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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대상
대순진리회의 신앙의 대상은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1)(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趙聖玉皇上帝 (조성옥황상제)
朴聖彌勒世尊 (박성미륵세존)
이시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강증산·조정산·박우당의 정체, 즉 세 분 하느님
[三神]의 원위(元位)가 밝혀짐으로써 대순진리회의 신앙체계는 비로소 정립되었다.
1) 구천이라 함은 전경(典經)에 …모든 신성(神聖)·불(佛)·보살(菩薩)들이 회집하여 구천(九天)에 하소연하므로…【교운 1장 9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주(宇宙)를 총할(總轄)하시는 가장 높은 위(位)에 계신 천존(天尊)께 하소연하였다는 말이니 그 구천(九天)은 바로 상제(上帝)께서 삼계(三界)를 통찰(通察)하사 건곤(乾坤)을 조리(調理)하고 운화(運化)를 조련(調練)하고 계시는 가장 높은 위(位)임을 뜻함이며, 응원(應元)이라 함은 모든 천체(天體)뿐만 아니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천명(天命)에 응(應)하지 않고 생성(生成)됨이 없음을 뜻함이며, 뇌성(雷聲)이라 함은 천령(天令)이며 인성(仁聲)인 것이다. 뇌(雷)는 음양(陰陽) 이기(二氣)의 결합으로서 성뢰(成雷)된다. 뇌(雷)는 성(聲)의 체(體)요 성(聲)은 뇌(雷)의 용(用)으로써 천지(天地)를 나누고 동정(動靜) 진퇴(進退)의 변화로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를 승강(昇降)케 하며 만물을 생장(生長)하게 하고 생성변화(生成變化) 지배자양(支配滋養)함을 뜻함이며, 보화(普化)라 함은 우주의 만유(萬有)가 유형(有形) 무형(無形)으로 화성(化成)됨이 천존(天尊)의 덕화(德化)임을 뜻함이며, 천존(天尊)이라 함은 군생만물(群生萬物)을 뇌성(雷聲)으로 보화만방(普化萬方)하시는 지대지성(至大至誠)한 삼계(三界)의 지존(至尊)임을 뜻함이며, 강성상제(姜聖上帝)라 함은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삼계대권(三界大權)으로 주재(主宰) 관령(管領)하시며 관감만천(觀鑑萬天)하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하느님의 존칭(尊稱)을 뜻함이다.
세 분 하느님의 원위는 당신들의 화천 이후 공히 인간세상의 계승관행에 의존하지 않은 천부적(天賦的)인 종맥종통자(宗脈宗統者)에 의해밝혀졌다.
대순진리회는 세 분 하느님의 연운체계(緣運體系)를 따라 도통진경(道通眞境)·도지통명(道之通明)을 위해 수도(修道)한다.
강증산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매 세존(世尊)이신 미륵께서 원시(原始)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佛)과 보살(菩薩)을 회집(會集)하여 구천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인류와 신명계에 닥친 겁액을 호소하셨다.
이에 구천상제께서는 서양의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하시었다. 서양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절에 대법국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 국가이고 그 수도 파리의 노트르담, 즉 성모마리아 성당은 하늘의 계시가 우선 내리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를 다스리는 상제께서는 三界를 개벽하여 선경(仙境)을 열고 사멸(死滅)의 위기에 빠진 창생(蒼生)을 건지고자 우선 도울만한 땅을 찾으시니 일찍이 도(道)를 이룸에 있어 앞섰으나 물질문명의 뒤처짐으로 고초를 받는 동방으로 향하시어 그중에서도 참화(慘禍)에 덮인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도와 만고에 쌓인 원(寃)을 풀어주시고자 이 땅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 삼층(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삼십 년을 지내시다가 최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시었다.
그러나 유교(儒敎)의 전헌(典憲)을 극복하고 대도의 참뜻을 밝힘에 제우가 능하지를 못하니 갑자(1864)년에 이제까지 해왔던 천명(天命)과 신교(神敎)의 방법을 거두고 드디어 신미(1871)년에 친히 인간 세상에 내려오시기로 정하시어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씨 가문에 九월 十九일 강세(降世)하시니 존휘는 일순(一淳)이시고 자함은 사옥(士玉)이시며 존호는 증산(甑山)이시다.
