하는 중국/연변 속에서의 일상적 경험에 충실한 시로서 그 변화에 대한 시적 대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개혁개방 직후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이제 급변하는 연변의 현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며 그 결과 작품 세계가 더욱 풍성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그의 “연변 연작” 31편은 조선족 서정 시인으로서의 그의 문학적 역량을 생생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이 연작의 주제의 하나는 간단히 말해 산업화, 도시와, 인구의 도시 유출, 세계화, 시장경제의 일상화 등 급변하는 내외의 환경 속에서 연변 조선족 사회의 현재의 변화상과 조선족 문화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상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연작에 이르러 중국 조선족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 문제를 심도있게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5. 지구적 문화와 소수자(소수민족) 문학(문화)의 전체성 – 석화 시의 지역성과 보편성
석화는 새로운 시기의 중국 조선족 문단의 대표적 시인으로서 조선족의 전통적인 생활과 문화에 기반을 둔 수많은 서정시를 써온 시인이다. 그가 쓴 여러 편의 작품들은 지난 30여년 동안의 개인적인 일상생활 속의 애환과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으로서, 그의 시에 나타난 경험들은 개인을 넘어선 조선족 사회 공동체의 일상적인 경험과 서로 민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의 “연변 연작”에는 2000년대 이후의 조선족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변화의 바람이 그 특유의 언어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그가 노래하는 소수 민족인 조선족 공동체 문화의 동요와 해체위기, 개인의 문화적 정체성 위기는 일차적으로는 오늘날 변화하는 중국 사회 속에서의 연변 중국 조선족사회의 문제이지만 크게 보면 특정지역을 넘어선 전 지구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에서의 개인이나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 문제는 특정 지역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해외 이민 2,3세대들의 작품만해도 거기서 이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는 중요한 주제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고 다른 국각의 다른 지역 이주자 문학의 경우에서도 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사정은 비슷하다. 예를 들면 영국 통치하에 있다가 중국에 귀속된 “홍콩”의 경우 거기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한다. 현대 홍콩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 예술가, 미국 출신의 영적탐구자, 중국 태생의 홍콩 지식인”등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문화연구서를 보면 그곳에서의 개인적인 문화적 정체성이란 단일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성, 혼종성을 띠고 있다. 홍콩과 같은 다인종, 다문화 대도시에서 가가 개인의 정체성 찾기란 “문화적 슈퍼마켓에서 자신의 고향 찾기”와 같이 혼란스러운 일이다.[vii]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인종들이 함께 섞여 살며 각자의 처지에서 문화적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석화가 속한 연길을 중심으로 한 연변의 경우는 물론 홍콩에 거주하는 여러 인종이 겪는 문화적 혼란의 경우와는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혼란과 문화정체성 위기가 드러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점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석화의 시가 보여주는 문화적 정체성 혼란은 그가 중국 속의 인종적 소수자에 속해 있는데서와 시인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지금까지 살펴온 바와 같이 그의 시는 조선족문단의 시인으로서 그 나름의 독특한 지역성을 지니고 있고 그 문학세계는 조선족 사회의 토착적 문화전통과 접맥되여 있다. 이 지역성, 지역 문학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한국독자들은 해외교포문학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바라볼 수 있지만 이 문제는 문화연구자들이 강조하는 인종, 계급, 성차의 관점에서 그리고 세계의 특정지역의 소수자 문학이라는 관점에서 전지구적시선에서 보아야 할것이다. 그렇게 볼 때 지구촌에서 이 소수 인종의 문학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구촌의 소수 민족 시인으로서 석화는 그 민족의 전통적인 언어와 문화에 바탕을 둔 시창작을 지속하면서 그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를 시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옹호하면서 그 문화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노래하는 이 개인과 종족(소수자)의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는 지역적인 것이자 동시에 개인을 넘어선 전지국적, 보편적인 문제이다. 세계 역사 속에서 각 지역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소수자(소수인종)문화, 그들이 고유문화의 상실을 누구나 안타깝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화의 바람 속에서 소수 민족의 문화적 위기현상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어느 지역의 고유한 인종과 문화. 문학적 전통은 인류를 위해 보존, 육성되고 또 지속되여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석화시의 문학적 의의는 언어의 국경을 넘어선다.
[i] 조성일, 권철. 『중국조선족문학사』, 연변: 연변인민출판사, 1990. /『중국조선족문학통사』, 서울: 이회문화사, 1997, 참조.
[ii] 최삼룡, 「새 시기 중국조선족의 대표적 시인 석화」, 『시와 삶의 대화』, 한국학술정보㈜, 2006. 187쪽. / http//yanbian.moyiza.com(인터넷 자료)
[iii] 송현호, 회병우 외, 『중국조선족문학의 탈식민주의 연구 1』, 국학자료원, 2008/ 『중국조선족 문학의 탈식민지중의 연구 2』, 국학자료원, 2009는 이 방면의 대표적 연구이다.
[iv] 석화, 『연변』, 연변: 연변인민출판사, 2006, 이 시집은 작품 발표 연대의 역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이 글에서 언급되는 쪽 수 표기는 이 선집 본문의 쪽수임.
[v] 최삼룡, 앞의 글.
[vi] 장이우, 「포스트모더니즘과 1990년대 중국소설」, 김우창, 피에르 부르디외 외, 『경계를 넘어 글쓰기』, 민음사, 2001 745-746쪽.
[vii] Gorden Mathews, Global Culture/ Individual Identity, London and Nortk: Routlsdge, 200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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