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깃든 이야기"―석화 시인 인터뷰
중국 국제방송국 CRI
(International broadcasting of china)
2013-05-14 11:00:21
(사진설명: 스튜디오에서 중국국제방송국 림봉해 아나운서와 석화 시인(우측))
(사진설명: 취재를 받고 있는 석화 시인(우측))
작곡가나 작품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를 일화, 에피소드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확실한 사실을 전해주는 경우,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중국 조선족 노래에 깃든 이야기를 책으로 편찬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작가협회 회원이며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의 유명한 시인 석화 선생님입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고 평소에 즐겨 부르던 노래속에 과연 어떤 재미있는 창작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는지…
중국음악, 이번주부터 석화선생님을 모시고 그 이야기들을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으로 "우리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 이 책을 편찬하게 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일전에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에서 석화선생님을 만났는데요. 그의 인터뷰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 도서 집필 석화 선생 인터뷰 – 13'00"
사회자: 일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헌례도서의 한권으로 출간된 "우리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란 책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독자들은 노래속에 흘러온 역사가 담겨 있고 노래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는데요. 그래서 이 책의 집필자인 석화선생을 제가 직접 연변 연길에 가서 만나뵜습니다. 중국 조선족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석화: 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수도북경에서 이렇게 찾아오시다니. 너무 황송합니다.
사회자: 제가 영광입니다. 선생님, 시인이잖아요. 음악과의 인연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석화: 시인이라고 불러주니 영광입니다. 시인뿐만아니라 어느 누구도 음악, 노래는 즐겨하고 감명받는 것이 아닙니까? 특히 시라고 할때, 서정시는 영어로 릴릭(lyric )이라고 합니다. 릴릭은 악기 이름인데요. 지금 현대 기타, 하프와 비슷한 현악기입니다. 릴릭에 맞춰 감정을 표달하는 내용, 그 부분이 시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시와 노래는 예전부터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노래는 우리가 함께 좋아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회자: 현재 연변 작가협회 부주석을 맡고 있잖아요. 많은 시를 쓰셨구요. 중국 조선족 중학교 교과서에도 작품이 많이 실렸잖아요. 우리들이 익숙히 알고 있는 시인입니다. 음악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면서요.
석화: 방금 말씀드렸지만 음악은 문학, 시 구분할것 없이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에는 그 당시 선전대라고 했습니다. 70년대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제가 학교 악대 반주원이었고 손풍금을 탔습니다. 가끔 학교 선전대가 공연나가면 노래 잘하는 친구들을 모아 반주도 하고 춤추는 친구들한테 무용곡 반주도 하고 등등…제가 화룡 3중을 다녔는데요. 당시 화룡3중 선전대가 굉장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사회자: 그러면 작곡도 가능하시겠는데요.
석화: 아닙니다. 작곡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보다도 음악과 가까워진 가장 큰 이유는 연변대학 77학번,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분배받은 곳이 방송국이었습니다. 화룡방송국을 통해 연변방송국으로 왔습니다. 그 때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음악부 기자로 있었습니다. 음악부라고 하면 전문 음악 창작일군, 편집일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프로가 방송으로 나가려면 해설이 필요하잖아요. 그 부분 담당이 제가 맡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프로그램을 편성할때 문자로 작성하고 또는 작곡가, 가수, 연주자 등을 취재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음악프로가 나가는 부분에서 문자를 담당하는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자: 저와 비슷하네요.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잖아요?
석화: 아~ 맞습니다.(웃음) 그런 부분들이 음악과 가깝게 했던 계기가 되었구요. 특히 연변인민방송국 음악부는 다시 태어나는 요람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당시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선생님이 주임이었고 그 어른을 모시고 참 좋은 음악을 많이 들었고, 그 어른이 중국 조선족 음악의 산 견증인이 아닙니까. 그분이 정말 많은 노래를 만들었잖아요. "고향산 기슭에서", "선생님 들창가 지날때마다"(음악 깔아주며…) 등등 헤아릴수 없는 많은 곡들을 창작하셨습니다. 그 당시 동희철 선생님은 중국음악가 협회 주석, 부주석을 담당하면서 많은 행사들을 주최했습니다. 저도 동선생님의 비서로 따라다니면서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음악인들을 만나고 그분들 취재하고… 이렇게 수십년을 보냈습니다. 이런 과정에 음악과 정말 가까워졌습니다. 동희철 선생님이 퇴직하시고 한병낙 선생이 주임으로 되었고… 한병낙 선생님은 상해 음악학원을 졸업한 대단한 음악인이었습니다. 그때 동료들로는 작곡가 고창모 선생님, 황상룡 선생님 계셨고 김석철 선생 등 주변에 음악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콩나물을 먹고 자랐지요.(웃음)
사회자: 네. 그러한 환경, 함께 한 과정이 있었기때문에 대중들이 즐겨하는 노래들을 많이 창작하실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석화: 저는 가사만 썼습니다. 그분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고민듣고… 고민이라면 결국 창작고민이지요. 좋은 노래 만들고 싶은데 어떻다. 또 가수들은 어떤 노래 부르고 싶은데 작품이 없냐…이런 투정도 받고 하니까 좋은 노래를 만들수 있는 계기가 저한테 차려진것이고…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사회자: 석화선생님, 참 좋은 노래들 많이 작사하셨잖아요. "동동타령", "동그라미", "노래를 부릅시다", "어머님 생각", "돌다리"… 가사 작품이 얼마정도 됩니까?