상제께서 탄강하신 고부(古阜)는 예부터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洲山), 방장산(方丈山)의 세 산이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리어 왔던 곳이며 산맥이 기복연면(起伏連綿)하여 시루산을 이루고 시루산 동편에 상제님께서 탄강하신 객망리(客望里)가 있었다. 객망리는 상제께서 탄강 하시기 이전에는 선망리(仙望里)라 하더니 후에는 객망리[손바래기]라 하고 상제께서 화천하신 뒤로는 신월리(新月里)로 고쳐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九天上帝님의 天地公事
구천상제께서는 광구천하(匡救天下)2)하시기 위해 삼십 년 동안 주유(周遊)하시다가 신축(1901)년 오월 중순부터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서 사십구일 동안 불음불식(不飮不食)의 공부를 하신 후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여시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시작하셨다.
2) 세상을 바로잡아[匡] 구함
상제께서 가라사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따라서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느니라. 비유컨대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 할지라도 자식이 얻어 쓰려면 쓸 때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어 불안하여 살기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開闢)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고금에 없어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나는 三界의 대권(大權)을 주재(主宰)하여 선천(先天)
의 도수(度數)3)를 뜯어고치고 후천(後天)의 무궁한 선운(仙運)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 하셨다.
그리고 상제께서는 가라사대“ 선천에서는 인간이나 사물이나 모두 상극(相克)에 지배되어 세상에 원한이 쌓이고 맺혀 三界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 재화(災禍)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道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神道(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人事)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三界公事 이니라.” 하시고 그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를 착수하셨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명부의 착란(錯亂)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으니 명부공사가 종결되면 온 세상일이 해결되느니라.”하시고 날마다 종이에 글을 쓰시고 그것을 불사르셨다.
3) 天度指數를 말함. 1년은 열두 달이고 우주 1년은 129600년인 것처럼 天理를 나타내기 위하여 있는 갖가지의 특별한 常數.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布敎五十年工夫終畢
포교오십년공부종필
이라 쓰시고 불사르시고 이르시길
“내가 물샐틈없이 굳게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九년간 행하여 온 개벽공사를 천지에 확증하리라. 너희들이 참관하고 확증을 마음에 굳게 새겨 두라. 천리(天理)는 말이 없으니 뇌성과 지진으로 표명하리라.” 하시고 모든 종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별안간 천둥이 치고 땅이 크게 흔들렸다.
眞人을 찾고 化天하심
계묘(1903)년 겨울 종도들이 시좌하고 있는 자리에서 혼자 말씀하시길“ 나의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디느냐?” 하시는지라. 김보경이 여쭈길 “무엇이 그리 더디나이까?” 하니 상제께서“ 내가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을 찾게 하였더니 이제 아홉 살이라. 나의 일이 어찌 더디지 않으리오?” 하시니라. 보경이 다시“ 그리하오면 저희들은 모두 무용지인(無用之人)이며 또한 지금까지 헛되이 수종하였나이까?” 하니 이에 상제께서 타일러 말씀하시길
人有其人이요 時有其時니
인유기인이요 시유기시니
“사람은 맞춰 정해진 그 사람이 있고 때도 맞춰 정해진 그때가 있느니라.” 하시니라.
기유(1909)년 四월 二十八일에 보경, 치복 등 종도 수명을 데리시고 대전 회덕(懷德)역에 가셔서 남쪽에서 오는 한 기차를 반겨 맞으시며 “남아 십오 세면 호패를 차나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 이제 나의 일은 다 되었도다 나는 가도 되느니라.” 하시고 六월 二十三일에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천하사를 도모하고자 지금 떠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하고 이르시고, 기유(1909)년 六월 二十四일 신축(辛
丑) 巳시(오전 9시)에 화천하셨다.
