除夜吟
雲溪 全以性
天涯仍守歲
鄕思自重重
有客難賖酒
無琴可代舂
一年終此夜
千里滯羈蹤
却羨陽春澤
陰崖動蟄封
일 년의 마지막 밤에 시를 짓는다.
운계 전이성
천체 운행 끝에서 수세(守歲)를 따르니
고향이 절로 사무치게 생각난다.
손님이 있으면 외상술을 사 오기 어려우니
거문고는 방아를 대신 찧을 수 없다.
일 년의 종착역인 이 밤
천 리밖에서 머무르니 갇힌 신세이다.
따뜻하게 혜택을 나눠주는 봄이 부럽구나!
그늘진 벼랑에 꽁꽁 닫힌 곳에도 봄기운이 꿈틀꿈틀
[국역] 전과웅
[출처] 운계문집
● 전이성 [ 全以性 ]
본관은 용궁(龍宮)이며 자는 성지(性之), 호는 운계(雲溪)이다. 조선 초 축산부원군(竺山府院君)에 봉해진 원발(元發)의 후손으로 처사 위(緯)의 아들이다.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에는 부친의 성명이 행(緈)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한강 정구(鄭逑), 우복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606년(선조39) 식년시(式年試)에서 병과(丙科) 9위로 급제하여 제조랑을 거쳐 다섯 군현의 현감을 지냈으며 그 중 고성과 합천에서는 그의 선정을 기리어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광해군 때 낙향하여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다가 인조반정 이후 다시 벼슬에 올라 종부시정(宗簿寺正)에 임명되어 춘추관 편수관을 겸직하면서 《광해군 일기》편찬에 참가하였다.
이괄의 난(1624)이 일어나자 황해도 아사(亞使)로서 난을 진압시키는데 공을 세워 1등 공신에 등록되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문경시 산양면 과곡리에 묻혔다. 도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용궁면 금남리 훤평서원(喧坪書院)과 용궁면 가야리 가야사우(佳野祠宇)에 제향되었다.
시문집 《운계집(雲溪集)》 4권 2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1907년에 9세손 학영(學永)이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또 관북지방의 민심과 생활상, 풍속 등에 대해 적은 글을 모은〈해휴록 解携錄〉과 부안에 이배되어 있을 때 친지, 그 지방 선비들과 학문, 시사, 정치, 예절 등에 관하여 논한〈심화록 尋話錄〉이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이성 [全以性]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생몰년도(1578~1646)
● 賖 세낼 사
1.세내다 2.(외상으로)사다, 거래하다 3.아득하다
● 舂 찧을 용, 종족 이름 창
1.(찧을 용) 2.(방아를)찧다 3.절구질하다
● 수세(守歲) :
제석(除夕)에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새해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을 기다려 맞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