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후면 한가위라고 분주함을 더하는데
마음만은 허전함으로 가득 채워 지네요.
엄마가 함께하지 않는 명절은 생각지도 못해 봤는데
엄마가 없는 고향집은 생각하지도 못해 봤는데
오수중학교 뒷길을 접어 들면
그때 부터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는데
추석이라고 고향갈 생각을 하면
갑자기 가슴이 아려 오기 시작합니다.
오십이 다되가는 아들이 부끄러움도 잊은채
엄마라고 불러 보고 싶습니다.
대답이 없어도
엄마라고 목이 터져라 불러 보고 싶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명절때면 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아도
행여 자식들 고생할까바
며칠전이면 어김없이 전화하셔서
"이번 명절은 차막히고 고생하니
내려오지 마라 "언제나 말씀하셨는데
그런 말씀들이 보고 싶다는 엄마만에
표현이라는 것을 알기에 한번도 거르고 않고
그 먼길 막힌길 마다 않고 기를 쓰고 내려 갔었는데
이젠 전화 한통 해줄 엄마가 안계셔서
서러워 울고 싶습니다.
전화하고 출발하면 그 때 부터 운전하는 아들 보다
무사 귀향을 바라시며 노심초사 그 긴시간 동안
아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엄마 맘은 숫검댕이가 되어
이제나 저제나 둔터 다리쪽을 보러 수십번씩 대문 밖을 서성이었던 울 엄마
명절때 내려 간다 말씀드리면
언제나 첫마디 말씀이 “아무것도 사오지 마라
오수장에서 과일이랑 사다놨다“ 로 시작했는데
자식들 줄것 없다고 미리 걱정하시어
불편한 몸 이끌고 버스에 의지하여
오수가서 생선이며 과일이랑
사다 놓으실 엄마 성격을 잘 알기에
형제간 끼린 일부러 말씀도 안하고
그렇게 출발한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젠 전화를 해줄 대상도 전화올 엄마도 없다는게
너무나 어색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집밖에 차소리만 나면 맨발로 뛰어 나와
우리 막둥이 고생해서 어쩌냐고 웃으며 반겨주셨는데
내려가도 반겨줄 이 없는 엄마가 안계신 적막한 고향집
그 삭막감을 가슴에 안고 들어갈 생각을 하니
답답함에 가슴이 아파 옵니다.
♣ 엄마가 환한 얼굴로 서 계셔야 할 그 자리에 육중한 대문이 가슴을 막히게 하네요.
작년 추석에 어릴적 생각에 막둥이 손자에게
추억을 줄 요량으로 봉숭아물 들여주다
옆에 계신 엄마에게 아무 생각 없이
“엄마! 봉숭아 물 들여 줄까?“ 했더니
선뜻 손을 내밀어 봉숭아 물을 들여주며 사진도 찍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무심한 막둥이는
팔순 엄마도 여자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 했었는데
그 사진 카톡에 올리며
“내년에도 봉숭아 물 들여줄수 있을까” 라고 써 놨는데
입방정인지 말이 씨가 되어 이젠 그럴 기회조차 없어져
지난번 고향갔을때 집 담벼락에 이쁘게 피어 있는
봉숭아를 보며 서글퍼 속울음을 삼켰습니다.
♣ 엄만 떠나가고 없는데 이 많은 봉숭아는 어찌 할까요?
초상난 해는 그 해 농사가 잘된다는데
올해 유난히 엄마가 심어 놓은 감자도 씨알이 굵고
고추도 잘되고 엄니 따드시라고 몇해전에 심어 놓은
담벼락에 포도도 왜이리 잘 되었는지
엄마 살아 계셨으면 오지다고 입이 함박만해졌을텐데...
♣ 포도가 너무 탐스럽게고 많이 달렸네요. 양도 많고
엄마!
내가 기억력이 약해 몇 개 못외워도 집전화번호는
잘 기억했는데 가끔 나도 모르게 063-642-8957로
자동 으로 눌러 지지만 응답없는 전화임에 혼자 놀라
수화기를 내려 놓기를 몇번
지난 여름 그 뜨겁게 달궜던 열대야때도
몇차례 엄청난 태풍때에도 걱정해야할
그래서 전화를 해야할 엄마가 안계신다는게
그것마져 화가나서 속상합디다.
생전에 아침에 문안전화 드리면.
언제나 첫말씀이 " 나는 괜찮다" 별일없제.너그가 문제지“라며
귀가 잡숴 대화도 제대로 안되지만 전화세 나온다고
먼저 끊어버린 엄마목소리를 이젠 영영 들을수 없어
엄마 목소리 잊을까봐 녹음해둔 동영상을 보며
기억력을 되새기며 또 속울음을 삼키곤 합니다.
예전에 조실부모한 한 친구가 적어도 부모님은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진 살아 계셔야 한다고
얘길해서 그때는 공감을 했었는데
오십이 다되도록 엄마와 함께한 막둥이는
요즘 너무 힘들어 차라리 그 친구가 부럽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많은 추억을 쌓았기에 너무나 많은 기억을 담아 놨기에
그 많은 추억들 그 많은 기억에 파편들을 다 잊으려면
몇해가 걸릴지 가름하기 힘들어 그 긴 고통들 어떻게 감내해 나갈지
갈필을 잡을수 없어 한숨으로 지새우고 있습니다.