상제께서 화천하시자 갑자기 구름이 사방을 덮더니 뇌성벽력이 일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화천하신 지붕으로부터 서기(瑞氣)가 구천에 통하였다.
구천상제님께서는 천지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하셨으며 삼계대권을 주재 하시어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로써 후천 오만 년 선경세상을 선도(宣道)하신 하느님이시다.
道主 조정산 조성옥황상제
도주님은 전생(前生)이 초패왕(楚覇王)이시고 초패왕의 전생은 단주(丹朱)이다.
채지가 뱃노래 중에는 도주님의 전생에 관한 내용이 있다.
전생사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원통하다강구연월 격양가는 당요천하 송덕할때
만승천자 어데두고 바둑판이 웬일인고
허무하고 허무하다 세상일이 허무하다
강동자제 팔천인은 도강이서 하올적에
침선파부 결심하고 삼일량을 가지고서
백의산하 충돌할제 팔년풍진 겪어가며
역발산 기개세는 초패왕의 위풍이라
대사성공 하잤더니 천지망아 할일없네
계명산 추야월에 옥소성이 요란터니
팔천제자 흩어지니 우혜우혜 내약하오
오강정장 배를대고 급도강동 하렸으나
오추마만 보내우고 여액이 미진하여
설상가상 되었구나 자미원에 몸을붙여
후천운을 기다리니 할일없다 이내운수
지성발원 다시해서 구천에 호소하니
해원문이 열렸구나
구천상제께서는“ 선천에서는 상극이 인간의 일을 지배하여 원한이 세상에 맺히고 쌓여 天地人三界가 상통하지 못하고 道의 맥이 끊겨 인류가 서로 반목쟁투하고 세상이 참혹하여졌다”고 하시고“ 이제 진멸지경에 처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선천의 상극으로부터 생겨난 모든 원을 풀고 상생의 道로써 후천의 무궁한 낙원을 세워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말씀하셨다.
이에 상제께서는 예부터 쌓인 寃을 풀고 寃으로 인해서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셨다.상제께서 이르시기를“ 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의 기록의 시작이고 寃의 역사의 첫 장인 요(堯)의 아들 단주의 寃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 년 쌓인 寃의 마디의 고[結]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不肖)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寃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寃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寃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려면 해원공
사(解寃公事)를 행하여야 되느니라” 하셨다
광구천하 원년에 세상에 오심
그리하여 상제께서는“ 바둑의 시조 단주의 해원도수(解寃度數)를 회문 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4)에 붙여 조선국운을 돌리려 함이라.” 하시고 공사를 행하신 바 있다.
갑오(1894)년 오월 상제께서 주무시고 계시는 중에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나도 후천진인이라. 천지현기(天地玄機)와 세계대세(世界大勢)를 비밀히 의논할 일이 있노라”고 아뢰었다. 그리고 동학란이 진정되자 고부지방 유생들이 을미(1895)년 봄에 세상의 평정을 축하하는 뜻으로 두승산(斗升山)에서 시회(詩會)를 열었을 때 상제께서 이에 참여하셨다.
이때 한 노인이 상제를 조용한 곳으로 청하여 모셔가더니 작은 책 한 권
4) 다섯 신선[五仙]이 바둑판[棋]을 둘러싼[圍] 형세[穴]
을 전하므로 상제께서 그 책을 통독하셨다. 유생들은 세상이 평온해졌다고 하나 세도정치(勢道政治)는 날로 어지러워지고 있어 상제께서 이때 비로소 광구천하 하실 뜻을 두셨다.
도주께서는 구천상제께서 광구천하의 뜻을 두시던 해인 을미년 12월 4일에 경남 함안군 칠서면 회문리 조씨 가문에서 탄강하시니 존휘는 철제(哲濟)요 자함은 정보(定普)이시고 존호는 정산(鼎山)이시다.