석화: 글세요. 헤아려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한 천곡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자: 천곡이요?
석화: 절대 많은 것이 아닙니다. 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2013년, 그중에서 가수들의 의뢰를 받고 만들어준 음악전집만 해도 열댓개…그러면 그것만 해도 한집에 열개 내지 스무개라고 잡아도 수백개가 됩니다. 이렇게 통계하다보니 천곡이라는 숫자가 나오더군요.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사회자: 얼마전에 책을 펴냈잖아요. "우리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 이 책을 편찬하게 된 계기는 어떻습니까?
석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지난해 60주년을 맞으면서 각 분야마다 자치주가 걸어온 노정을 되새겨보고 특히 중국 조선족이 중국에서 터를 잡고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이 얼핏 잡아도 100년으로 보잖아요. 물론 100년은 넘겠지만… 이 100년에 많은 노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노래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살아왔던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습니다. 좋았고, 슬펐고, 괴로웠고… 등등 모든것들이 노래속에 담겨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책을 만들수 있는 계기가 된것 같습니다.
사회자: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 인상깊던 노래 하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석화: 물론 100년을 잡아 처음에는 100곡을 생각했거든요. 사실 말해 100곡도 많은 것이 아니지요. 얼마나 좋은 노래들이 많은데요.
사회자: 책에는 사실 50곡만 수록되었지요?
석화: 네. 50곡도 겨우 썼어요.(웃음) 쓰면서 느낀것인데 한수한수의 노래가 월강곡부터, 강을 넘어 그 설음부터 시작해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그중에는 항일가요도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이 되고 해방초기의 노래들도 있고 문화대혁명시기를 걸치고 70~80년대 개혁개방의 노래… 이런 수많은 역사시기를 거치면서 매 시기마다 대표곡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노래들을 다시 접하면서 예술이라는 것이 이렇게 위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향생각"(음악 한토막 깔며) 허세록 선생이 작곡한 노래인데요. 이런 명곡은 한 인간의 인생과도 맞바꾸는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예술가라면, 창작가라면, 시인 혹은 작곡가라면 허세록선생이 남겨놓은 작품처럼 이런 훌륭한 작품을 남겨야 예술가의 칭호에 부끄럽지 않겠구나, 그러자면 정말로 자기 생명을 바칠수 있는, 내 모든것을 예술에 바칠수 있는 그런 마음자세만이 그런 훌륭한 작품을 허락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좀 숭고해 졌습니다.
사회자: 그렇네요. 듣는 입장에서도 많이 숭고해 집니다.
석화: 쉽게 얘기하면 노래는 즐거울 때만 부르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잔치, 회갑 등등, 하지만 노래속에는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 뒤에 깔려있는 수많은 정서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움도 있고 슬픔도 있고. 특히 그중에는 시골 농부 원효연씨라고 "타향의 봄"(음악 한토막 깔며) 러시아 현지에 가서 창작한 노래가 있습니다. 이런 노래는 원효연씨, 그리고 이 곡을 작곡한 최시렬 선생님도 결국에는 특별한 음악인도, 예술인도 아닙니다.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그런 분들이 이런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그분들의 인생, 그분들의 생명이 고스란히 작품속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라면 이러한 생각이 훌륭한 노래를 만드는 시작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소개를 듣고 보니 이 책을 읽은 독자분들은 동감이 생기겠는데 읽지 못한 분들은 저처럼 조급해 날것 같습니다. 과연 어떤 노래,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해 하고 기대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저희 중국음악 프로에서는 특별히 코너를 내서 중국 조선족 역사에 담긴 이야기, 그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석화 선생님을 모시고 노래 한수한수에 대한 소개를 들으면서 그 노래에 깃든 이야기를 청취자분들께 들려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석화: 너무 고맙지요. 감사합니다.
사회자: 석화선생님, 그럼 수고해주십시오.
석화: 당연한 일이지요. 좋은 노래 우리 함께 감상하시죠.
사회자: 오늘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석화: 감사합니다.
(인터뷰 끝)
1980년대 중국 조선족 가요 대표작인데요. 꽃피는 새살림의 환희로운 가락이죠. 안계린 작곡, 석화 작사의 "동동타령"을 보내드리면서 저는 이만 작별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진행에 임봉해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노래 동동타령" 2'39"]
--끝--
노래에 깃든 이야기 1.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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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대단하신 작품 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한 이십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에 엄청나게 활동하신 작가들이 여럿 계셨는데
현존 작가 중 이렇듯 많은 활동을 하신 분이 계시다는 걸 알고 보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