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주의할 점은 현재의 경주 땅이 1억 년 전에 호수였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그 때 퇴적암층의 수 킬로미터 아래 지하였다.
이후 중생대 백악기 말기(약 6~7천만 년 전)에 들어, 현재 남산의 땅 속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꿰뚫고 올라온다(관입). 그런데 선도산이나 단석산처럼 화산폭발로 이어지지 못하고, 마그마가 땅 속에서 그대로 식어 화강암이 되었다(그림1의 화강암층). 이 때 마그마의 뜨거운 열이 주위 퇴적암을 구워 버려 변성퇴적암을 만들어 놓았다(그림1의 변성퇴적암층).
그로부터 다시 수 천 만년이 흘러 신생대 제 3기 때, 우리나라가 전체적으로 융기운동을 받아 들어 올려 질 때 경주도 같이 융기하게 되었다. 그 결과 비교적 높은 산지로 변해버린 경주가 이때부터 하천의 지속적인 차별침식을 받게 된다. 그래서 비교적 약한 암석인 퇴적암이 많이 깎여나가고, 상대적으로 단단한 화강암이 작게 깎여 나감으로써, 현재의 남산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화강암이 꿰뚫고 올라오기 전의 퇴적암의 모습을 보려면 남산 서쪽 사면에 있는 용장계곡으로 가면 된다. 용장계곡은 남산의 50여개 골짜기 중 가장 크고 길은 골짜기이며, 금오신화의 저자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림 2> 목조다리 아래로 보이는 변성 퇴적암 암반
용장리 공용주자창에서 주차 후 약 600m를 걸어가면 갈림길에 공원지킴터 건물이 있다. 여기서 왼쪽 목조다리로 접어들어 아래를 보면 짙은 청색의 변성퇴적암 암반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그림 2).

<그림 3> 용장계곡에 드러나 있는 변성 퇴적암 암반
다리를 지나 오솔길을 따라 약 200m를 올라가면, 우측 계곡으로 변성퇴적암의 모습을 더욱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그림 3). 짙은 청색의 변성퇴적암 암반과 좀 더 밝은 색인 화강암의 색깔 차이가 명확해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변성퇴적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고, 상류에서 운반되어 온 여러 크기의 화강암들이 쌓여 있다.

<그림 4> 퇴적암임을 나타내는 지층의 층리
본인의 출신이 퇴적암임을 나타내는 평행한 줄무늬 형태의 층리의 모습이 보이고(그림 4), 퇴적암이 생성될 당시 퇴적암과 조성이 다른 광물질이 뭉쳐 덩어리 형태로 굳어진 결핵체의 모습도 보인다(그림 5).

<그림 5> 변성 퇴적암 곳곳에 나타나는 결핵체 모습
이렇게 변성퇴적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고, 상류에서 떠내려 온 화강암들이 그 위를 덮고 있는 형태가 용장계곡을 따라 100m 정도 더 이어진다. 그 위 상류로는 변성퇴적암이 보이지 않고 완전히 화강암 기반암으로 바뀜으로서 화강암 계곡 특유의 아름다움은 있지만, 퇴적암과 어울려 보여주는 재미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