구천상제께서는 신미(1871)년 9월 19일 객망리로 오셨고, 도주님께서는 을미년 12월 4일 회문리(會文里)로 오셨다. 구천상제님과 도주님의 연세 차이가 25년이다. 24는 24절후를 뜻하고 25에서 24를 빼면 1이 남는다. 1은 시작이고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주님께서 25세 때 하느님이 되신 것이다. 구천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해인 기유(1909)년에 도주님께서 만주 봉천으로 가셨다. 그해가 도주님 천수(天壽)가 15세 되는 때이다. 15는 眞主(진주)라 한다.
기유년 4월 28일에 도주님께서 기차를 타고 만주지방으로 향하던 중 미시(오후 1시)경 대전역 부근에 이르렀을 때 비몽사몽간에 한 신인(神人)을 대하셨으니 그 신인이 말씀하시기를“ 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 노라. 그대는 나의 종통(宗統)을 이어갈 三界의 眞主노라. 그대의 호(號)는 정산이니 나와 그대는 증정지도(甑鼎之道)이니라.” 하는 현몽을
받고 만주 봉천지방으로 망명하시었다.
그 후 도주께서는 동지들과 구국운동에 활약하시다가 도력(道力)으로 구국제세(救國濟世)의 뜻을 정하시고 입산수도 공부에 전력을 다하시던 중 또 그 신인이 나타나 글이 쓰인 종이를 보이며“ 이것을 외우면 구세제민(救世濟民)하리라” 하시므로 그 글을 보니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至氣今至 願爲大降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이었다.
이때가 도주님께서 23세 되시던 해인 정사(1917)년 2월 10일로서 구 년의 입산수도 공부 끝에 구천상제의 삼계대순(三界大巡)의 진리를 감오득도(感悟得道)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셨다.
23수(數)는 태을주(太乙呪) 숫자와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름이다. “다시 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태인(泰仁)에 가서 나를 찾으라”는 명을 받고 정사년 4월에 만주 봉천을 떠나 배를 타고 태인으로 향하던 중 폭풍을 만나 내리신 곳이 태안(泰安)이었다. 이곳을 두루 살피셨으나 상제께서 알리신 곳이 아닌 듯하여 안면도(安眠島)로 가셨다. 안면(安眠)이란‘ 편안할 安’,‘ 졸 眠’으로서 이것은 잠시 쉬어 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상제님의 현무경과 진법주를 전해 받으심
조선으로 귀국하신 도주님께서는 전국 명산 각지를 두루 다니시며 수도를 하시다가 기미(1919)년 정월 보름에 전라도 정읍 마동(馬洞)에 가셨다(馬는 趙씨를 뜻한다5)). 그곳에서 김기부의 집에 있던 대사모님과 상제님의 누이동생 선돌부인과 따님 순임을 만나셨다.
선돌부인은 구천상제님 재세 시에 늘 십 년 후 을미생(乙未生)이 정월보
5) 고대 趙나라는 말[馬]의 집산지였다.
름에 찾을 것이니 봉서(封書)를 전달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하면서 도주님께 봉서를 전해주었다. 그 봉서는 현무경(玄武經)과 진법주(眞法呪) 였다. 이때 도주님 천수 25세였다.
도주님께서는 선돌부인을 만나신 후 가족들을 황새마을로 옮기시고 통사동(通士洞)에서 공부를 하셨다.
그 후 도주님께서는 을축(1925)년에 전북 구태인 도창현(全北 舊泰仁道昌峴)에 도장(道場)을 건립하시고 그해 4월 28일에 강증산 성사(聖師)를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6)
로 봉안하시고 종단 무극도(无極道)를 창설하시었다.
1935년 일제의 종교단체 해산령에 의해 종교활동을 일시 중단하고 전국 명산대천을 순회주유하며 수도하시다가 1945년 8월 조국광복을 맞이하신 도주 조정산께서는 신앙자유의 국시에 따라 부산에 道 본부를 설치하시고 道名을 태극도(太極道)로 개칭하여 종교활동을 부활하셨으며 무극대운(无極大運)의 해원상생의 진리를 설법하셔서 구제창생
의 대도를 밝혀주셨다.