엄마 !
감기인데 왜 이리 안떨어지냐고 푸념을 하시어
2개월이라는 믿기지 않는 의사말에
남원 의료원 입원했다 아무런 조치도 않고 퇴원해서
차마 자식들은 병명을 알려 드리지 말자며 말씀을 못드렸는데
몸이 자꾸 안좋아지시니 직감으로 느끼셨는지 “3년만 더 살았으면 한다고”
혼자말로 넋두리를 하신 걸보며 막내 김치 못담아 줘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는 죄책감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엄마!
소풍가시고 팔십평생 몸담았던 고향집 들러 봐야 될 것 같아
시간이 안된다는것 고집피워 동네앞에 버스에다 몸은 묶어 놓고
사진만 덩그러니 안고 가는데
동네 아짐들이 엄마 아쉬워 왜이리 눈물을 흘리는지?
용전아짐이 그러데요.
막둥이 울음소린 저승까지 들린다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많은 정 어찌 뗄까요?
엄마!
난 앞으론 메론바를 먹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탈수증상 일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아이스크림이라고 엄마가 가끔 드셨다는 메론바를 사다
수저로 떠드리면 간난아기 젓먹듯 눈을감고 쪽쪽 쪽쪽 어찌나
맛있게 빨아 드시는 엄마모습이 떠올라 이제 다시는
메론바는 못먹겠습디다.
엄마!
작년에 팔순기념이라고 돈들어 간다고 싫어 하신
엄마를 강제로 모시다 시피 하여 4남매와 제주도 여행을
안갔으면 얼마나 후회할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극성스런 두딸이 있어
엄마에 18번이 이미자에 여자에 일생이라는것도 알았고
노래방도 한번도 못가봐서 가사도 모르신줄 알았는데
종이 마이크를 들이대니 멋들어지게 불러주셔서
그것을 동영상 촬영하여 병상에서 정신이 혼미해질때마다
귀에다 들려주시면 막둥이 덕분에 놀러도 많이 다녔다고
그 말에 막둥인 얼마나 감사했는지...
엄마!
엄마처럼 소박한 유언 한사람 또 있을까요?
병원에서 소풍가시기 3일전 자식들 모여 있는데
윤영이 결혼식때 성전아짐이" 3만원 했는데 그집일있음 5만원 해라" 하시고
늙은 나 많이 도와 줬으니 막둥이가 가끔 준 "샴프 선물셋트 있으면
하나 주려 했는데 못주었다고" 그러셨는데
엄마가 소풍가시고 난뒤 형제끼리 나눈 얘기가
그것이 울엄마 유언이었는가 보다고
그렇게 소박한 유언을 한 사람이 또 있을까? 였는데
엄마! 막둥이가 행여 엄마소원 잊을까봐
남에게 손톱만치도 폐를 안끼치는 엄마 성격을 아는지라
엄마 소풍가신날 내려 가면서 무엇보다 소중하게
챙겨가지고 내려가서 성전아짐 전해 드렸으니 이젠 편안하시죠.
엄마!
추석이면 막둥이 좋아한다고
새우젓과 버무린 엄마표 깍두기를
꼭 담아주셨는데
올겨울 김장은 누가 담가주며
아직까지 된장 ,고추장,참기름,온갖양념 한번 사먹어본적 없는데
엄마표 고추장이면 지금도 밥한그릇 뚝닥 먹을수 있는데
엄마 손길이 안간 양념은 먹어보질 못했는데
이제 50년 동안 길들여진 엄마표 입맛을
어쩌야 한다요.
엄마!
내겐 이세상 하나뿐인 엄마 였고
언제나 막둥이 편이 되어 주셨는데
잘하지도 못한 아들에게 동네 방네 자랑을 해서 효자라고
아짐들이 그럴때마다 얼마나 얼굴이 후끈거렸는지
손톱만큼 행동하면 하늘만큼 칭찬을 해주셨는데
엄마 칭찬이 신이난 막둥이에겐
엔돌핀이고 보약이고 사는 보람이고 희망이었는데
내겐 영원한 우군이고 든든한 후원자였는데
이제 그런 칭찬을 해줄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누구에게 그런 대접을 받고 살수 있을까요?
♣ 남원의료원에서 퇴원하신날 마지막일줄도 모른다는 생각에 벗꽃을 보여드리고 싶어
무작정 구례 천은사쪽으로 달려갔었는데?
엄마!
차막힌 도로에도 엄마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귀향길은
언제나 행복했는데 이젠 반겨줄사람 하나 없는
고향집을 어떻게 내려 가야 하나요?
둥그런 보름달을 보면 엄마 생각이 더 간절할 것 같은데
이렇게 안타까운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해 하나요.
보름달이 뜨면
엄마 얼굴 더 생각날 것 같아
엄마 목소리 더 듣고 싶을 것 같아
차라리
이번 추석은
보름달이 뜨지 않았음 좋겠네요.
너무 너무 보고 싶어요.
엄마............
첫댓글 ♧마음이 져려오고 심장이 요동치는 글귀네~~
아무말씀도없는 훵한 무덤에 져미어오는 서름을 조금은 달래주게끔 매년 직접손에쥐어드린 용돈
올해도어김없이 직접드리지못한마음 헤아려 보내준용돈으로 할수없이 풋풋한 과일한개 올려드려야긋네!