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걸고 온몸으로 의심하라
철저한 믿음과 대분심…
부처님은 출가 이후 깨달음을 향한 다양한 시행착오 과정을 거쳤지만 종국에는 선정(禪定)에 든 지 일주일 만에 깨달음을 이루셨다고 많은 경전들은 전하고 있다.
렇다면 “일주일의 명상” “보리수 아래서의 성도”라고 표현되는 이러한 현상이 과연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그 중심에 ‘화두일념’이라는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화두일념의 개념과 방법, 화두가 끊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살펴보자.
처음 불교에 입문한 초발심 수행자들에게 참선은 매우 힘겨운 일이다. 단 3분이라도 화두를‘챙기겠다’고 앉지만 금새 허리는 굽어지고 졸음이 몰려들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번뇌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여기에서‘화두일념’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화두일념(話頭一念)이란 참선수행자가 진리를 깨치게 하는 풀리지 않는 의심인 화두(話頭)로 항상 깨어있는 마음상태를 놓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일념(一念)의 한자 뜻풀이가 말해주듯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로지 현재(今)의 마음(心)으로 항상 깨어 있는 것이며, 지금 여기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챙기는 화두에 깨어있는 것이다.
초기불교의 경전에서는 이러한 일념을‘사띠(sati)’로도 정의하고 있는데 사띠란 “특정한 대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거나 따라감으로써 마음의 방황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대상에 밀착하여 서는 것’ 혹은‘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확고하게 머무는 것’으로 풀이되며 혹자들은 이를‘마음을 챙기는 것’ 또는‘마음지킴’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러한 화두일념의 개념과 중요성은 〈서장〉, 〈선경어〉, 〈몽산법어〉, 〈선가귀감〉, 〈선요〉 등에 자세히 나와 있다. 특히 송나라의 선승(禪僧) 대혜(大慧)스님이 후학에게 당부하는 편지글인 〈서장(書狀)〉에서는 화두일념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큰 의심의 三要에 따라
닭이 알을 품듯이
마음을 챙겨야
유무의 알음알이나
논리적 접근 가장 경계토록
“만약 목숨을 내걸고 참구한다면 비로소 스스로 타파할 수 있을 것이나, 만약 목숨을 내걸지 못한다면 일단 의심을 깨뜨리지 못한 곳에서 오직 한결같이 참구해 나가도록 할지니, 똑바로 한결같이 목숨을 걸고서 참구해 나아가면 곧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화두일념은 목숨을 내건 화두참구이며 만약 화두가 중간에 끊어진다면 일단 의심이 깨진 곳으로 되돌아가 한결같이 참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종호스님은 “화두일념은 화두 한 생각에만 깨어있음을 말하는데, 자신의 본래면목이라는 정체성과 연관되어야 하며, 화두 참구시 논리를 따지려 들거나 이론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특히 삼요(三要)에 따라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임하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삼요(三要)란 화두에 대한 철저한 믿음(大信根)과 금생에 기필코 해결하겠다는 대분심(大憤心), 그리고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커다란 의심(大疑團)을 말하는데 화두를 챙김에 있어 “이래서 그래”, “아마도 그럴 거야”라는 식의 머리로 파악하고 이해하려드는 것은 절대로 화두일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두일념의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것으로 〈서장〉에서는 “유무(有無)의 알음알이를 짓지 말고, 도리로서 알지 말며, 의근(意根) 아래서 사량복탁(思量卜度)하지 말며,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빡이는 곳에서 알아내려 하지 말고, 언로상(言路上)을 향해서 알려고 하지 말고, 문자(文字) 가운데에서 증거(證據)를 끌어들이지 말라. 진실로 없다는 알음알이를 짓지 말고, 마음을 가져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고 밝힌다.
화두일념이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의심하는 것이며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고 체험적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화두일념에 대해‘A는 B’라는 식의 또 다른 개념을 대입시키거나 또 다른 의심을 부르는 것은 결국 분별작용을 낳고 이는 인식의 한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계종 사회부장 미산스님은 “화두의 지향점은 무분별의 세계로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며 “예를 들어‘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라는 화두라면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세계의 실상을 새로운 차원 즉 또다른 형태의 특수인식체계로 인식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만약 화두를 놓치거나 끊어져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종호스님은 “주저없이 화두로 돌아와야 하며 결코 화두에 실패했다거나 끊어졌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화두 이외에 다른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조언한다. 화두 이외의 일체의 생각들은 모두가 망념(妄念)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앞서‘수행의 단계’〈1981호 참조〉에서 살펴봤던 앉으나 서나 잠자거나 꿈속에서나 화두에 지속해야 한다는 좌선일여, 동정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의 개념이 나온다. 종호스님은 “일주일이면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은 이러한 오매일여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도 없지 않다.
수행의 단계를 인식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마치 수행자들이 단계가 있는 것처럼 일정단계를 목표로 화두 참구한다면 이 또한 망념이라는 경계이다.
이에 대해 미산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는 화두참구 과정에서 집착과 번뇌가 일면 절대 진리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적절한 시기에 던져진 의심이 몸과 마음 전체를 꿰뚫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