도주님께서는 12월 4일에 탄강(誕降)하셨다. 12월 하면 12가 道다. 초나흗날은 4이고 4철을 의미한다. 4철은 1년 12개월이고 道다.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은 도주님께서 12월 4일에 탄강하셨으니 12
6) 상제님의 정체를 밝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의 수식어 호칭을 드린 것에 대해 타 증산계열 교파
에서 비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선천의 유대교 계열(유대교, 이슬람교, 천주교, 개신교) 종교
의 유일신사상을 단순히 모방한 도그마에 빠진 단견(短見)이라 할 수 있다.
월 26일에 4일이 들어가면 12월 30일이 되어 일 년 열두 달 만도수(滿度數)를 채우실 도주님의 탄강을 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기유(1909)년 四월 二十八은 봉천명일인데, 四월의 四는 춘하추동 4철이고 28일은 28수(宿)의 기운을 의미한다. 또한 득도(得道)일이 2월 10일인데, 2는 음양이고 10은 사람이 손가락으로 세는 가장 큰 수를 뜻한다. 10을 무대(无大)라 하는데, 노름에서 무대를 잡으면 아무도 못 먹는다고 한다. 무대는 무극대도(无極大道)를 말한다.
후천 오만 년의 度數를 펴심
도주님께서는 무오(1918)년 10월 모악산 대원사에 이르셔서 말씀하시길“ 개벽 후 후천 오만 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희는 득도하니 그 아니 좋을시구 하셨고, 기축(1949)년 겨울에는 부산 동래 마하사에서 49일 공부를 마치신 후 상제께서 짜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나가노라”고 말씀하셨다.
도주님께서 정유(1957)년 11월에 도인들의 수도공부의 설석(設席)을 명하시고 말씀하시길“ 내가 50년 공부로써 이룬 광구천하의 공부법방이니 유일무이한 진법(眞法)이요 진법(陣法)이며 천지대학(天地大學)이요 청학(靑學)이니라. 이는 三十六궁 도수이니라. 구천상제께서 친히 九년 공사로써 도수를 짜놓으셨으니 그것은 체(體)요 원리(原理)라. 나는 道로써 용(用)하여 무극·태극의 창도(創道)를 했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공부(工夫)는 道를 어떻게 믿고 배우고 닦고 행하라는 眞法이니 솥
이 있어야 시루를 쓰는지라. 이로써 甑鼎之道(증정지도)가 성취됨이니라” 하셨다.
도주님께서는 봉천명하신 기유(1909)년부터 화천하신 무술(1958)년까지 오십 년 공부 종필하셨다. 도주님께서 오십 년 공부 종필하시던 해인 1958년 2월 하순에 최고간부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박한경(朴漢慶)을 도전으로 임명하니 그는 총도전(總都典)이라 종전의 시봉도전(侍奉都典)과는 전혀 다르니라.” 하시는 분부를 내리셨다.
도주님께서 1958년 3월 6일에 간부 전원을 문밖에 시립케 한 후 도전 박한경을 가까이하고 도전의 머리에 손을 얹고 道의 운영 전반을 맡도록 분부를 내리셨다.
그리고 “五十年工夫終畢(오십년공부종필)이며 至氣今至四月來(지기금지사월래)가 금년이다. 나는 간다.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 말씀하시고 다시 문밖을 향하여 도적놈을 세 번 부르시더니 화천하셨다. 이때가 무술(1958)년 3월 6일 未시(오후 1시)요 양력으로 1958년 4월 24일이요 수는 64세로다.
도주님께서 화천하신 날이 3월 6일인데 3은 天地人을 뜻하고 6은 6×6이 36이다. 36은 360일을 뜻하고 360일은 일 년이다. 일 년 열두 달은 道다. 도주 조정산께서는 창도하신 하느님이시다.
都典 박우당 박성미륵세존
세존이신 미륵께서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을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을 구천에 호소하므로 구천상제께서 서양 대법국 천계탑 에 내려오셔서 천하를 대순하시고 광구천하하시고자 인간의 몸으로 강세하심이었으니 바로 미륵세존께서 후천 오만 년 선경세상의 운을 열어주시는 주체자이시다.
상제께서는“ 광구천하를 위한 삼계개벽의 공사에 있어 세계민생을 건지려면 먼저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어야 한다.” 하시고 단주의 해원도수를 회문산 오선위기혈에 붙여 행하셨다. 그러므로 단주의 후신으로 초패왕, 다시 초패왕의 후신으로 오신 도주님께서 오십 년 공부 종필로써 후천 오만 년의 道를 창도하시고 화천하셨다. 화천하신 즉시부터 찧고 까고 해서 모든 겁액이 벗겨진 것이다. 이것을 탈겁이라 하니 단주로부터 맺힌 원의 고가 풀어져 천지의 모든 겁액이 해소됨이다.
구천상제께서 미륵세존의 호소에 따라 강세하시어 39년간의 천지개벽 공사로써 전대미증유의 후천 오만 년의 선경세상을 설계하시어 이것을 도주님께 전하셨다. 옥황상제이신 도주님께서는 구천상제께서 설계하신 도수를 풀어 후천 오만 년 선경세상의 모든 도법을 창도하시어 집을 지음에 비유하면 새로운 집을 기초하심이니 후천 오만 년의 미륵운이 열리게끔 해주시었다.
이리하여 미륵세존께서 천하창생에 새 세상을 열어 주시고자 세상에 사람의 몸을 빌려 오시었다. 백두대간의 소백산맥을 따라 뻗어 내린 산맥이 월악산과 속리산을 이루고 그사이에 박달산(朴達山)이 우뚝 솟아 있으니 미륵세존께서는 박달산 아래 방곡리(方谷里)에서 탄강하셨다. 월악산에서 박달산에 이르는 산줄기에 하늘재가 있고, 하늘재를 넘으면 미륵리(彌勒里)가 있고, 미륵리에서 지릅재를 넘으면 수안보요, 수안보를 넘어 방곡리가 남한강을 안대(案對)하고 있다.
도전 박우당께서는 도주님께서 득도하시던 해인 정사(丁巳, 1917)년 11월 30일 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 박씨 가문에서 탄강(誕降)하시니 존휘가 한경(漢慶)이시고 존호가 우당(牛堂)이시다.
도주(道主)님의 득도원년(得道元年)에 탄강(誕降)하심
도전 박우당께서는 말씀하시길 다른 종파에서 비결서에 나와 있는 진사성인출(辰巳聖人出)을 보고 辰 혹은 巳년에 성인(聖人)이 난다고 하는데 이는 도주님께서 기유(1909)년에 만주에 가셔서 九년 만에 득도하신 해인 정사년을 뜻하는 것이다. 도주님께서 만주 봉천에서 태을주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루는 23세에 道를 받아 득도하시었다. 그때가 정사년 2월 10일 당신을 낳은 해이라 하셨다.
이는 곧 辰巳聖人出이 바로 도전 박우당 당신께서 정사년 11월 30일에 탄강하심을 뜻하는 것이다. 30일은 1개월이고 11월+1개월=12월이다.
12월은 道다. 하느님이심이다. 도전 박우당께서는 1958년 2월 하순 간부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도주님으로부터“ 박한경을 도전으로 임명하니 그는 총도전이니라”하신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시었다.
도주님 화천 후 뒤 도전께서 도장을 설계 없이 임의로 지어놓고 보니 배의 형상과 같아 뱃머리는 바다 쪽으로 나오고 축담돌(방파제)은 마치 파도치는 형용이라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의 도수였다.
하느님이 바다에 떠 있어 옮겨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도전님은 파란곡절 속에서도 태극도를 잘되게 하려고 애썼으나 태극도 도인들의 모함으로 민간형무소 6개월, 육군형무소에 3개월 있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등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곳에서는 대순진리가 발전할수 없는 운수이기에 도전께서는 부산을 떠나 껍데기를 까고 찧어 깨끗이 하고는 혼자 서울로 왔다.
종단 대순진리회 창설하심
도전께서는 1968년 7월 태극도를 떠나 와이셔츠 한 벌만 들고 부산 해운대를 거쳐 안양 수리사(修理寺)에 들어가 49일 공부를 마치시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1969년 4월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에 중앙본부 도장을 건립하였으며, 1971년 5월 24일 도주 조정산을
趙聖玉皇上帝
로 봉안하셨다.
이로써 모든 寃이 풀리고 寃에 의해서 생긴 모든 불상사가 없어지니 세계가 개벽하고 계도발전(啓導發展)해 나가게 되어 앞으로 영원한 평화세계가 도래할 것이었다.
1983년 가을 전체 상급임원을 데리고 내장산(內藏山) 백양사(白羊寺)를 거쳐 개태사를 다녀오셨다. 백양사는 辛未年과 乙未年에 오신 양위 상제님을 뜻하고7), 내장산은 안[內]에 무엇인가 감추어[藏] 놓았다는 의미가 있다.
개태사8)에는 미륵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철확(鐵)과 뫼[山] 모양의 우주당(宇宙堂)이 있고 그 옆에 나반존자가 모셔져 있으며 정문 현판에는 대천호산삼천일지개태사(大天護山三天一
7) 白羊의 흰 白자는 에다가 山을 왼쪽으로 구십 도 돌려놓은 것을 합한 모양이다. 즉
신선 仙자가 되면서도 人山, 즉 사람의 산이라는 뜻이 된다. 사람의 몸으로 오시는 三
神이 나란히 山의 모양으로 있는 三神山을 의미한다. 羊은 곧 십이지의 양 미(未) 자를
뜻하니 辛未(신미)년에 탄강하신 증산과 乙未(을미)년에 탄강하신 정산을 의미한다.
地開泰寺)라고 적혀 있다.
도주님께서 재세 시에 경신(1920)년 함안 통사동(通士洞) 재실에서 밤 낮으로 불면불식하면서 공부하시던 중 이월 열이레에 둔궤가 봉안된 곳에서 벼락소리가 나더니 둔궤가 저절로 열려 있었다. 그 속에는 호피한 장에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그려져 있고 양혈(羊血) 스물넉 점이 궤에 찍혀 있었으며‘ 오강록팔문둔갑설문(烏江錄八門遁甲舌門)’이란 글
자가 궤에 씌어 있었다.
그 후 도주님께서 함안 반구정에서 공부하실 때 옮겨 놓은 둔궤를 조주 일이 훔쳐갔었는데, 갑자(1984)년에 도전 박우당께서 그 둔궤를 찾아오는 날 번개가 치고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하늘로부터 불기둥과 같은 서기가 둔궤를 실은 차를 덮고 따라왔다. 둔궤를 실은 차가 도장에 들어올 때는 거센 회오리바람이 일어났으나 둔궤가 도장에 도착하고 나니 천지가 조용해졌다. 도전님께서는 “둔궤는 성궤(聖櫃)이니라” 하시고 4월 28일에 성궤에 치성을 올렸다.
상제님과 도주님과 같이 납향치성의 산제사 받으심
도전께서는 1988년 11월에 납향치성(臘享致誠)9)을 발표하시는 자리에
8) 비결(秘訣)을 찾는 데 주로 사찰(寺刹)을 대상으로 하니 혹 우리의 도(道)가 불교와 무슨 특별한 관련이 있는가 하는 초심자(初心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설법(說法)이 말법시(末法時)가 된 사실은 차치(且置)하더라도 사찰에 풍부히 조성(造成)된 여러 표적(表迹)과 조상(彫像)은 이미 제신(諸神)이 임어(臨於)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쓰인 지 오래다.
9) 납(臘)은 음력섣달이고 납향(臘享)은 섣달에 일년간의 농작과 그 밖의 일을 여러 신(神)에게 고(告)하는 제사로서 선천시대에는 동지로부터 셋째 술일(戌日)인 납일(臘日)에 올렸다. 후천시대에는 양위상제님이 미생(未生)이시므로 동지 후 셋째 미일(未日)에 올린다.
서 말씀하시길“ 도주님께서도 납향치성을 한번 받으시고 화천하셨다.
지방 각 방면 회관에서 치성을 올리도록 하라. 납향치성은 제후가 천자께 드리는 치성”이라고 하셨다. 1990년 11월 22일(양력 1991년 1월7일) 박성구 상도선감이 도전님의 존영을 모셔 올리고“ 동지로부터 셋째 未日인 1990년 12월 10일(양력 1991년 1월 25일) 영대(靈臺)의 석가여래 자리가 도전님의 자리이다.” 하고 도전께 사배(四拜)를 드리고 납향치성을 올렸다.
그러자 도전께서는 1990년 12월 28일(양력 1991년 2월 12일) 훈시하시길“ 납향치성을 도전한테 올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자고이래 살아있는사람이 제사를 받은 적이 없다. 박성구가 납향치성 때 석가여래전에 도
전인 내가 있을 곳이라” 하여 사배를 올렸다. 또 최해경과 같이 내정에 올라와서“ 나의 용안(容顔)을 들고 석가여래 자리에 봉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주께서 도전의 직책을 나에게 주셨는데 그래서가 아니라도 내 말이면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옥편에 맡을 都 자는 없더라고 박성구가 말하지만, 그럼 내가 그걸 일부러 만들었단 말인가? 都가 옥
편에는 總이라고 나와 있다. 거느릴 總이 都의 뜻이 된다면 맡을 都字이다. 典은 법 典字이면서 主라고 나와 있으니 주장하는 바라는 뜻이다.
都典이란 모든 걸 주장하는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도전께서는 박성구 선감이 모든 것을 주장하는 도전의 뜻을 거슬러 자기 뜻을 주장하고 있다고 겉으로는 꾸짖으시나 임원들의 배척에도 불구고 끝내 박성구 선감을 용납하시었다. 박성구 선감의 주장이란 것도 결국 도전의 일에 포함되었음을 암시하는 결과이다. 이는 상도 박성구(上嶋 朴成九)는 도전을 맡으라는 명을 전 임원들이 모인 가운데서 발표, 즉 개유보(皆有報)하심이다.
1991년 6월 22일 시학공부를 여시면서 시학공부는 자리공부라고 일러 주셨다. 그리고 1991년 9월 28일에 생부정(生不淨)과 사부정(死不淨)을 앞으로는 없앤다기보다 가릴 것이 없음을 일러주시고 1995년 12월 4일 未時(양력 1996년 1월 23일 1시 30분)에 화천하셨다.10)
도전 박우당께서는 병술(1946)년 정월보름에 태극도에 입문하여 을해(1995)년 12월 4일 화천하시는 날까지 오십 년 공부 종필로써 천하창생에게 새 세상[新天地]을 개도(開道)해 주신 하느님이시다.
10) 도전께서는 술생(戌生)이시나 이미 미생(未生)이신 양위상제와 함께 미일(未日)에 납향치성을 받았으므로 이에 맞춰 미시(未時)에 화천하시었다.
現 都典 朴成九 세 분 하느님의 奉安 완성
현 도전 박성구는 대순 120년 만인 1990년 11월 22일(양력 1991년 1월 7일)에 세 분 하느님께서 한자리에 임하셔야 함을 공포하고 1995년 12월 15일에 개도하신 하느님 박우당을 박성미륵세존으로 봉안(奉安)하
셨다. 이로써 대순진리회의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1925년 4월 28일 봉안)
조성옥황상제(1971년 5월 24일 봉안)
박성미륵세존(1995년 12월 15일 봉안)
세 분 하느님께서 70년 만에 한자리에 임하셨으니 때는 분명 천지가 성공하는 때인지라. 전 인류와 군생만물 어느 것 하나 세 분 하느님의 덕화를 입지 않음이 없으니 세상 사람들은 세 분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대순진리회에 귀의(歸依)하여 다 함께 후천 오만 년 선경세계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後人山鳥皆有報 勸君凡事莫怨天
후인산조개유보 권군범사막원천
다음 사람은 섬 도(嶋)라고 모두에게 알리노니
제군들이여 범사에 하늘을 원망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